제5공화국의 대통령에 취임한 드골 대통령
제2차 세계대전말기 한때 임시정부의 총리였던 드골은 전쟁 후의 총선거 뒤에 정당간의 협정에 실패해 하야한 뒤 제4공화국이 발족했다. 제4공화국 때의 프랑스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지 못했다. 또한 8년간에 걸친 인도차이나 전쟁과 그에 이어 계속된 알제리문제 등으로 내전의 위험까지 안고 있었다.
-군 복무시절의 샤를 드골-
1958년 6월 국민의회에서 절대다수의 신임을 얻은 드골은 12년 만에 총리직에 복귀했다. 이후 드골은 막강한 대통령의 권한을 인정한 새로운 헌법을 발의하고 국민 투표에서 통과되자 1959년 1월 제5공화국의 대통령에 취임했다. 드골은 대통령이 된 뒤 알제리문제를 일단 해결하고 프랑스를 세계에서 네 번째의 핵보유국으로 만들었다. 또한 중국과 국교를 회복하는 등 미국-소련이 세계를 분할해 지배하는 이른바「냉전」상황에서 드골은「프랑스의 영광」을 회복하고, 국제사회에서 프랑스의 발언권을 강화하고자 노력했다.
파리 교외의 낭테르에 있는 파리 대학분교의 문학부를 1968년 5월 3일 대학당국이 폐쇄했다. 1967년 11월부터 이 학교에는 시설개선을 둘러싸고 급진파학생과 대학당국사이에 대립이 있었다. 1968년 3월 22일「빨강 머리 다니」라는 애칭으로 일컬어지던 콩방디를 지도자로 하는 학생그룹이 대학당국의 금지령을 어기고 학내집회를 열었고, 이에 대해 대학당국은 경찰을 불러들여 유혈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반발한 학생들이 5월 2일에 분교를 점거했고 이것이 분교폐쇄로 이어졌다. 콩방디의 처분을 둘러싼 조사가 본교(소르본)에서 열렸지만, 본교당국은 다시 경찰을 불러들였다. 항의하는 무리에 마침내 일반 학생들까지 가세해 경찰과 충돌이 벌어졌다.
-이즐쉬르쉬프에서 관중들에게 경례하는 샤를 드골-
그리하여 학생 약 600명이 체포되고 본교도 폐쇄됐다. 「3.22운동」의 결과, 1907년에 결성되었던「프랑스학생 전국동맹(UNEF)」도 지원을 강화했고, 학생시위도 더욱 격렬해져, 5월 11일 오전 2시, 카르티에라탱거리에는 학생시위대와 경찰 사이의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학내 처우개선요구에서 비롯된 3.22 운동과 5.3운동은 학내문제에 머물지 않았고 대학 교직원조합, 노동총동맹 들을 끌어들여 드골정권을 뒤흔드는 전국 규모의 파업으로 발전했고, 이 시위로 드골정권은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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