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세기경의 몽생미셸-
여기에서 프랑스의 역사를 한 번 살펴보고 넘어가기로 하자. 프랑스역사의 시작은 대체로 프랑크족의 왕 클로비스1세(Clovis Ier)가 갈리아지방의 가장 큰 부분을 정복했던 486년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크정부 후의 프랑스정부는 이 시기부터 중단 없이 존재해온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국가이다. 만약 프랑스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대략 1190년이 돼서야 사용되었다면 필립2세의 상서국이 왕을 가리키기 위하여 프랑크족의 왕이란 단어 자리에 프랑스의 왕이란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 프랑스라는 단어는 이미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현대 프랑스지역에는 고대에 갈리아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로마 공화정 초기에 이들은 로마를 침공하여 약탈하기도 하였다. 이후에 로마가 강해져 알프스산맥 지역의 갈리아사람들을 복속시킨 후 로마문명과의 교류가 활발해졌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정복당하기 전에 이미 갈리아지역은 로마를 본떠 기초적인 국가체계가 잡혀져 있었으나, 로마의 속주로 편입된 이후로는 독자적인 문화를 잃고 로마화의 길을 걸었다.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갈리아지방을 4부분으로 나누었다. 로마화가 많이 되었던 갈리아 나르보넨시스, 아퀴타니아, 갈리아 루그두넨시스, 마지막으로 갈리아 벨기카이다. 골지방은 지금의 프랑스 보다 훨씬 크고, 특징적으로 갈리아 벨기카 지방은 지금의 프랑스영토를 많이 벗어난다.
-11~12세기의 몽생미셸-
카이사르의 정복 이후 현대 프랑스지역 전체가 로마의 속주로 편입되었다. 간헐적으로 갈리아사람들의 독립운동이 일어났지만, 제국이 붕괴할 때까지 대체적으로 갈리아지역은 로마제국에 충성하였다. 로마의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골족의 중요 인물들에게 로마제국의 원로회로 진출을 허가했다. 프랑크왕국이 수립된 5세기 말은 서로마제국이 476년에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해 멸망하고, 걸림돌이 사라진 서유럽으로 게르만족이 대거 이동하면서 국가를 수립하던 혼란의 시기였다.
게르만족이 갈리아지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의 일이었지만, 이 시기에는 대규모의 부족단위로 이동하였다. 이 시기 게르만족의 대이동은 동쪽으로부터 훈족이 압박해온 것이 이유였지만, 로마제국이 더 이상 이들을 막을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게르만족들은 이동 후에 자신들의 국가를 세웠다. 그러나 이들 중에서 서고트족, 동고트족, 반달족, 부르군트족은 멸망하였다. 게르만족의 그 흔적을 남긴 것은 프랑크족의 프랑크 왕국과 앵글로-색슨족의 잉글랜드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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