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패션의 나라, 프랑스 일주여행

74.프랑크왕국의 전성시대를 연 카롤루스 대제

달리는 말(이재남) 2022. 3. 28. 07:28

-17~18세기의 몽생미셸-

 

훈족의 쇠퇴 이후, 프랑크족은 클로비스1세가 메로빙거 왕조를 개창하면서 481년에 왕국을 수립하게 된다. 메로빙거 왕조의 개창자인 클로비스1세는 기독교의 정통파인 아타나시우스파로 개종한 뒤 다른 게르만족의 여러 부족들을 정복하고, 갈리아 중부지방까지 영토를 확장하여 왕국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메로빙거 왕조의 지배권한은 6세기 후반부터 약화되기 시작하여 실권은 왕실을 관리하던 궁재의 수중으로 넘어 갔다.

8세기에 궁재였던 카를루스 마르텔은 프랑스의 투르지역에서 이베리아반도를 통해 북쪽으로 진군하던 이슬람 군을 대파함으로써 프랑스왕국의 세력을 강화시켰다. 카를루스 마르텔의 아들인 피핀은 국내의 반발세력들을 진압하고, 약화된 메로빙거 왕조를 무너뜨린 후에 카롤링거 왕조를 세웠다. 왕조 개창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 교황에 대한 보답으로 피핀은 이탈리아북부지역의 라벤나지역을 롬바르드족으로부터 탈취하여 로마교황에게 기증하였다. 피핀의 아들 카롤루스대제는 프랑크왕국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그는 유럽 대부분지역을 정복하여 그리스도교를 전파시켰고, 중앙집권정부를 강화시켰다. 800년에는 외적의 괴롭힘을 받던 로마교황 레오3세를 도와준 일을 빌미로 황제의 자리에 올라, 서로마제국의 황제로 대관식을 가졌다.

 

-19~21세기의 몽생미셸-

 

카롤루스대제시기에는 학문과 교육을 진흥시켜, 수도원학교를 건립하였고, 프랑크왕국의 수도 엑스라샤펠에 왕립학교를 건립하여 유럽 여러 지역의 학자들을 교사로 초빙하였다. 그래서 카롤루스대제 시기 때에는 고전 자료들을 편찬하고 해석하여 학문연구가 크게 발전되었다. 이를 흔히카롤링거 왕조 르네상스라 부른다. 카롤루스대제가 죽은 후, 프랑크왕국은 크게 내분에 휩싸였다. 3남의 후계자들 간의 다툼이 일어나 혼란을 겪다가, 베르됭 조약(843)에 의해 왕국이 오늘날 독일 땅 동프랑크 왕국, 오늘날 프랑스 땅 서프랑크 왕국, 오늘날 이탈리아 땅 중 프랑크 왕국 등 셋으로 갈라졌다.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14-

 

중 프랑크를 통치하던 큰아들 로타르1세가 855년에 죽자 로타링기아를 통치하던 로타르1세의 둘째 아들 로타르2세가 869년에 죽었다. 그가 죽자 메르센조약에 의해 870년 로타링기아는 동프랑크왕국과 서프랑크왕국의 영토가 분할되어 나뉘게 된다.

 

황제가 된 나폴레옹 3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