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카페왕조의 샤를4세가 남자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그의 4촌 형제인 발루아가의 필리프6세(재위:1328년~1350년)가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여자가 직접 왕위계승이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만일 그녀의 아들에게 계승시킬 수 있다면 영국 왕 에드워드2세의 왕비 이사벨라(마지막 카페왕조의 국왕이었던 샤를4세의 누이)의 아들인 에드워드3세(재위:1327년~1377년)가 왕위계승자가 된다는 주장도 성립되었다.
이것을 핑계로 삼아 영국의 왕 에드워드3세는 프랑스왕위를 자신이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양국사이에 심각한 대립을 빚게 되었다. 이때에 영국과 프랑스를 하나로 한 거대한 왕국을 세울 욕심을 갖게 된 것이다. 필리프6세 입장에서도 자신의 신하 중에 자신을 능가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타국의 왕이기도 했다. 영국 왕이 프랑스 국왕의 신하로서 가지고 있는 봉토를 몰수하여 프랑스 국왕의 위신을 높여야 할 필요성과 욕심을 가지고 있었다. 영국 왕의 왕위계승권 주장도 참을 수 없는 일인데, 영토문제와 왕위계승권 문제로 인한 두 왕가의 갈등은 대화로 풀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백말을 탄 구국의 영웅 잔 다르크-
프랑스는 전쟁 제1기(1337~1360)동안 영국군에 밀려 패했고, 이런 불리한 상황을 제2기(1369~1396)초반에는 역전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1415년에 영국의 헨리5세가 아쟁쿠르(Agincourt)에서 프랑스군을 산산조각 내면서 크게 승리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왕실 내부적으로는 아르마냐크와 부르고뉴지방으로 당파가 나뉘어져, 헨리5세는 1420년의 트루아조약을 맺고 7년간 파리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다.
프랑스왕실의 영역은 루아르강 이남으로 제한되었다. 위기에 처한 프랑스는 1429년 잔 다르크가 등장하면서부터 전세를 뒤집을 수 있었다. 그녀는 영국군에 포위당한 오를레앙을 구하고 역대 프랑스 왕들이 즉위식을 거행한 랭스에서 샤를7세의 대관식을 치르게 하라는 신적인 음성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녀는 샤를7세의 지원을 받아 프랑스 군을 이끌어 오를레앙을 구했고, 샤를7세는 랭스가 탈환된 이후인 1429년에 대관식을 치렀다. 그러나 그녀는 부르고뉴 군에 붙잡혀 영국군에 포로로 팔렸으며, 1431년 루앙에서 종교재판을 받고 마녀로서 화형을 당했다.
-잔 다르크-그녀가 마녀라는 이유로 화형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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