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미술학교를 거쳐 상트페테르부르크 왕실미술학교를 졸업하고, 1910년 파리로 유학을 떠나 자신만의 예술적 스타일을 발전시키는데 힘을 기울였다. 아카데미 쥘리앙에서 공부하면서 피카소와 입체파의 영향을 받았다.
-생풀드방스의 대성당-
예술사학자이자 큐레이터인 제임스 스위니는 샤갈이 처음에 파리에 도착했을 때, 입체파(Cubism)가 지배적인 예술 형태였으며, 프랑스의 예술은 여전히 19세기의 물질주의적 외관에 지배되고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러시아에서 잘 익은 색채 재능과 신선하고, 감성에 대담한 반응과 단순한 시에 대한 느낌과 유머를 갖춘 채 파리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개념은 당시 파리에는 낯선 것이었으며, 결과적으로 그의 처음의 인식은 다른 예술가들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볼레즈 상드라르나 기욤 아폴리네르와 같은 시인들에게서 온 것이었다. 예술사학자 장 레이마리는 샤갈이 예술에 대한 생각을 내적 존재로부터 외부로 표출된 것이며, 보이는 사물에서 육체적 결과물로 나온 것이라는 것을 관찰했다.
그리고 그것은 입체파의 창조법과는 상반되는 것이어서 그는 기욤 아폴리네르와 로베르 들로네, 페르낭 레제와 같은 다른 아방가르드의 유명 인사들과 친교를 가졌다. 빛의 도시이자 무엇보다 자유의 도시에서 샤갈의 파리의 꿈은 이루어졌다.
-생풀드방스 대성당의 내부-
-생풀드방스 대성당의 내부-
23세의 젊은 샤갈에게 닥쳐온 최초의 역경은 대도시 속에 외로움과 프랑스어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얼마간 그는 다시 러시아로 돌아갈 고민도 했으며, 그림을 그리면서도 러시아민속의 풍부함과 유대인으로서의 경험, 가족 그리고 특히 벨라를 꿈꾸기도 했다.
파리에서 우수한 화가들이 가르치는『라 팔레트(La Palette)』에 등록을 했으며, 또한 다른 아카데미에서도 작품들을 찾기도 했다. 그는 여유시간이 있으면 갤러리나 살롱, 그리고 특히 루브르에서 공부를 했으며, 그곳에서는 렘브란트, 르넹 형제, 샤르댕, 반 고흐, 르노와르, 피사로, 마티스, 폴 고갱, 쿠르베, 밀레, 마네, 모네, 들라크루와 그리고 다른 화가들의 작품을 공부했다.
-생풀드방스의 마르크 샤갈이 묻힌 유대인 공동묘지-
-생풀드방스의 마르크 샤갈이 묻힌 유대인 공동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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