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자료 412호인『임오명각석문』
『학포해안』을 구경하고 싶어 좌회전하자 좁은 길이 마치 강원도 산길 같이 이리 구불 저리 구불 꼬불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학포항』까지 꼬불길을 어지럽게 내려오니 마치 요새 같은 느낌의 장소에 조그마한 해수욕장이 있고『태하 2리 마을회관』도 보인다. 태하마을이라는 지명이 생긴 유래는 이곳에도 황토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나, 태하보다 지역도 좁고 황토도 적었기 때문에『소황토구미』라 하였다가 마을 뒤편 암산에 학이 앉아있는 형태의 바위가 있다고 하여 학포라 부르게 되었는데 1958년경 학의 부리 부분이 비, 바람에 떨어지고 몸통만 남아 있다.
-울릉도 수충터널-
원래 이곳은 북면에 속하였으나 1903년 이 섬이 삼개면(三個面)으로 편제됨에 따라 서면에 속하게 되었으며 1914년 태화동에 합병되어 행정구역상 태하2리로 되어있다. 이곳에는 경북문화재자료 412호인『임오명각석문』이 있다. 2001년 11월 1일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412호로 지정되었다. 1882년(고종 19년)5월, 만은(晩隱) 이규원(李奎遠, 1833∼?)이 고종의 명을 받아 일본인들의 울릉도 무단왕래실태를 파악하고 울릉도 내 경작 가능한 지역을 답사하던 중 새긴 각석문(刻石文)이다. 1882년은 조정에서 울릉도를 개척하고 울릉도에 사람이 살도록 허용한 해다. 이 지역에서 현재 확인되는 각석문은 크게 네 곳에 있다. 태하리 학포 마을 남단에서 산왕각으로 가기 전 해변 바위에『검찰사 이규원 최용엽 고종팔 유연우 임오오월일(檢察使李奎遠崔龍燁高宗八劉淵祐壬午五月日)』이라는 글이 있다. 이 오른쪽에『김○규(金○奎)』, 왼쪽 하단에 어느 사람의 이름으로 추정되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또 그 뒤쪽 면에 『심선완(沈宣琓)』, 왼쪽 바위면 에『울릉도(鬱陵島)』, 오른쪽 별도의 바위에는『서상학(徐相鶴)』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나머지 하나는 비바람에 씻겨 겨우『서상학 김□□(徐相鶴金□□)』이란 인명이 보일 뿐이다.
-울릉도 학포항-
-울릉도 학포항-
-울릉도 학포항-
-울릉도 학포항-
이 글자들의 크기는 대략 10cm 내외이고 『울릉도』라는 글자만 20cm 정도이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에서 울릉도에 관리를 파견한 구체적인 증거가 된다. 이는 이규원이 울릉도 검찰관으로 파견되어 쓴 검찰일기와 왕에게 올린 보고서 초본집인『울릉도검찰일기계본초(鬱陵島檢察日記啓本草)』에도 기록되어 있다. 이규원은 1851년 무과에 급제하고 정평, 단천, 풍천부사, 울릉도 검찰사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이 각석문은 울릉도 태하리『광서명각석문』과 함께 울릉도의 근세 흐름을 금석문으로 입증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리 산 196번지에 위치하며 울릉군이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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