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팔의 여행

(22)- 인도의 연꽃사원과 마지막 방문지, 인도문

달리는 말(이재남) 2015. 12. 2. 06:04

 

 델리로 이동하던 중 레스토랑마당에서 만난 현지인들

 델리로 이동하던 중 레스토랑마당에서 만난 현지인들

 델리로 이동하던 중 레스토랑의 입구에서 연주하는 현지인들

 델리의 굽뜨미나르

 델리의 굽뜨미나르

 델리의 굽뜨미나르

 델리의 굽뜨미나르

 델리의 굽뜨미나르

 델리의 연꽃사원

  델리의 위령문(인도문)야경



                                                         인도의 연꽃사원과 마지막 방문지, 인도문


인도는 수많은 인종, 언어, 문화, 종교가 어우러져 사는 사회다. 인도는 독립헌법에서 종교와 문화의 다원주의(多元主義)를 천명했다. 아랍과 다수 이슬람국가들은 타종교의 사원과 예배를 금지하고 있는 데 비해 인도에서는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 시크교, 자이나교 사원이 공존한다. 힌두교도가 무려 전 국민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이다.

사원 안으로 들어가니 맨발로 걸어 들어가고 나오는 많은 현지인들을 볼 수 있다.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 예수교, 바라문교, 시크교, 자이나교 등 어느 종교이던 구분하지 않고 형제애를 나타내는 예배당이 사원 안에 있다. 예배드리면서 소원을 비는 곳에 들어가고 나오려면 신발을 벗어야 하는데, 그때 신발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아예 집에서부터 맨발로 거동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발을 디딜 틈 없이 북새통을 이루는 관람객들 사이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면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 틈바구니에서 몇 컷의 기념사진은 건졌다. 연꽃사원으로부터 나와 인도 문을 향해 달리는 도중에 대통령궁과 국회의사당 등을 만났다. 사진을 찍으려고 보이지 않는 곳에 버스를 세워놓고 남몰래 그리고 최대한 빠른 속도로 후딱 해치웠다. 이곳에서는 여느 일반차량도 멈출 수 없으며 더군다나 주차는 도저히 불가능한 지역이다. 물론 사진촬영은 더욱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숨어서 할 수밖에 없었다.

15분가량 버스로 달려 인도 문에 도착하였는데 이때는 이미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뉴델리 중앙, 42m 높이의 웅장한 건축물인 이문은 라즈파트(Rajpath)의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녹음무성한 주변이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곳이다. 뉴델리 한복판 넓은 녹지에 위치한 인도문은 1921년에 착공하여 10년 만에 완성하였다.

공원으로 조성된 이 문 주변은 겨울에는 소풍장소로 인기가 높고, 여름밤에는 잔디 위의 여유로움을 즐기는 인파로 가득 찬다. 이 인도문은 루티엔스(Lutyens)가 직접 디자인하고 세운 건축물로, 1차 세계대전과 1919년 아프가니스탄 북서전선 등에서 죽은 9만 명의 인도군인의 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벽면에 목숨을 바친 인도군인들의 이름을 새겨 놓으면서 「전인도 전쟁기념비」로 불렀다.

「아마르 자완 지요티(Amar Jawan Jyoti)」라는 영원히 꺼지지 않은 불이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1971년부터 이 문을 밝히고 있다. 벽 전체에 빽빽하게 당시 전사한 병사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문 안쪽에는 무명용사들을 기리는 「영원의 불꽃」을 만들어 놓았다. 마침 이 문 바로 앞에서는 군악대가 연주연습을 하고 있다.

영국왕 조지 5세의 인도방문을 환영하기 위해 세워진 이 문은, 그러니까 인도로서는 수치스러운 식민지시대의 잔재이다. 그러나 이 문 주위에 조성된 공원에는 인도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인 시바지의 동상이 세워져 침략의 상징물인 인도 문을 주시하고 있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작은 규모의 또 다른 기념문은 1972년 파키스탄과의 전쟁 때 사망한 전몰자들을 추모하며 인디라 간디(Indira Gandi)가 세운 것이다. 어둡기는 했으나 어두운 가운데에도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인도 문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