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팔의 여행

(20)- 세계적인 관광지 타지마할

달리는 말(이재남) 2015. 11. 30. 06:13

 

 아그라의 타지마할

 아그라의 타지마할

 아그라의 타지마할

 아그라의 타지마할

 아그라의 타지마할 

 아그라의 타지마할(벽문양)

 아그라의 타지마할(사리를 입고)

 아그라의 타지마할(일출)

 아그라의 타지마할(수도하는 사람들)

아그라의 타지마할(현지인들) 

 

 

세계적인 관광지 타지마할

 

여행을 시작한지 어느덧 열흘째 되는 날이다. 아침이라기보다는 새벽 4시 반에 곤히 잠든 필자를 깨우는 전화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얼떨결에 일어나 5시에 아침식사를 하려고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6시에는 호텔을 나서서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타지마할로 향한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이곳 아그라에서는 고고학유지비용을 입장료에 포함하여 받는단다. 이곳은 공해가 극심해서 타지마할은 곧 50년 후에는 무너지고 말리라는 예언을 하는 학자들이 많다고 한다. 문화재 보호차원에서 안식년제를 갖자고 제안을 하는 학자들이 있으나 아그라의 제정상태를 맡고 있는 담당자들은 입장료 문제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할 수 없는 고민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타지마할을 아그라성보다 먼저 방문하는 경우 고고학유지비용을 감해주고 있다는데, 어제 아그라 성을 먼저 방문했던 까닭은 타지마할의 석양의 경치를 카메라에 담고 싶은 우리를 위하는 인솔자의 배려였다. 타지마할의 입장료는 500루피, 고고학 유지비용은 250루피나 된다.

그런데 50루피를 미화 1달러로 환산하여 고고학유지비는 5달러를 지불하면 되기 때문에 미화로 지불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실제로 40루피를 미화 1달러로 환전하여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지마할에 들어가려면 미화로 환전하여 입장료 및 고고학 유지비를 지불하고 입장표를 구입하는 것이 유리하다.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는 델리와 더불어 화려하게 번성한 무굴제국의 수도였다. 「천국의 정원」이라는 뜻의 아그라바나에서 지금의 아그라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이슬람 세력이 이곳에 터를 잡기 시작한 것은 약 500년 전 부터이다. 무굴제국을 일으켜 세운 바부르에게는 인도 아리아족이 아닌 몽골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바부르 이후 후마윤의 아들 아크바르황제는 아그라의 주인이 되면서 이 도시는 문학과 건축 및 예술에 있어 엄청나게 발전시켰다. 후세에 아크바르황제의 손자 샤자한이 왕이 되면서 아그라는 찬란하게 빛을 발하게 된다.  타지마할은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 아그라 교외에 있는 왕실무덤으로 인도의 대표적인 이슬람건축물이다. 1631년 무굴왕조 제5대 황제 샤자한이 36세로 세상을 떠난 왕비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을 위해 야무나 강 오른쪽 연안에 세운 것으로, 완성하는데 22년이 걸렸다. 타지마할이란 「마할의 왕관」이라는 뜻이다.

건축 주체는 큰 4각형 기단 위에 세워져 한 변이 56m, 중앙 큰 돔의 높이가 58m이며 기단의 4귀퉁이에는 발코니가 달린 회교사원의 첨탑, 미너렛이 서 있다. 이들 건축의 소재는 모두 흰색 대리석으로, 바깥쪽 대리석면에는 검은색·노란색 등의 귀석(貴石)으로 상감하여 장식하고 있다. 묘당 내부중앙에는 왕비의 묘석, 그 옆에 왕의 것을 안치하였으며, 주위에는 투각된 대리석 병풍이 둘러져 있다.

진짜 묘석은 지하묘실에 안치되었다. 묘와 누문(樓門) 사이에는 분수를 1열로 설치한 가늘고 긴 못이 있고 정원은 이슬람식으로 만들었다. 또 양쪽에는 적사암(赤沙岩)으로 만든 모스크와 집회당이 대칭을 이루며 세워져 있어 전체적인 균형을 이루고 있다. 설계자는 황제의 주임건축가 우스타드 아흐마드 라호리라고 하나 이는 확실하지 않다.

무굴제국의 샤자한 황제가 1631년에 데칸 원정 때, 왕비 뭄타즈 마할산후 조리를 잘못해서 죽었다. 왕비는 결혼해서 17년 동안에 14명의 아들딸을 낳았는데 15번째를 낳다가 숨을 거둔 셈이다. 타지마할은 뜨겁게 사랑했던 아내 뭄타즈 마할을 애도하고 기념하고자 이듬해인 1632년 에 착공해서 1654년에 완공한 것이다.

멀리 시리아와 바그다드, 페르시아 등지에서 건축가와 공예가들이 모여들고, 2만 명의 일꾼들이 무덤을 짓는데 12년, 정원과 타지문과 동서쪽 건물에 5년, 타지문 밖에 왕의 애첩과 비들의 무덤과 기도소를 짓는데 5년이니 모두 2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래서 타지문 위에 가지런한 희고 작은 돔도 22개로 만들어서 짓는 데 걸린 햇수를 나타냈다. 가로 300m에 세로 580m의 넓은 부지에 높이가 30m나 되는 당당한 적사암의 정문이 있고, 그 아치형 정문을 들어가면 샘물과 정원을 앞에 두고 타지마할의 위용이 좌우대칭으로 자리 잡고 있다.
타지마할의 뒤편으로는 야무나 강이 흐르고 있는데 높은 축대로 쌓여진 야무나 강 쪽의 뒷면을 제외한 타지마할의 삼면은 모두 높은 담이 둘러져 있다. 아들 아우랑제브(Aurangzeb)에 의하여 왕위를 뺏기고 아그라 성(Agra Fort)에 감금된 후 그곳에서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죽을 때까지 지내야 했던 샤자한에게 아들, 아우랑제브의 마지막 호의로 그 곁에 함께 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너무 일찍 입장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현지인들과 세계에서 몰려든 수많은 관광객들이 타지마할을 감상하고자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정문이라고 할 수 있는 무케두아르의 문 안으로 들어가니 아름다운 정원과 하얀 백합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타지마할을 볼 수 있다.

완벽한 상하좌우의 대칭으로 물에 비친 무덤은 너무나 환상적이면서도, 네모반듯하게 꾸며진 정원은 정말 놀랍다. 정원과 백색의 대리석 건물이 빚어내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실과, 불가사의한 건축물로 인정받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점이 풀린다.

타지마할에서 많은 시간을 머물고 있는 동안 급해진 소변을 해결하기 위해 입구의 양편에 위치한 화장실 가운데 오른쪽편의 화장실에 다녀오게 됐다. 입구로부터 화장실에 이르기까지 인도 전역의 문화재를 사진으로 전시해 놓았다. 이 사진작품들은 인도문화재의 새로운 맛을 더해주고 있다.

다시 일행들을 만나려고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사진작가, 이우석 님의 사진촬영이 계속되고 있다. 몇 가지 색깔별로 준비해온 사리를 여성모델에게 입히고 여러 가지 포즈를 취하게 한 다음 여러 컷의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사진촬영을 위해 준비해온 사리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그는 또 필자부부와 친구부부의 사진을 각각 촬영해주었으며 우리 4명이 함께한 사진도 정성스럽게 찍어주었다.

2시간 이상의 긴 시간동안 타지마할을 관람하고 밖으로 나온 우리는 입구에서 전기용 소형버스를 타고 전용버스가 대기하고 있은 곳으로 나왔다. 모든 공해로부터 타지마할을 보호하기 위하여 취해진 조치로 공해가 없는 전기를 사용하여 움직일 수 있는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전기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여기서도 엄청난 수의 인도사람들이 들러붙는다. 온갖 기념품을 들고서 사라고 조른다. 아니다. 강요한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어린소년들이 자기 가게에서 기념품을 구입해달라고 애걸하면서 끌다시피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 인솔자는 이 혼란스런 주변을 정리하기 위해 우리일행들이 한 상점으로 들어가도록 한 후 가격을 원만하게 조정하여 구입하도록 해주었다.

타지마할을 본뜬 상품을 기념품으로 사가지고 전용버스에 올라탄 시간은 거의 9시가 다됐다. 여행은 눈으로만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작은 돈을 얼마나 잘 사용하면서 기념품을 사가지고 돌아가는 가에 여행의 묘미가 함축되어있기 때문에 그 맛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