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팔의 여행

(19)-난공불락의 궁성, 아그라 성

달리는 말(이재남) 2015. 11. 27. 06:07

 

 아그라성 임구

 아그라성 임구

 아그라성 정원과 자한기르 궁전

 아그라성입구(입장표를 사려고 서있는 모습

 아그라의 아그라성

 아그라의 아그라성

 아그라의 아그라성

 아그라의 아그라성

 아그라의 아그라성

아그라성의 무심버즈에서 자무나강 건녀편의 타즈 마할

 

 

대체적으로 나이가 많은 분들로 이루어진 일행

 

누군가가 인솔자에게 건의를 했던 모양이다. 오늘은 마이크를 일행에게 넘겨주면서 자기소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주로 필자의 옆 좌석에 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배석인 어르신께서는 연세가 79세인 노령이시다. 걷기에는 조금 불편해하시면서도 모든 것을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소화하시는 분이다. 여러 종류의 직업에 종사하셨으나 영화제작에도 크나큰 업적을 남기셨던 화려한 과거를 소개했다.

우리들에게는 사진작가로 통하는 이우석 님은 안산의 중학교 교장으로 금년 8월말로 정년퇴직을 하신 선생님출신이다. 퇴직 후에 취미생활을 하고자 배우게 된 사진에 푹 빠져 열성적으로 활동하고 계시다는 설명을 붙였다. 사진작가와 함께 여행에 참석하신 김한철 님도 안산의 한 중학교 교장출신이며 마찬가지로 금년 8월 말에 정년퇴직을 하신 분이다.

인천공항에서부터 알게 된 김용진 님은 생산업을 주로 하는 중소기업인, 부부가 전주에서 참석하신 분으로 하나뿐인 딸과 사위 그리고 손녀딸이 인도에서 생활하고 있어 우리와 인도여행을 모두 마치게 되면 일주일쯤 딸의 가족과 함께 인도에 더 머물 것으로 말씀하신다.

김인복 님은 종교에 많은 관심과 연구를 하고 계시는 분으로 그 부인과는 띠 동갑이라고 하셨는데 72세 되셨다고 했다. 그리고 부산의 해운대에서 여행에 참가하신 송완순 님은 초등학교 교장출신으로 2년 전에 정년퇴직했다고 하셨다. 필자의 친구이자 대학의 동기동창인 이무수 님은 서울의 한 중학교로부터 8년 전에 명예퇴직을 하였으며 아주 오래 전부터 우표 수집을 취미로 아주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고 본인을 소개했다. 이번 여행에서 배석인 님과 룸메이트로 만난 장중길 님은 대구로부터 이번 여행에 참가하셨다는데 그분이 하신 말씀가운데 생각에 떠오르는 것은 부인이 약사여서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마이크를 잡고 본인 소개를 하신 마지막 분인 이인현 님은 아들, 이근호 군과 함께 이번 여행에 참여하신분이다. 그리고 여성의 친구 두 분, 김정옥 님과 김영주 님, 그리고 신중술 님과 여성 한 분은 각각 홀로 참여하신 분들이다. 필자 부부를 합해 모두 20명이 인도여행에 참여했다.

 

난공불락의 궁성, 아그라 성

 

중간에 한 번 버스에서 내려 휴식을 취하고 줄곧 달려 아그라의 아그라 성으로 갔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엄청난 수의 인도사람들이 들러붙는다. 온갖 기념품을 들고서 사라고 졸라댄다. 아니 강요한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이 아그라는 관광객들을 봉으로 알고 사기를 치는 현지인들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친절하게 길을 안내하겠다고 따라붙는 인도사람의 대부분은 음료수에 독을 타서 마시게 하고는 병원으로 안내해서, 의사와 짜고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하니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이밖에도 무궁무진한 수법으로 나그네를 등쳐먹는 아그라의 사기꾼들을 쫓아버리는 방법은 각자 자신이 스스로 알아서 조심하는 도리밖에 없으리라. 엄청나게 많은 관광객들로 성의 입구부터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비고 있다.

아그라성은 붉은 사암으로 지은 왕궁이라기보다 무굴제국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철옹성으로 완벽한 천혜의 요새이다. 원래는 군사적 목적으로 건설되었지만, 샤자한의 치세 기간에는 궁전으로 사용되었고, 1658년 제6대 황제 아우랑제브가 왕위를 차지하고 나서는 아버지 샤자한의 감옥이 되었다.

아들과의 싸움에서 진 샤자한은 아그라성에서도 그의 부인 몸따즈 마할의 무덤인 타지마할이 가장 잘 보이는 무심만 버즈(포로의 성)에서 8년을 살다가 결국은 병사하게 됐다. 아그라성 내에는 제항기르 팰리스가 있다. 이곳에는 아크바르황제가 어렵게 얻은 아들과 살림을 위해 지은 건물이 있다.

힌두양식과 아프가니스탄 양식의 건축기법이 혼합되어 묘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곳이다. 사실 아크바르와 제항기르 부자는 샤자한과 아우랑제브 만큼이나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부자간의 반목이 이어지게 된 이유는 무굴제국의 후계자 계승방법에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

무굴제국의 후계자 계승은 장남에 의한 평화로운 정권이양이 아니라 철저한 능력위주로 결정이 된다. 그러므로 혈육 간의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왕자들은 황제가 죽거나 중병에 걸릴 때를 대비해 개인군대를 거느렸고, 이는 끝없이 피를 부르는 결과를 낳게 했다. 이런 이유로 무굴제국의 정권이양은 한 번도 평화롭게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야무나 강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아그라 성은 아크바르 황제가 1565년에 짓기 시작해서 1573년에 완공한 난공불락의 궁성이다. 아마르 신문 그 안에는 중앙에 자한 황제의 거실이요, 북쪽에는 목욕실 등 많은 사암과 대리석 건물이 들어차 있다. 아그라 성을 쌓을 당시 24세의 아크바르(Akbar)는 이 성을 철옹성으로 만들기 위하여 최고 높이가 50m에 이르는 성벽을 머리카락 한 올도 낄 수 없도록 쌓았다. 2.5km가량 둘러친 다음 성벽 밖에는 10m 가량의 폭을 지닌 수렁을 파놓았는데 입구로는 성의 남쪽에 아마르 싱 게이트(Amar Singh Gate)하나만을 두었다.

이렇듯 철옹성으로 지은 아그라 성을 지금의 도시처럼 변모시킨 이는 바로 샤자한(Shah Jahan)으로 할아버지 아크바르가 지은 성을 지금의 호사스런 곳으로 바꾸어 놓았다. 샤자한은 성을 단순히 적의 침입을 막는 요새로만 생각하지 않고 호사스런 건축물을 가미해 아그라 성을 요새이자 왕궁으로 발전시켰다.

우리는 이 어마어마하게 큰 성안을 둘러보면서 설명도 듣고 기념사진을 찍느라고 분주히 움직였다. 원래는 아그라성의 관광을 마치면 타지마할의 석양의 아름다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리라 계획을 세웠으나 너무 늦게 도착하였기 때문에 카펫을 파는 상점에 들어가 설명을 듣고 호텔로 들어오니 7시쯤 되었다. 7시 반에는 호텔레스토랑으로 들어가 저녁식사를 했다. 그리고 일행들의 서로 연락할 수 있는 연락처를 적어, 복사하여 나누어 가졌다. 그리고 그제 밤에 묵었던 호텔에 들어와 샤워를 하고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