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팔의 여행

(21)- 인도의 정치와 문화가 함께 숨 쉬고 있는 도시, 델리

달리는 말(이재남) 2015. 12. 1. 06:10

 

 아그라의 아그라성의 델리 문(Delhi gate)

      아그라의 타지마할

아그라의 타지마할

아그라의 타지마할 

 아그라의 타지마할(벽문양)

 아그라의 타지마할(벽문양)

 아그라의 타지마할(일출)

 아그라성 정원과 자한기르 궁전

 아그라성 정원과 자한기르 궁전

아그라의 타지마할

 

 

인도의 정치와 문화가 함께 숨 쉬고 있는 도시, 델리

 

타지마할을 뒤로한 채 버스는 힘차게 달려 나갔다. 중간에 내려 점심식사를 하고 또 달리다보니 오후 3시 반 쯤 델리에 도착하였다. 부자와 가난한 자, 초현대식 도시와 빈민가가 서로 맞물려 공존하는 대도시, 인도의 수도 델리는 이 나라의 정치와 문화가 함께 숨 쉬고 있는 곳이며 인도의 미래가 태어나고 있는 곳이다.

인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000달러를 돌파했고, 4년 평균 8.6%의 고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뉴델리에서는 왕복 8차로 도로가 교통제증을 빚는다. 도요타, 포드, 혼다 스즈키 차량의 틈새를 현대차들이 비집고 달리는 모습도 보인다. 대우자동차 상용차부문을 인수해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인도의 타타모터스는 최근 세계에서 가장 싼값의 초저가 소형차 나노를 개발했다.

뉴델리는 인도의 수도로서 야무나 강을 동쪽에 끼고 있으며 올드델리와 뉴델리 지역으로 크게 나뉜다. 올드델리는 인도가 회교군주에 의해 다스려지던 13~19세기에 중심지이었다. 뉴델리는 1911년 인도를 통치하던 영국이 수도를 캘커타에서 델리일대로 옮기며 개발한 곳이다.

인도에 들어서는 주요관문 중의 하나인 뉴델리는 인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여주는 서로 다른 면모를 지닌 채 잘 어우러져있다.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인 뉴델리는 인도의 야심가들이 꿈을 펼치는 무대였다. 거대한 대륙위에 군림함으로서 뉴델리를 장악하기 위해 펼치는 갖가지 연극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줄을 잇고 있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 뉴델리의 비중은 봄베이에 비해 떨어진다.

올드델리의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구시가와 뉴델리지역의 도시계획에 의한 시가지가 이국의 여행자들에게 색다르고 강렬한 느낌으로 선뜻 다가서는 곳이다. 뉴델리 구역엔 2개의 기차역이 있고 올드델리 구역에도 1개의 기차역이 있다. 가장 큰 기차역은 뉴델리 기차역이지만 델리 기차역이나 뉴델리의 남부에 있는 니자무딘 역을 시발역이나 종착역으로 삼고 있는 기차도 많다.

샤자한에 의한 우람한 유적들인 레드포트 등이 있고 인터스테이트 버스터미널 등을 끼고 있는 올드델리의 기차역은 델리역이라고 지칭되고 있다. 델리에 도착하여 맨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꾸뜹 미나르다. 입구에서 지금까지 함께 여행을 해오던 김용진님의 부부와 작별을 고하는 시간이다.

이분들은 딸과 사위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아쉬운 작별을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꾸뜹 미나르는 일종의 승전 탑이다. 터키계 이슬람왕조를 창시한 꾸뜹 웃 딘 아이바크가 인도 북부점령을 기념하기 위해 건설한 것이다. 그 크기는 지름이 15m, 높이는 72.5m에 이르는 인도 최대의 석탑이다.

석탑은 벽돌을 하나씩 쌓아올려 정교하게 만들어 논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중간 중간에 들어간 조각이 매우 정교하며 코란의 경구를 새겨 넣었다고 한다. 본래는 내부에 379개의 계단을 두어 각 층마다에 발코니로 통하도록 하였지만 현재로서는 출입이 금지되고 있다.

사람의 손이 닿은 곳은 그 어떤 문화재라도 견뎌내지 못하므로 취해진 조치라고 생각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인도를 처음으로 방문하는 방문객들이 놀랄만한 내용으로는 내국인과 외국인의 입장료 차이는 거의 10배가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문화유산의 관람은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고서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꾸뜹 미나르 유적지에서는 또 다른 탑의 흔적을 볼 수 있다. 꾸뜹 미나르 보다 훨씬 큰 규모로 계획되었고 1층은 완성시켰지만 알라이 미나르를 계획했던 알라 웃 딘이 암살당하는 바람에 더 이상 건축이 계속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알라이 미나르의 지름은 25m나 되는 것으로 미루어봐 높이도 100m에 육박하는 엄청난 건축계획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쿠코넛 플레이스에서 남쪽으로 14km 떨어진 거리에 있는 꾸뜹 미나르 일원의 유적들은 담장으로 묶여 관리되고 있다.

붉은색 사암으로 겉이 단장된 이 승전 탑은 1326년에도 개축을 했었지만 페로즈 샤(Feroz Shah)에 의해 1368년 개축을 거치며 4층과 5층이 대리석과 사암으로 장식되고 둥근 천정이 얹혔으며 1829년 지진에 의해 허물어졌다. 꾸뜹 미나르와 같은 부지에 회교사원(Quwwat-ul-Islam Mosque)이 자리하고 있다. 쇠기둥이 박힌 마당이 있는 이 사원은 인도에 있는 회교사원 중 초기의 것에 속한다. 쇠기둥은 7.2m의 단순한 형태를 지닌 것이다.

이 쇠기둥에 새겨진 6줄의 산스크리트어에 의하면 이 쇠기둥은 굽타(Gupta)왕조의 찬드라굽타(Chandragupta)2세를 기념하며 비슈누(Bishnu)사원 마당에 세워진 것인데, 어떻게 하여 당대에 이만한 정도의 순도를 지닌 철 기둥을 만들어 낼 수 있었는지를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어느 누구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쇠기둥이 이곳으로 옮겨진 것은 10세기쯤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이 사원의 전설에 따라 이 철 기둥에 등을 대고 팔을 돌려 깍지 끼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사진촬영하기에 좋은 요소마다 찾아다니며 기념촬영을 하기에 바쁜 시간을 보냈다.

꾸뜹 미나르를 떠나와 연꽃사원으로 향하였다. 27개의 꽃잎을 형상화해 신비감을 더한 바하이 사원(연꽃사원)은, 1986년 완공된 뉴델리의 바하이사원이 가장 아름답기로 손꼽힌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모든 바하이사원은 숫자 9를 신성시 하는 종교적인 특성에 맞춰 구면체로 이루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