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여행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의 여행(33)-키바칸의 여름궁전인『타쉬 하울리 궁전 광장』

달리는 말(이재남) 2013. 8. 29. 07:22

                                     

           타지기스탄 후잔드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모스크 중 하나인 주마 모스크와 미나렛

           타지기스탄 후잔드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한모스크 중 하나인 주마 모스크와 미나렛

          12세기에 살았던 후잔드의 지배자이자 시인이었던 쉐이크 마살라딘 영묘 공원

           12세기에 살았던 후잔드의 지배자이자 시인이었던 쉐이크 마살라딘 영묘 공원

          12세기에 살았던 후잔드의 지배자이자 시인이었던 쉐이크 마살라딘 영묘 공원

          12세기에 살았던 후잔드의 지배자이자 시인이었던 쉐이크 마살라딘 영묘 공원

           쉐이크 마살라딘 영묘공원에서 바라본 후잔드의 모습

          쉐이크 마살라딘 영묘공원옆 러시아식 건물

           쉐이크 마살라딘 영묘공원의 모자이크

          쉐이크 마살라딘 영묘공원의 모자이크

            쉐이크 마살라딘 영묘공원의 모자이크

           타지기스탄 후잔드 시내 

 

 

 키바칸의 여름궁전인『타쉬 하울리 궁전 광장

 

 

식사를 마친 필자일행은 판치산베 시장으로 들어갔다. 재래시장으로서는 중앙아시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시장이라고 남자가이드, Usmonov는 강조했다. 과연 그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크기도 했지만 시장입구부터 내부를 잘 단장해놓았고 질서정연하게 상품을 진열해놓고 거래를 하고 있었다.

남자들끼리 모여 여기저기 구경하다가 술을 판매하는 상점에 들어가 김성복 선생님은 이 나라의 술 2병을 구입했다. 우리네 소주와 비슷한 술이라고 했다. 시장 바로 앞,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모스크 가운데 하나인 주마 모스크와 미너렛을 구경하며 카메라에 담았다.

12세기에 살았던 호젠트의 지배자이자 시인이었던쉐이크 마살라딘 영묘와 메드레세(이슬람신학교)를 구경했다. 차를 타고 간 키바칸의 여름궁전인타쉬 하울리 궁전광장에는 타지키스탄 화폐에 나오는 이스마엘 소모니의 동상이 서있다. 소모니라는 돈은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화폐 단위이다. 타지키스탄 건국의 아버지인『아흐마드 이븐 이스마일를 기념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아흐마드 이븐 이스마일(Ahmed ibn Ismail) 혹은 아흐마드 사마니는 사만왕조의 지배자이다. 아흐마드는 아버지 이스마일이 사망한 해에 아미르(사령관)로 등극하였다. 또한 아바스왕조의 칼리파 알무크타디르(Al-Muqtadir)로부터 사파르왕조의 중심부였던 시스탄(Sistan)지역의 통치 권리를 인정받았다.

한편 사파르왕조의 내분은 사만왕조의 침략을 용이하게 했다. 사만의 군대는 파라에서 버스트(bust)로 진격하였으며 소수의 저항군을 만났다. 그와 동시에, 사만의 장군 시뮤르(Simjur al-Dawati)는 무압달(Mu'addal)에서 온 자란즈(Zaranj)의 투항군을 받아들였다.

결국 사만왕조는 911년에 사파르왕조의 정복을 완수했다. 아흐마드는 이듬해에 사촌인 만수르 이븐 이샤크(Mansur ibn Ishaq)를 시스탄의 총독으로 임명하였다. 또한 칼리파를 거스르는 반역자 세부크(Sebük-eri)를 붙잡아 바그다드로 이송했다.

그러나 시스탄의 총독으로 부임한 만수르의 과도한 세금정책은 반란을 야기했다. 결국 자란즈의 요새는 파괴되었으며, 만수르는 붙잡혔다. 그 후 사파르왕조의 아무르('Amr ibn Ya'qub)는 반란군의 꼭두각시로 집권하여 차츰 왕의 권리를 되찾았다. 그러나 후세인(Husain ibn 'Ali Marvarrudhi)이 지휘하는 사만의 군대가 이 지역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아무르는 사마르칸트로 유배되었으며, 반역지도자들은 처형되었다. 그리고 장군 시뮤르가 시스탄에 새로운 총독으로 집권했다. 하지만 타바리스탄과 고르간에서 사만 왕조의 권위에 반발해 다시 반란이 일어났으며, 아흐마드는 부하라 근처의 숙소에서 잠을 자다가 자신의 노예들에게 914년 1월 12일에 참수 당했다.

아흐마드를 살해한 노예의 일부는 붙잡혀 처형당했지만, 나머지는 투르크메니스탄으로 도망쳤다. 아흐마드의 사체는 부하라로 옮겨졌으며 나우칸다(Naukanda)에 묻혔다. 그리고 그는 순교한 왕으로 그려졌다.

필자일행은 타쉬 하울리 궁전 광장에서 내려오자 곧 Oybek border국경선을 향하여 달리기 시작했다. 국경선의 출입국관리실이 닫히기 전에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서두르고 있는 중이다. 영어가이드 두 사람은 이란의 아리안 족의 피를 이어받은 사람들이다.

필자의 여권에 이란비자를 보여주었더니, 그들도 금년 5월에 다녀왔음을 자랑삼아 본인들의 이란비자를 보여주면서 그때 찍어온 사진을 공개했다. 31세의 MRS. Farangis13세 된 아들과 7세 된 딸을 둔 아줌마이고, 32세의 MR. Kaykhusrav Usmonov는 아직 장가를 가지 않은 총각이다.

그는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 본인의 목표를 달성하기까지는 결혼을 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버스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웠는데 1시간쯤 달려 국경에 도착, 아쉬운 작별의 인사와 함께 해어졌다. 비록 짧은 시간의 만남이었으나 그들의 삶의 의지를 엿볼 수 있어 보람차고 의미가 있는 만남이었다.

출국과 입국의 수속을 거치면서 또 한 시간쯤 흘러 우즈베키스탄의 굴리아를 만났다. 국경선에서 타슈켄트에 도착한 시각은 7시경이고, 시내의 MR. Kim's house에 들어가 김치찌개백반을 맛있게 먹었다. 김성복 선생님이 주문한 보드카 한 병을 일행들이 조금씩 나누어 마시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