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여행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의 여행(9)-티무르가 태어난 곳, 샤크리샵즈

달리는 말(이재남) 2013. 7. 6. 07:00

                                     

 우즈베키스탄 샤크리샵(티무르시대의 대표적인 건축물 악사라이 궁전)

 샤크리샵(악사라이 궁전)-영어가이드 굴리아와 함께 포즈를 취한 필자

샤크리샵(악사라이 궁전의 광장에서 촬영한 그림)

 사마르칸트를 벗어나는 도로위에 카쉬카다리아라 브릿지(게이트 역할을 하며 경찰관이 차량검사를 하고 있었다)

 사마르칸트를 벗어나는 도로위에 카쉬카다리아라 브릿지(게이트 역할을 하며 경찰관이 차량검사를 하고 있었다)

사마르칸트를 벗어나 샤크리샵에 가까운 마을의 경계를 알리는 도로표시판

사마르칸트시를 벗어나 샤크리샵즈로 이동중에 만난 농촌풍경

사마르칸트시를 벗어나 샤크리샵즈로 이동중에 만난 농촌풍경

사마르칸트시를 벗어나 샤크리샵즈로 이동중에 만난 농촌풍경

샤크리샵에 가까운 마을을 지날 때 주택에 난 불을 끄고 있는 광경

 

 

티무르가 태어난 곳, 샤크리샵즈

 

 

버스에 가방을 싣고 8시에 호텔을 출발, 티무르가 태어난 곳, 샤크리샵즈를 향하여 달렸다. 사막을 2시간쯤 달렸는데 화장실이 있을 만한 장소를 만나지 못했다. 언덕이 있는 사막의 한가운데 차를 세우고, 남성들은 왼쪽의 언덕너머로 여성들은 오른쪽 언덕너머로 볼일을 보기 위해 나누어 갔다. 버스가 서있는 곳으로 돌아와 다시 출발했다. 이 사막의 온도는 정말 대단했다.

샤크리샵즈는 고원지대로서 남쪽으로는 파미르고원과 함께 아프카니스탄, 타지키스탄과 가깝다. 여행 내내 보아왔던 그 숱하던 돔형의 모스크들도 못 찾는 것인지 정말 없는 것인지 이 지역에서는 보이질 않는다. 목적지로 가는 내내 이곳 사람들은 앞마당 정도밖에 되질 않는 황무지 밭을 일구고 버텨가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이 열악한 환경에서 어떻게 생활해 나가는 것일까? 나라가 부유하다면 저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겠지만 이곳의 형편이야 누구를 구제해주고 말고 할 처지가 아니지 않던가! 습도가 낮아 견딜만하기는 했으나 40를 오르내리는 온도에서는 마실 물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마실 물을 충분히 챙겨서 마시기는 하지만 하루에 3병은 마셔야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마르칸트를 벗어나는 도로 위에는 카쉬카다리아 브리지를 세워 게이트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경찰관의 검사가 있은 후 통과시켜주었다. 버스는 열심히 달려 80km의 샤크리샵즈까지는 2시간 남짓 만에 도착하였다.

대원제국이라 불리며 몽골제국이 세력을 떨치고 있던 14세기에 이란, 이라크, 시리아, 인도의 델리, 터키의 앙카라, 러시아의 모스크바에 이르기까지 정복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아미르 티무르이다. 그는 칭기즈칸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을 칭기즈칸과 동일한 선상에 놓이기를 원했다.

티무르는 1370~1508년에 존속했던 티무르제국의 시조이다. 유럽에서는 "절름발이 티무르"라고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전투 중 다리를 다쳐 발을 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는 투르크계인 바를라스 부족 출신으로, 1336년 사마르칸트에서 남쪽으로 80km 떨어진 현 샤크리샵즈에서 태어났다.

성장한 티무르는 차가타이한국의 분열을 틈타 1360년대 현재의 우즈베키스탄 전역을 장악하고, 1370년 자신을 사마르칸트의 주권자로 선언했다. 그때의 군사령관은 아미르(Amir)란 호칭을 사용했는데 그를 아미르 티무르가 불렀다. 그는 평생 한 번도 전쟁에서 진적이 없는 용감했던 맹장으로 알려져 있고 중앙아시아 전역을 제패하고 인도에서 흑해연안까지 영토를 확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