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여행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의 여행(6)-『아프라시압 박물관』의 아프라시압 벽화

달리는 말(이재남) 2013. 7. 3. 06:20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비비하님 모스크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레기스탄광장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티무르대제인 구르 에미르묘의 벽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박물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박물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박물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박물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박물관의 아프라시압벽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박물관의 아프라시압벽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샤흐이진다 대영묘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시를 벗어나 샤크리샵즈로 이동중에 만난 농촌풍경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를 벗어나 샤크리샵에 가까운 도로의 가로수

 

 

아프라시압 박물관의 아프라시압 벽화

 

 

너무 덥다. 잠시 쉬어『아프라시압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아프라시압 박물관은 사마르칸트의 동북쪽 언덕에 자리한다. 구소련 고고학자들이 사마르칸트성이 있었던 아프라시압 언덕에서 발굴한 고고학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사마르칸트는 알렉산더대왕의 원정과 중국 장건의 서역개척으로 완성된 오아시스실크로드의 중심지였다.

동서양의 문명과 종교, 유리, 의술, 종이 등이 전파된 문화교류의 연결고리였다.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에서도 사마르칸트의 유서 깊은 역사를 읽을 수 있다. 이곳에서는 알렉산더대왕의 동방원정기념품인 칼을 비롯해 정교한 도자기와 토기, 동전, 전통의복 등이 전시돼 있었다.

또한 사원과 사막을 축소한 모형도 볼 수 있다. 이곳의 대표적인 소장품은 7세기의 『아프라시압 벽화(Afrasiab Mural painting)』이다. 사마르칸트 귀족이 살았던 저택의 벽을 장식했던 것을 통째로 옮겨온 것이다. 이 벽화는 당시 바르후만에게 시집가는 차가이나 공주의 결혼식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특히 조우관(鳥羽冠)을 쓴 고구려 사신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어 당시 고구려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아프라시압 벽화』는 중앙아시아와 한민족의 역사적 교류의 증거물로서 이 벽화를 손꼽을 수 있다. 1975년에 알리바움은 우즈베키스탄공화국 과학원에서 발굴보고서『아프라시압 벽화』를 발표하여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그는『아프라시압 벽화』를 고증하는 가운데 한민족의 의상을 발견했다고 주장하였다. 두 사람은 앞에 있는 사신들과 머리장식에서 구별된다. 첫 번째 사람은 머리에 차양이 없는 모자를 쓰고 있다. 또한 진주로 장식된 리본이 머리 둘레를 조이고 있고, 머리꼭대기에는 두 개의 깃털이 꽂혀있다. 그의 머리는 짧고 검은색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얼굴은 밝은 색을 띄고 있다. 세부적으로 그림을 연구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레몬색의 옷자락이 긴 옷을 입고 있다. 그리고 그 옷은 허리에 넓고 검은 띠로 주름이 잡혀있다. 밑으로 내려가서, 넓적다리에는 옷이 왼쪽으로부터 오른쪽으로 몸을 감싸면서 좁혀져 있다.

가벼운 비단으로 만들어진 넓은 바지는 부드러운 주름을 타며 복사뼈까지 내려져 있고 끝에는 줄로 묶어져 있다. 단화는 부드럽고 앞 끝이 댕겨져 올라가 있다. 손은 넓은 소매에 감추어져 있으며, 선물은 보이지 않는다. 넓적다리 부분에는 왼쪽 방향으로 곧바로 꽂힌 칼이 있다.

칼집 위로는 하트모양을 가진 두 개의 고리가 있는데, 이는 칼을 고정시키기 위해 허리에 있는 검은 띠와 두 줄로 연결되어 있다. 두 번째 사신도 똑같은 옷을 입고 있다. 그의 옆얼굴은 밝은 갈색을 띄고 있으며, 코는 약간 낮다. 알리바움은 이 사신들의 새의 깃털이 꽂힌 머리 장식을 보고 이들의 국적을 고구려인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 당시 한민족이 중앙아시아 지역까지 왕래를 했다는 것은 매우 감격적인 사건이다. 이 당시에 중앙아시아의 소그드인 또한 당과 실크로드를 통한 많은 교류를 하고 있었다. 한국의 고려시대는 국제무역이 매우 활발하여 멀리 아라비아상인들이 고려를 방문했다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