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울르그벡 메드레세(이슬람신학교)내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레기스탄광장의 시르도르 메드레세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울르그벡 메드레세(이슬람신학교)내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울르그벡 메드레세(이슬람신학교)내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울르그벡 메드레세(이슬람신학교)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울르그벡 천문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레기스탄광장의 울르그벡 메드레세 박물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울르그벡천문대의 초상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레기스탄광장의 시르도르 메드레세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레기스탄의 악기점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레기스탄의 악기점 주인과 포즈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레기스탄광장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레기스탄광장
사마르칸트를 대표하는 레기스탄광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고 사마르칸트를 대표한다는『레기스탄(Registan)광장』으로 옮겨갔다. 레기스탄 광장은 3개의 메드레세로 둘러싸여 있으며 오늘날 가장 뛰어난 동양건축물의 집결체로 꼽히고 있다. 메드레세는 중세이슬람의 신학교를 말하며 레기스탄은 "모래 광장"을 의미한다.
메드레세는 신학과 함께 천문학, 철학, 역사, 수학, 음악 등을 연구하는 종합대학의 역할을 수행했다. 옛날에 레기스탄에서는 왕에 대한 알현식, 공공집회가 열렸단다. 이 광장은 15세기 및 17세기에 두개가 더 증축되어 좌측에는 이슬람종교건축물인『울루그벡 메드레세』,우측으로는『시르도르 메드레세(Sher-Dor Madrassah)』, 중앙에는『티라카리 메드레세(Tirakari Madrassah』에 둘러싸여 있다.
현재도 레기스탄 광장에서는 매년마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빛과 소리의 제전"을 여는데, 여기서 티무르제국의 사라진 영화를 엿볼 수 있다. 좌측의 이슬람종교건축물인 울루그벡 메드레세는 3개의 건물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며, 티무르의 손자 울루그벡에 의해 1417년에 짓기 시작하여 1420년에 완공되었다.
입구는 푸른 돔과 아치형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주로 이슬람신학대학으로 천문학, 철학, 수학 연구소로 사용되었으며 티무르제국의 학술연구의 근원지였다. 입구의 문에는 "학예를 연마하는 것은 모든 이슬람국민의 의무"라고 쓰여 있다. 학문을 장려했던 울루그벡은 정치가라기보다는 뛰어난 학자로서 학문을 장려했다.
그의 덕택에 이 메드레세는 15세기 이슬람지역에서 가장 뛰어난 신학교이자 천문학 등 이른바 세속학문의 요람이 될 수 있었다. 지진과 18세기 초의 전쟁 등으로 입구의 돔 등은 부분적으로 파손되었다. 이슬람신학교를 구경하고 나오니 3시 40분이 되었다.
너무 더워 지치기는 하였으나 울루그벡 천문대와 박물관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하였다. 천문대는 20세기 들어 발굴됐는데 당시 페르시아 등지에서 저명한 천문학자들이 모여 들었다고 한다. 이 천문대는 1428~1429년에 걸쳐 티무르 손자인 울루그벡에 의해 건축되었으나 그가 죽은 후 내분에 의해 일부분이 붕괴되었다.
현재 천문대의 기본골격과 6각형 천체관측기의 지하부분이 남아 있다. 당시에는 거대한 대리석으로 높이 40m의 관측 돔이 있었다. 태양, 달, 행성의 고도를 정밀하게 측정하고 지구의 위치, 시간을 결정하였으며, 당시 측정한 1년은 실제 기간과 1분 정도의 차이밖에 없었다고 한다.
울루그벡은 티무르의 손자이자 위대한 학자, 천문가, 정치가였다. 특히 그가 이룩한 천문학적인 업적은 오늘날에도 높이 평가될 만큼 뛰어난 것이었다. 별들의 거리를 측정하는 거대한 규모의 기구, 육분의를 통해 놀랄 만큼 정밀한 천문관측이 이뤄졌으며 이 성과는 17세기 유럽으로 전파됐다.
현명한 군주 울루그벡이 암살당한 이유가 이와 같은 그의 학문을 중시하는 정책 때문에 참지 못한 승려들의 사주를 받은 그의 아들이 보낸 자객에 의해 암살당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레기스탄의 우측 시르도르 메드레세는 "용맹한 사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티무르제국 이후 이 지역을 통치한 우즈베키스탄의 영주인 야한그도르에 의해 1619~1636년에 건설되었다. 현관에는 아기사슴을 쫓는 사자와 태양처럼 빛나는 사람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본래 이슬람교에서는 우상숭배를 부정하여 기하학적 문양이 기조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 메드레세 내의 그림은 영주가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인간과 동물의 모습을 담게 했다고 한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에서 통용되고 있는 200숨의 지폐 도안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레기스탄 광장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티라카리 메드레세는 "금색으로 입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야한그도로 바하도르 영주에 의해 1647년에 건설이 시작되어 1660년 완공되었다. 이슬람대학과 종교집회 장소로 사용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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