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틱3국의 여행

발트3국과 상트페테르부르크 그리고 핀란드의 여행(19)-리투아니아의 옛 수도였던 카우나스

달리는 말(이재남) 2013. 5. 25. 09:22

                            

           리투아니아 옛 수도,카우나스의 용도를 모르는 건축물

             리투아니아 옛 수도,카우나스의 옛 교회

           리투아니아 옛 수도,카우나스의 구시가지 카우나스성

             리투아니아 옛 수도,카우나스의 구시가지 카우나스성

             리투아니아 옛 수도,카우나스의 구시가지 게스트 하우스

            리투아니아 옛 수도,카우나스의 구시가지

             리투아니아 옛 수도,카우나스의 구시가지

            리투아니아 옛 수도,카우나스의 구시청사 광장

             리투아니아 옛 수도,카우나스로 옮겨가던 중 만난 풍차

 

 

 리투아니아의 옛 수도였던 카우나스

 

 

카우나스로 가는 길은 평지와 숲, 그 가장자리에 삶의 터전인 밭들이 굴곡진 형태로 아름답게 필자의 눈에 다가와 주었다. 카우나스(Kaunas)는 인구 약 40만 명 정도가 거주하는 리투아니아 제2의 도시이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카우나스가 정식으로 도시로 인정받게 된 것은 1408년으로, 600년이 넘은 오랜 역사를 간직한 도시이다. 리투아니아를 흐르는 양대 젖줄인 네무나스(Nemunas)강과 네리스(Neris) 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카우나스는, 이런 입지적 조건으로 리투아니아 초기부터 사람들이 터전을 잡기 시작하였다.

러시아, 폴란드, 독일 등 주요 거점 지역으로 통하고 있어 군사적, 경제적인 중요성 역시 대단했다. 15세기 당시 독일기사단이 유럽 전체로의 팽창을 위해 동방진출을 꾀했을 때는 리투아니아의 고대 수도인 트라카이와 빌뉴스를 호위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리투아니아는 최초로 독립을 이루었으나 폴란드에게 수도 빌뉴스를 불법 점령당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1939년까지 카우나스가 리투아니아의 임시수도가 되어서 현대사의 서곡을 알리는 역사적 사명을 수행하기도 했다.슈레이를 출발한 필자일행이 리투아니아의 옛 수도였던 카우나스에 도착한 시간은 5시 20분이다. 과거 소련도시들은 전부 하나같이 레닌대로, 스탈린대로, 가가린대로 같은 소련 영웅들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곤 했다. 하지만 카우나스의 한가운데 자리 잡은 중심거리의 이름은 바로 라이스베스 알례야, 우리말 뜻은 자유로로서 거의 완벽한 자유가 보장된 거리였다.

카우나스 구시가지의 주요 볼거리들은 빌뉴스거리와 시청광장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베드로 바울성당」이 있었다. 전쟁과 화재를 겪으면서도 수백 년 동안 끊임없이 확장 증축되어 리투아니아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성당의 외부 벽에는 19세기 말 바로 이 성당에서 주교로 일하며 리투아니아 민족의식 부흥의 중심적인 위치에 서 있었던 신부이자 시인인 마이로니스(Maironis)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

시청광장 한가운데 서 있는 구시청사는 그 도도한 백색 이미지 때문에흰 백조 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1542년 최초로 그 자리에 들어선 이래 성당, 감옥 등 여러 가지 기능으로 바뀌어 내려오다가 18세기 말에 현재의 습으로 개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