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타이완여행

17.상해의 명문재정가 집안의 3자매

달리는 말(이재남) 2012. 11. 18. 22:36

상해의 명문재정가 집안의 3자매

 

 -타이페이 국립고궁박물관 주변-


그 절에서 나온 일행들은 타이베이에 밤에 선다는 화서가 야시장을 구경하러 갔다. 용산사 바로 옆에 있는 야시장을 걸으면서 왕덕명씨의 설명을 들으며 구경했다. 화서가 야시장은 타이베이에서도 가장 오래된 야시장의 하나로 약 200여 점포가 양쪽에 늘어서 있고 해산물요리, 식당, 한약방, 일용잡화점 등이 집중되어있었다.
특히 이곳은 뱀을 즉석에서 잡아 생피 혹은 뱀의 요리를 즉석에서 만들어 팔기 때문에 외국인들에겐 뱀의 거리로 불리기도 한다. 이 야시장 앞에 있는 식당에서는 타이완 사람들이 즐겨먹는 음식, 스낵점 등이 늘어서있었다. 왕덕명씨는 음식점에 들어가더니 테이블을 중심으로 앉아서 기다리란다. 잠깐 후에 이 나라의 과일을 먹을 수 있도록 깎아서 가지고 왔다.
대만 타이페이의 모습
그래서 이곳에서 생산되는 과일의 맛을 볼 수 있었다. 야시장을 구경하고는 버스로 1시간을 달려서 Holiday Hotel까지 갔다. 그 호텔의 801호실에 체크인하고 나서, 간단하게 샤워를 마쳤다. 그리고 오늘의 여행에 관한 기록을 하고 나니 12시가 거의 다 됐다. 왜 피고하지 않겠는가? 내일의 여행일정을 위해 잠을 자야겠다.
2005년 10월 22일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5시 30분에 모닝콜이 있었다. 오늘은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아쉬움이 느껴온다. 준비를 하고 1층에 있는 호텔레스토랑에 내려갔더니 4명의 여자친구일행은 벌써 식사를 마치고 레스토랑을 나서고 있었다.
그러나 출발시간이 7시 30분이므로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 밖으로 나가니 우리가족이 제일 늦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버스에 타려는데 이슬비가 내리고 있다. 호텔로부터 타이베이 시내로 들어가는 동안 왕덕명씨는 타이완과 중국과의 관계, 장개석과 모택동 관계, 장개석의 부인 송미령과 송미령의 3자매에 얽힌 이야기, 타이완의 장례문화 등 많은 관심사를 이야기 해주었다.
대만 타이페이 공원의 모습

광동(廣東)사람, 손문(孫文)이 무너진 청나라를 대신하여 세워진 공화(共和)정권의 수반이 되었다. 1911년 10월 10일, 무창의 군인들이 봉기하여 신해혁명의 불을 댕겼다. 양자강 중류의 호북성의 수도인 무창에 주둔하고 있던 약 3천명의 군인들이 청나라 타도를 외치며 궐기했다.
2000년을 지탱해온 중국 전제왕조체제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부의는 1912년 2월 정식으로 물러났다. 그런데 송미령의 언니 송경령은 상해의 명문재정가 집안의 3자매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다.
미국 조지아 주의 웨슬리안 대학을 졸업. 1913년 손문의 비서로 대외연락 및 서신업무 등을 맡아보다가 1915년 일본 동경에서 나이 차이가 엄청나게 나는 손문과 결혼했다. 그녀는 국민당 중앙 집행위원으로 있으면서도 국민당의 좌파 또는 온건파의 위치에서 손문의 혁명정신을 정면으로 비판했다가 곤욕을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