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타이완여행

18.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 타이완의 유명한 국립고궁박물관

달리는 말(이재남) 2012. 11. 18. 22:37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 타이완의 유명한 국립고궁박물관

-타이베이 한국음식점(장수관)-



그녀는 1927년에 공산당에 입당하여 공동봉기에도 참여하였고 일선 지휘관으로 활약하다가 항일 군정대학 교장을 지내기도 했다. 건국 후에는 인민해방군 총참모장, 국방위원회 부주석, 중앙정치국 위원들을 거쳤다. 1978년부터 1980년까지 국무원 부총리 겸 국방부장을 지냈다. 1990년 9월 21일에는 북경에서 병으로 사망했다. 그런데 그녀의 동생이자 장개석의 부인인 송미령여사는 언니가 죽었는데도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생을 후회하면서 살았다는 이야기였다.
송경령여사는 중국의 국모로 추앙을 받고 있으며, 그녀의 동생인 송미령여사는 타이완의 국모로 추앙을 받고 있다니 대단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타이베이 거리를 지나면서 특이한 점은 오토바이의 행렬이었다. 굉장히 많은 오토바이들이 자동차들과 섞여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베트남에 비교해 그리 심한 편은 아니었다. 신호대기를 할 때는 자동차보다 앞쪽으로 모여서 정렬해있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그리고 시내곳곳에 건물들 앞쪽엔 오토바이들이 수 십대씩 나란히 주차해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타이베이는 자동차보다 오토바이를 교통수단으로 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는 것 같았다. 좁은 땅덩어리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때문인지 도로는 보통 3층 구조로 되어있고 왠지 시가지도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중심가에 있는 건물은 최신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인데 반해 대로에서 조금만 골목길로 들어서면 거의 대부분 낡은 건물들이 허름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너무나 낡고 허름해서 마치 빈민촌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그래도 아파트 베란다에 화분들을 많이 가꾸고 있어서 내면의 여유를 보이고 있었다. 가이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도착한 곳은 면세점이었다. 면세점문이 아직 열리지 않은 것을 보니 우리일행이 너무 일찍 도착하였나보다. 20분 동안 타고 간 버스 안에서 가이드로부터 타이완에 얽힌 이야기를 더 들었다. 면세점에 들어가서는 그야말로 아이쇼핑을 했을 뿐이다.
가이드 그는 면세점에 들어가는 것을 꺼려했다. 그러나 여행사로부터 의무적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하니까 마지못해 들어가겠노라고 말을 했다. 금방 면세점 밖으로 나오니 버스는 우리일행을 내려놓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면세점 앞에는 주차를 할 수 없었던지, 우리일행이 면세점 밖의 벤치에 앉아있으려니 가이드의 전화를 받고 우리를 싣기 위하여 곧 돌아왔다. 우리일행을 태운 그 버스는 타이완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 그 유명한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대만의 고궁박물관 전시품-원~명 초
대만의 고궁박물관 전시품-원, 명의 도자기
대만의 고궁박물관 전시품-목공예

국립고궁박물관은 본관이 3층으로 되어있고 별관이 따로 있었는데 별관은 증축중이어서 일부만 공개하고 있었고, 본관에는 황실에서 쓰던 물건 ,고서화, 옥(玉)제품 등이 전시되어있었다. 78만 여 점의 유물들을 3개월 단위로 품목을 바꿔서 전시한다고 했다.
타이베이시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인 국립고궁박물관은 파리의 루브르,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모스크바의 에르미타쥐와 더불어 세계 4대 박물관으로 손꼽히는 명소다. 중국역사와 세계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되어 있고 그 세계 역사의 흐름 속에 한곳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의 문화유산도 감상할 수 있다.
대만의 고궁박물관 전시품
 

중국 문화가 모두 그렇듯이. 수치든, 수량이든, 하여간에 숫자로 나타내는 계산법이 일단 사람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무엇이든 크고 많고 방대한 것이다. 국립고궁박물관도 마찬가지다. 이곳의 소장품은 본래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이 타이완으로 건너올 때 자금성 안에 보관 되어있던 것들을 타이완으로 옮겨온 것이다. 장개석 총통이 즐겨 했던 말 가운데 “공산군에게 영토는 내줘도 문화유산만큼은 넘겨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만리장성을 뺀 대부분의 유물을 상해를 통해 이곳 타이완으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