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타이완여행

(마지막편)-여행의 마무리

달리는 말(이재남) 2012. 11. 18. 22:41

여행의 마무리                                                                                   

 

-타이페이의 한국음식점에서-

타이완 국민혁명과 대일 전쟁 중에 전사한 애국지사 및 장병들의 영령을 모시기 위하여 건립된 성역이다. 1969년 5만여 ha의 규모로 건립되었으며 베이징의 태화전의 형태를 빌어 만들어졌다.  이곳에는 전사한 군인들의 사진, 동상, 훈장 등을 모아 놓았으나 내부는 관광객들에게 개방하지 않는단다.
충렬사의 볼거리로는 매시간 벌어지는 위병 교대식을 손꼽을 수 있다. 육.해.공군 의장대들이 3개월마다 주기적인 교대 근무를 하는데, 위병들은 정문에서부터 시작하여 본전에 이르기까지 약 100m되는 거리를 행진하여 교대식을 벌인다. 위병들의 절도 있는 행동과 의식을 통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대만 충렬사의 위병교대식

대만 타이페이의 충렬사


충렬사 정문을 통과, 점심식사를 하기위하여 장수관으로 옮겨갔다. 그 장수관은 화교가 운영하는 음식점인데 쌀밥에 불고기를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자 왕덕명씨는 커피전문점에 들어가 우리일행이 마실 수 있는 커피를 사서 들고 버스 안으로 날라다 주었다.
타이완의 가이드, 그는 31살이란다. 그는 화교출신 부산여자와 결혼하여 남*여 쌍둥이를 낳았는데 아이들이 보고 싶어 일이 끝나면 집으로 직행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한국 에서 태어나서 22세까지 서울에서 살았단다. 그의 할아버지는 상인이었는데 한국전쟁 때 한국에서 전쟁을 맞이하여 그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에서 살게 되었단다. 그의 부친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았는데, 그는 22세 때 타이완에 들어와 살게 되면서 현재는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다고 했다.

 

 

 대만 타이페이 공원의 모습

대만 타이페이 공원의 모습


버스 안에서 커피를 한잔씩 마신 일행을 태운 버스는 중정공항을 향하여 출발하였는데 공항으로 가는 길은 교통체증이 심해서 공항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BR 160편 여객기를 탑승하는2시15분이 거의 다돼서 공항에 도착하여 바쁘게 짐을 부치고 보딩을 해야 했다.
인천공항 행 비행기가 중정공항을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기내식 저녁식사가 제공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이번에도 레드와인 한잔을 마시니 적당하게 기분이 좋았다. 2시 40분에 중정공항을 출발하여 인천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6시 10분이었으니 시차 1시간을 감안하면 2시간 30분이 소요된 셈이다.
비행기에서 내려 짐 가방을 찾은 다음 세관 대에서는 세관신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였다. 수차례에 걸쳐 외국여행을 다녀왔으나 우리나라 세관에 신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하는 일은 처음 있는 일이였다. 우리가족은 짐 찾는 장소에서 미리 다른 일행과 작별인사를 나누었으므로 처제부부가 익산에 갈 수 있도록 전주행 공항버스에 태워 보냈다. 장모님과 우리부부는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공항버스를 탈 수 있었다.

 

대만(가오슝 렌츠탄(용호탑) 야경)

대만(가오슝 렌츠탄(용호탑) 야경)


그런데 우리가 귀국하는 날이 토요일인데다, 여의도에서 불꽃놀이가 있어서 서울의 교통체증은 말할 수 없으리만큼 혼잡하였고 그런 가운데에도 집에 도착하여 시간을 확인해보니 9시30분을 넘어선다. 건강하고 즐겁게 여행을 마치고 집에 무사히 돌아온 내 자신이 갑자기 행복감으로 충만해진다.
사람은 자기가 가진 지식만큼 보이고 또 보이는 만큼 느끼며 살아간다고 하지 않던가? 필자는 이번 여행으로 러시아와 베트남과 타이완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고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여행은 사람을 알게 한다고 한다.
6일간의 계속된 만남으로 말미암아 생면부지의 일행들을 짧은 시간동안에 정으로 묶어주지 않았던가? 여행의 일정들이 한 동안 생각도 나고 친하게 지냈던 일행들이 그리워 온다. 일상에서의 탈출과 베트남과 타이완의 문화체험의 시간이 삶의 기쁨과 에너지를 듬뿍 안겨 주 었음은 더 이상 말로 표현할 필요가 있겠는가?  

 참고문헌 : 베트남의 문화  타이완의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