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터키 여행

터키의 에페소는 주로 유적지나 기독교 성지여행의 성격을 많이 띤다.

달리는 말(이재남) 2007. 4. 5. 11:11

 

누가의 무덤이 있는 곳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누가의 무덤에서는 잠깐 동안 설명을 듣고 사진을 찍었다.

그곳 누가의 무덤으로부터 조금씩 걸어가면서 소아시아시대의 수도였고 기독교의 중심지였으며 사도 요한이 살다가 죽은 곳, 에페소를 관광했다.  그래서 기독교에 있어서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도시 그 에페소의 유적지를 돌아보게 됐다.

옛 항구도시는 지금은 바다가 수 킬로미터가 물러나 있는 내륙 도시로 변해버렸다. 지중해를 돌아다니던 배들이 이곳에 도착해 짐을 부렸던, 또 이곳에서 짐을 싣고, 로마로, 알렉산드리아로, 안타키아(안디옥)로 떠났던 소아시아의 수도가 에페소였다.

 

에페소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 문화 유산중의 하나이다.

 

에페소는 전설까지 포함에 5,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소아시아의 수도였었으며, 터키 땅에 있는 2개의 세계 칠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였던 아르테미스 신전이 있던 곳이며, 또한 기독교의 성지로 사도 바울이 오랜 동안 머물렀고, 또 성모마리아가 살았다고 하는 예루살렘 다음가는 성지이기도 한 곳이 바로 에페소다. 너무도 당연하겠지만 이곳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 문화 유산중의 하나이다.

우리가 잘 보존된 에페소를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멘데레스강의 덕분이다. 멘데레스 강이 부지런히 흙을 날라서 항구의 바닥을 메웠고, 덕분에 항구는 낮아진 수심 때문에 배가 들어올 수없었고, 항구의 기능을 잃은 에페소는 도시로서의 기능을 잃게 되었다.

사람들이 떠난 에페소는 오랜 세월동안의 퇴적작용에 그 모습을 감추었었고, 이제야 세상 사람들에게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에페소는 에게해 연안에 위치한 고대 도시로 도시 전체에 유물이 산재해 있었다.

사실 에페소는 여러 유적이 발굴되고 있지만 정확하게 도시의 기원을 알 수는 없단다. 다만 역사적으로 많은 민족과 문화가 이곳을 지나갔으며 그로 인해 수많은 유적을 볼 수 있는 유적 도시가 되었다.

에페소는 로마제국 당시 아시아의 수도를 페르가뭄에서 에페소로 옮긴 덕에 많은 건축이 이루어지고 문화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로마 황제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와 이곳에 체류하기도 했으며, 이후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더욱 번성하여 로마의 대도시로 성장하였다.

기원후에는 기독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는데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이곳에 전도 여행을 와 교회를 세우기도 하였다. 하지만 7세기부터는 오스만제국의 힘이 커져 잦은 침략으로 피폐해 갔으며 이후에는 오스만튀르크의 통치에 놓이게 되었다.

현재의 에페소는 역사 유적과 건축, 기독교 성지순례를 하는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에게해의 한가로움과 지중해의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는 여행지다. 이스탄불이나 앙카라 등 대도시에서 멀어 여행하기에는 쉽지 않지만 도시 곳곳에 산재한 유적들과 한적함으로 점점 더 많은 여행객이 찾고 있는 모습이었다.

에페소는 주로 유적지나 기독교 성지여행의 성격을 많이 띤다. 대부분의 유적이 시내나 박물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어질 당시의 노천에 그대로 있어 노천 박물관이라고 불릴 정도다.

유적들은 기원전 후에 지어진 것이 많으며 부서지고 무너진 시간의 흔적을 그대로 갖고 있다. 유적지 곳곳을 다니면서 성서에 나왔던 곳, 인터넷에서 미리 찾아보았던 곳 등을 짚어 가면서 흥미롭게 볼 수 있어 좋았다.

위쪽 입구로 들어가서 처음으로 눈에 뜨이는 건축물중의 하나가 바로 오데온이다. 많은 사람들이 원형극장으로 착각하는 오데온은 다름 아닌 실내극장이다. 오데온의 규모만 보아도 당시 에페소의 규모가 짐작이 될 것이다.

온통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도로를 따라서 위쪽부터 순서대로 옛 에페소의 시청건물, 도미티안 황제의 신전, 헤라클라스의 문, 공중목욕탕, 트라이안 황제의 님파니움(분수, 샘터), 화장실, 유곽, 에페소의 빌라를 지나면 정말 아름다운 건물에 도착하게 되는 데 그것이 바로 도서관 건물이다.

당시 세계에서 알렉산드리아와 페르가뭄 다음으로 컸다는 세계 3번째의 도서관이었다. 대리석 도로를 따라서 길을 계속가면 터키에서 가장 큰 반원형 극장에 도착하게 된다. 정말 크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이탈리아의 폼페이를 방문한 사람은 에페소를 폼페이와 비교하는 경향이 있는 데, 에페소는 폼페이보다도 무려 10배 이상은 크다. 당시 인구를 두고 말하는 것인데 에페소의 인구는 25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에페소는 주로 유적지나 기독교 성지여행의 성격을 많이 띤다.

 

에페소를 둘러보는 데는 빠른 걸음으로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이 둘러보아도 한 시간 반은 족히 걸린다. 그런데 셀수스 도서관은 에페소 유적의 대표적인 유적지 격으로 135년 줄리우스 이퀼라가 그의 아버지인 셀수스를 위해 지었다고 한다.

셀수스는 당시 이 지역의 총독으로 부임해 통치하였으며 이곳에서 생을 마쳤다고 하는데, 도서관은 많은 부분이 무너졌지만 외벽은 아직도 굳건히 서 있으며 벽에는 화려한 문양과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리저리 연결된 도서관의 지하가 홍등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2세기경에 지어진 하드리아누스 신전 건물은 로마황제를 기념하는 하드리안 황제와 에페소의 시민, 아르테미스 여신을 위해 지어졌다. 건물은 다른 유적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부분이 손실되었지만 남아있는 부분만으로도 그 아름다움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입구에 있는 기둥은 아치를 이루고 있는데 조각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안으로 들어가면 아테네, 아폴로신 등 여러 신들이 조각되어 있으며 데오도시우스 황제와 그의 아버지, 아내, 아들도 조각되어 있다.

그런가하면 로마시대의 원형극장인 대형극장은 돌로 만들어진 야외극장으로 연극과 같은 공연 혹은 시민회의 등이 열린 곳이란다. 약 25,0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으며 대부분의 야외극장처럼 산기슭의 경사와 높이를 이용해 반원형으로 지어졌다.

건축 초기에는 공연을 위한 곳으로만 이용되었지만 이후 로마제국의 유행(?)에 따라 검투사 혹은 맹수와의 결투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한다. 또한 기독교적으로는 사도 바울이 선교 중에 이곳에서 수난을 받았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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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고대도시 에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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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고대도시 에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