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톰 남문입구-
-앙코르톰-
-앙코르톰 남문-
씨엠립-앙코르왓- 1층 회랑-
인천공항 행 리무진공항버스를 타다.
2006년 4월 7일 아침 7시 20분, 손자 (형우)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딸 (수국)이 출근하는 길에 공항버스 하계정류장에 우리부부를 태워다주었다. 조금 기다려 인천공항에 가는 리무진 버스에 타고 나니 「이제 여행을 떠나는 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출근시간이라서 그런지 내부순환도로는 붐비는 듯 했지만 자유 로를 통과하여 인천방향으로 달릴 때는 별로 어렵지 않게 달려주어서 약속시간에는 지장이 없어보였다. 지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 일찍 공항에 도착하여 오히려 시간을 보내는데 어려움이 뒤따른다.
공항 내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노랑풍선여행사와 약속된 장소에서 여행사에서 파견된 직원을 만나 항공 표와 서류를 받아, 10시 40분에 J34에서 짐(가방)을 부치고 티켓 팅을 하면서 출국수속을 밟을 수 있었다.
11시 45분에는 타이완의 원동항공(Far Eastern Air Transport)에 탑승하고, 12시 10분에는 인천공항을 이륙하여 가오슝 공항을 향하게 되었다. 인천공항을 출발한지 1시간쯤 시간이 흘렀을까? 항공사로부터 점심식사가 제공되었다. 그 점심식사를 하면서 레드와인을 한 잔 주문하여 아내와 나누어 마셨더니 적당하게 기분이 좋아진다.
약 3시간의 비행 끝에 가오슝 공항에 도착하여 출입구로 나오니 항공사직원이 환승카드를 나눠주고, 티켓에 맞춰 직원이 탑승권을 미리 뽑아서 게이트 앞에서 교환해준다. 환승티켓으로 바꾸어가지고 잠깐 동안 휴식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면세점으로 걸어가는데 우렁차 시식하는 장소가 있어 우렁차와 과일 말린 것을 함께 시식을 했다.
길지는 않았지만 시간 여유가 있으므로 공항 안쪽을 걸으면서 사진촬영 하는 시간도 가졌다. 우리나라와 한 시간의 시차를 보이므로 15시 5분에 EF5753편에 탑승하여 15시 15분에는 이곳 가오슝 공항을 이륙하였다. 공항을 출발한지 1시간이 흐른 다음 간식과 주스를 제공하였다.
시엠 립에 도착하기 조금 전 비행기 안에서 입국비자신청서와 세관신고서를 작성하는데 한참 동안의 시간을 보냈다. 캄보디아의 시엠 립 공항에는 17시 20분에 도착하였으니 우리나라와의 2시간의 시차를 나타내는 캄보디아이므로 약 3시간의 비행을 한 셈이다.
캄보디아는 서기 802∼1432년을 앙코르시기라고 한다.
캄보디아는 일반적으로 서기 802년에서 1432년까지를 앙코르시기라고 한다. 이는 자야바르만(Jayavarman) 2세가 의식을 집행하여 자신을 우주의 군주로 임명한 때부터 메콩 강 동부 지역인 바싼(Basan)에서 1434년 캄보디아 남부의 프놈펜으로 수도를 옮겨 앙코르에서 크메르로 이름이 바뀌면서 막을 내린다.
이 당시에는 크메르 제국의 영토와 문화적 역사적 건설들이 방대하게 이루어졌다. 앙코르의 창시자인 자야바르만 2세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게 없다. 그에 대한 기록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다만 스독 깍 톰(Sdok Kak Thom)에서 발견된 11세기의 비문에 최초의 왕인 그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다. 비문에 따르면 그는 캄보디아로 돌아오기 전 인도네시아의 사이렌드라스(Sailendras) 왕조의 법정에 서 일정시간을 보낸 것으로 나타나 있다.
9세기 초반에 자야바르만 2세는 수도를 앙코르 톰의 동북부 지역인 마헨드라파르바타 산(Mt. Mahendraparvata, 현재의 프놈 꿀렌 Phonom Kulen)으로 다시 옮기고 자신을 우주의 지배자라고 명명한다. 서기 802년의 이 역사적인 사건은 크메르 국가의 통합, 그리고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된, 독자적인 앙코르시기로 접어든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그는 새로운 종교적인 신앙인 데바라자(devaraja)를 설립한다. 그리고 그 후 곧바로 수도를 롤루오스로 다시 이전하였는데, 이곳은 그가 사망한 850년까지 수도 역할을 하였다.
자야바르만 2세 이후의 왕들은 앙코르 제국의 통합과 확장을 지속적으로 이루었는데, 비문에 의하면 앙코르 기간동안 39명의 왕의 이름이 거명되고 있다. 이 중 7명의 왕이 의미 있는 업적들을 남겼다고 평가되어 앙코르 문명에서 중요시되고 있다.
인드라바르만 1세(Indravarman 1, 877∼889년)는 사원의 산(바꽁 Bakong)의 건설을 시작했고, 선조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한 사원(프레아 꼬 Preah Ko), 수도 하리하랄라야 Hariharalaya)에 바라이(baray)와 인드라땃까(Indratatka)를 건설한다.
그의 아들 야소바르만 1세(Yasovarman 1:889∼900년)는 롤루오스에 롤레이(Lolei)를 건설하는데, 이는 자신의 아버지가 건설한 커다란 바라이 중앙의 섬에 건설된 것으로 조상들을 기념하기 위한 사원이다. 또한 그는 10세기 초반을 제외한 500년 간 앙코르의 수도였던 야소다라푸라(Yasodharapura)로 수도를 이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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