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동부,캐나다여행

미국동부와 캐나다를 다녀와서(7)

달리는 말(이재남) 2005. 10. 27. 10:46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으로부터 바라본 맨하탄 빌디숲-

 

 


86층에는 기념품과 음료수를 살 수 있는 관광객들을 위한 매점이 있었으며, 또한 맨해튼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우리는 그곳에서 내려다보이는 허드슨 강을 포함한 맨해튼 빌딩 숲의 사진을 찍었다. 도로를 달리고 있는 승용차는 마치 장난감 자동차처럼 보였으며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은 개미처럼 작게 보였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에서 내려온 우리일행은 U. N 본부를 방문했다. 이 국제연합(U. N) 은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유지하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국제협력을 증진시키는 역할을 하는 국제기구를 말한다.

1946년 붕괴된 국제연맹을 계승한 것으로 국제연합이라고 한다. 이 명칭은 미국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고안한 것이며, 제1차 세계대전 중 26개국 대표가 모여 추축국에 대항하여 계속 싸울 것을 결의하였던 1942년의 “연합국 선언”에서 처음 사용하였다.

 

뉴욕의 센트럴파크

 

국제연합은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소련과 여타 서명국 과반수가 국제연합헌장을 비준한 1945년 10월 24일에 공식출범하였고, 이후 매년 10월 24일을 국제연합의 날로 기념하고 있으며 우리가 방문한 국제연합(U. N)본부는 뉴욕 시에 두었다.

그 국제연합 건물 1층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휴식공간이 있고 기념품 가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물도 마시고 그리고 화장실에서 볼일도 보고, 시원한 장소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U. N 본부의 건물 밖으로 나오면서 그 입구에서는 기념촬영을 하기에 바빴으나 곧 할렘가에 관한 설명을 가이드로부터 들으면서 버스 안에서 구경할 수 있었다.

그 할렘가는 1860년대 자유를 찾아 뉴욕 주로 온 유태인들에 의해 형성되었다. 당시 유태인들 가운데는 대단한 부자가 많았다.  뉴욕 시에서는 유태인들의 자본을 들여 도시를 개발하기 위해 할렘가 개발청사진을 보이며 이곳에 투자할 것을 권유했고 이를 수용한 유태인들에 의해 남북전쟁이 끝나갈 무렵 할렘가에 6?7층의 빌딩들이 들어섰다.

그때 마침 노예가 해방되었고, 갈 곳이 없던 흑인들이 뉴욕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의식주를 빌어서 해결하던 흑인들이 유태인들이 건설한 할렘가로 자리를 잡으면서 방화와 약탈을 일삼자 유태인들이 할렘가를 포기하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게 되었다.

할렘가는 이때부터 흑인 거주지역이 되면서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흑인하면 기본적으로 무섭다는 인식이 있으나 꼭 그렇지만 않다. 원래 미국 땅에 노예로 끌려와 가진 것이 없고 배운 것도 없기 때문에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지 못하고 열악한 환경 속에 살아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뉴욕의 월 스트리트에 위치한 뉴욕 증권거래소로, 세계 최대의 증권 거래소이다.

 

사람들이 접근하기를 꺼려하던 할렘가도 요즘은 좋은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물론 도보관광보다는 차량을 이용한 순례를 권하며 우리일행도 버스를 타고 할렘가를 순례하면서 가이드 애스터의 설명을 들었다. 낮에는 도보관광도 그리 위험하지 않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음습해 보이는 빈 건물들이 즐비하였다. 더럽고 지저분하기만 했던 할렘가가 깨끗한 거리로 변모한 것은 이탈리아계 줄리안이 전 뉴욕시장이 들어서면서부터 이였단다.

그는 취임이후 재력이 있는 흑인들을 설득시켜 할렘가에 투자하도록 해서 흑인들이 이에 동참했고, 그 후 부서지고 상처 난 건물들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가로를 깨끗하게 단장해서 관광지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110?200가는 흑인 거주지역이고 200?230가는 히스피닉(남미)계 거주지역이다. 할렘가의 거리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트릴 정도로 아주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할렘가에서 택시의 승차거부는 문제가 되지 않으며, 택시의 운전석과 뒷좌석 사이에는 방탄유리가 설치된 차량이 운행되고 있었다.

 

뉴욕 맨해튼의  차이나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