캉(Caen)은 프랑스 서북부 바스 노르망디 칼바도스에 있는 도시이다. 2007년도에 조사한 캉의 인구는 112,478명이 살고 있는 바스 노르망디 지방과 칼바도스 현의 행정중심지이다. 영국해협에서 내륙으로 15km 들어간 지점의 오른 강 연안에 위치한다.
오른 강과 운하를 통해 영국해협과 연결되는 항구도시이다. 11세기 정복 왕 윌리엄(윌리엄 1세)시대 때 노르망디의 한 중심지가 되었고, 그도 이곳에 묻혔다. 「정복왕」으로 불리는 윌리엄1세는 평생 프랑스인으로 살았고 프랑스 땅에 묻혔으며, 영어는 한 마디도 말하지 못했다.
읽거나 쓸 줄도 몰랐다. 잉글랜드에 머물렀던 때도 생애를 통틀어 아주 일부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영국을 있게 한 역사인물을 꼽는다면, 그는 적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든다. 정복왕 윌리엄 또는 사생아왕이라 불리는 윌리엄은 노르망디 왕조의 시조이자 잉글랜드의 국왕이었다.
그는 1035년 노르망디공작이 되었다. 노르망디공작으로서는 윌리엄2세(William II)이고, 잉글랜드국왕으로서는 윌리엄1세이다. 그는 노르망디공화국을 서프랑크왕국(프랑스)과 대등할 정도로 발전시켰다. 1066년 도버해협을 건너 잉글랜드침략을 개시하여 헤이스팅스전투에서 잉글랜드 왕 헤럴드2세에게 크게 승리하게 되었다.
-캉 성에서 바라본 생테티엔 대성당-
-캉 성에서 바라본 생테티엔 대성당-
윌리엄1세가 잉글랜드를 점령함에 따라 잉글랜드의 왕조는 노르만왕조가 되었다. 그는 1087년 9월 9일에 사망하였는데, 그가 묻힌 캉(Caen)은 1346년 에드워드3세가 정복하여 잉글랜드의 지배하에 있다가 1450년 프랑스로 넘어왔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이 도시는 중요한 요충지 중 한 곳이었으며, 크게 파괴되었다가 전쟁 후 근대적인 도시로 재건되었다. 11세기에 건립되어 윌리엄 왕과 왕비 마틸다가 각각 묻힌 생테티엔 대성당과 트리니티 성당이 남아 있으며, 그 외의 역사적인 건물들도 복원되었다. 남자수도원은 프랑스북서부의 중세역사도시 캉에 있는 유서 깊은 수도원이다.
현재 캉 여자수도원(Abbaye-aux-Dames), 캉 성(Château de Caen) 등과 함께 지역의 주요한 중세건축물이자 관광명소로 꼽히고 있다. 「캉 남자수도원」의 역사는 정복왕 윌리엄1세(William the Conqueror, 1027~1087)와 마틸드 여왕(Mathilde de Flandre, 1031~1083)이 교황의 명을 어기고 사촌지간임에도 결혼한 과오를 씻기 위해 중세도시 한복판에 두 개의 수도원을 건립하기로 결심하면서 시작되었다.
여자수도원의 반대편인 캉 성 남서쪽 루이 기유아르 광장(Place Louis Guillouard)에 세워졌다. 1066년 시작된 공사는 12세기 초에야 완공된 이후에도 18세기까지 끊임없는 증축 및 보수공사를 겪었기 때문에 로마네스크, 고딕, 신고전주의 등 다양한 건축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캉의 생테티엔 대성당 내부(이 성당 안에는 영국의 왕 윌리엄과 왕비가 묻힌 곳)-
남색 지붕과 빛바랜 회색 벽돌들로 이루어져 전체적으로 간결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인상을 준다. 아치형 또는 꽃 모양의 둥근 채광창문들이 건물외벽들을 장식하고 있다. 13세기 고딕첨탑으로 꾸며진 생 테티엔 교회(Église Saint-Étienne), 18세기 수도원회랑, 14세기 성벽과 저택 등이 특히 유명하다. 수도원 남쪽 건물일부는 현재 캉 시청으로 사용되고 있다. 방문객들은 수도원 외곽 부속건물에 들어서 있는 캉 자연탐사박물관(Musée d'Initiation à la Nature)을 둘러 볼 수도 있다.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의 캉에 있는 베네딕트회의 남자수도원성당인 생테티엔성당은 여자를 위한 라트리니트(여자)수녀원 성당과 남매 관계에 있다.
-캉의 생테티엔 대성당 내부-
1066년에 정복왕 윌리엄의 명령에 따라 기공되어 1077년에 로마네스크양식의 건축으로 일단 완성되었다. 그러다가 1096년부터 13세기 초까지 개축이 진행되어 고딕건축의 양상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래서 이 성당은 전형적인 노르만 로마네스크양식과 최초의 노르만고딕을 대표하는 건축물로서 프랑스에서 가장 뛰어난 고딕양식을 보여주는 건축물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12세기 중반부터 유럽은 교회당 건축이라는 불타는 열정에 사로잡혔다. 이러한 경향은 새로이 창조된 건축양식의 힘을 받은 프랑스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더 높고 더 우아한 고딕양식은 오래된 로마네스크양식의 육중한 견고함보다 더 선호되었다.
윌리엄1세는 1087년 프랑스의 필립1세에게 에 쇼몽, 퐁투아즈 등의 성읍과 함께 망트현을 돌려달라고 했으나 거절당하자 7월 프랑스의 망트 요새를 공격하였다. 그는 싸움 도중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말에서 떨어졌다. 죽음의 자리에서 장남 로베르트에게 노르망디 공의 지위를 주고, 병상을 지키고 있던 셋째아들「붉은 얼굴 윌리엄」에게 잉글랜드 왕위를 물려주었다. 그는 결국 9월 9일에 사망하였고 후에 캉에 세운 생테티엔 대성당에 묻혔다.
-캉의 생테티엔 대성당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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