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패션의 나라, 프랑스 일주여행

28.클로드 모네

달리는 말(이재남) 2021. 11. 3. 07:46

어젯밤은 9시경에 파리의 Roissy 호텔 165호실에 체크인 하였다. 샤워를 마치고 여행기록을 하는 등 더 시간을 보냈다. 카메라 2개와 스마트폰 등 전자제품의 충전을 했더니 10시를 살짝 넘긴 시간에 잠자리에 들 수 있다. 이날 하루는 너무 길다. 우리와 시차가 7시간이니 하루가 31시간이 된 셈이다.

 

-클로드 모네의 사진-

 

너무 피곤할 뿐만 아니라 졸리는 것을 참았더니 머리가 아프다. 그래도 어젯밤은 잠을 잘 잤다. 아침 6시경 잠자리에서 일어나 여행준비를 하고 있는데, 손자 이정훈은 일어나자마자 아버지와 통화를 하고 싶단다. wifi를 정리하여 아들과 아내에게 보이스톡을 이용한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아내와 통화를 하면서 필자가 곧 찾아갈 니스에서 트럭폭탄테러가 714일 밤에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왕경석 선생님과도 통화를 할 수 있었는데, 짧은 통화를 끝내고 아침식사를 하려고 G층의 호텔의 레스토랑에 들어서니 입구에 웨이터가 서 있다가 필자의 자리를 안내해준다.

유럽에서는 반드시 웨이터가 지정해주는 자리에 앉는 것이 예의다. 안내받은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자리로 옮겨달라고 할 수도 있다. 지중해성요리에 속하는 프랑스뷔페, 아침식사는 제법 먹을 만한 음식들이 많다. 다양한 빵을 고르고 야채와 계란 등을 가져다가 충분히 먹고 나서 165호실에 머무른 다음, 가방정리를 끝내고 리셉션에 방 열쇠를 반납한다.

 

 -지베르니의 클로드 모네의 정원-기념품 판매장 한편에 있는 모네의 사진-

지베르니 모네의 집과 정원(할아버지와 손자)

 

포르투갈에서 이민 온 프랑스 운전기사가 운전하는 전용버스를 타고 830분 호텔을 출발, 클로드 모네가 살면서 많은 미술작품을 남긴지베르니를 향하여 1시간 10분쯤 달렸을까? 도착한 지베르니의 주차장에서 내린 필자일행은 모네가 살던 집과 정원을 방문한다.

184011월 왕정하의 파리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다섯 살 때, 살림이 어려워진 그의 가족은 르아브르로 이사하여 이곳의 외삼촌과 도매업을 함께했다. 화가가 되기 위해 파리로 왔던 19살 때까지 모네는 센 강이 대서양과 합쳐지는 곳에 있었던 이 바닷가 도시에서 살았다.

모네가 평생 거주하며 그림에 담았던 곳은 대부분 파리에서 르아브르 사이의 센 강가에 있다. 오늘날 모네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순례의 장소가 되고 있는 아르장퇴유, 푸아시, 베퇴유, 지베르니가 이곳이다. 그는 알제리에서 군복무를 하다 병으로 일 년 만에 제대한 1861년 전후로 샤를 자크가 운영하던 아카데미 스위스와 아카데미 회원인 화가 샤를 클레르의 화실에 다녔다.

 

-클로드 모네 작, 바지유는 모네의 작품에도 기꺼이 모델이 돼줬다. 풀밭 위의 점심(1865)에서 모자 쓰고 서 있는 남자가 바지유이고 앉은 남자는 사실주의 거장 쿠르베이며 두 여자의 모델은 모네의 첫 아내 카미유다. 이 작품은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마네의 화제작풀밭 위의 점심이 나오고 2년 뒤 모네가 같은 제목으로 그렸다-

 

여기에서 그가 얻은 것은 교육내용이 아니라 이곳에서 사귀게 된 피사로, 바지유, 르느아르, 사슬리 등과 같은 친구들이다. 이들은 그와 함께 이후인상주의라 불릴 양식을 만든 핵심인물들로, 이름 없고 곤궁했던 시절에 그의 작업과 생활을 버텨준 힘이 되었다.

 

지베르니 모네의 집의 기념품상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