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 쉴리 주교는 대성당을 건설하는 데에 자신의 삶과 재산 대부분을 바쳤다. 독특한 탑 두 개와 서쪽 정면을 건설하는 일은 약 1200년경에 시작되었는데, 일반적인 건설과정과는 달리 중랑(中廊)이 완성되기 전이었다. 건설과정에서 많은 건축가들이 참여하였음을 설명 해주듯 서쪽정면과 두 탑의 각각 다른 높이와 다른 양식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1210년에서 1220년 사이, 4등 건축가는 장미창이 있는 층과 탑 뒤의 거대한 현관의 건설과정을 감독하였다. 두 탑은 1245년경에 완성되었으며, 대성당은 1345년경에 완성되었다. 1548년 위그노들이 그러니까 개신교신자들이 폭동을 일으키면서 대성당의 성상들을 우상숭배라고 여겨 외관을 파괴했다.
루이14세 때와 루이15세 때에 전 유럽에 걸쳐 대성당들을 현대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노트르담대성당을 개축하였다. 무덤과 스테인드글라스는 제거되었지만, 다행히도 북쪽과 남쪽의 장미창은 파괴되지 않았다. 1793년 프랑스혁명 때에 노트르담은 이성숭배에 봉헌된 뒤, 최고 존재숭배에 봉헌되었다.
센강의 유람선에서 바라본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이 시기동안 대성당의 많은 보물들은 파괴되거나 강탈당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유다 왕들의 조각상들은 봉건질서를 상징하는 프랑스의 왕들로 오인되어 머리가 잘려나갔다. 잘려나간 많은 머리들이 1977년에 성당주변을 발굴하면서 발견되었고, 지금은 클뤼니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 시대의 제대에 위치해 있던 성모마리아상은 자유의 여신상으로 교체되었다. 중요한 종들은 간신히 용해되는 것에서 피할 수 있었다. 성당의 내부는 말 먹이나 음식을 보관하기 위한 창고로 사용되었다. 복원계획은 건축가인 장바티스트앙투안 라쉬와 외젠 비올레르뒤크의 감독으로 1845년에 시작되었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파리의 노트르담대성당
파리의 노트르담대성당의 야경
첨탑의 일종인 플레슈(flèche)를 건립하고 시메르 갤러리(alerie des Chimères)의 키메라들을 추가하는 것을 포함하여 25년간 계속되었다. 비올레르뒤크는 자신의 작품에 언제나 서명을 했는데, 고딕 볼트(궁륭)를 닮은 날개 구조를 가진 박쥐를 같이 그려 넣었다.
1871년 파리 코뮌시기에 노트르담대성당은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파리 코뮌이 민중들에 의해 자치가 실시된 사회주의 자치정부였기 때문이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때에 독일이 창문을 폭격할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1939년 9월 11일에 창문을 분리시켰다.
전쟁이 끝나자 이 창문들은 다시 복원되었으며, 1991년 유지 및 복원계획이 시작되었는데, 애초에는 10년간 지속될 예정이었으나 2016년 현재에도 여전히 진행 중이며, 낡은 조각상들을 청소하고 복원하는 것이 대단히 섬세한 작업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준다.
파리의 노트르담대성당 정면부 성모 마리아의 문, 마지막 심판의 문, 성녀 안나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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