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의 휴가

55. 울릉도 인구

달리는 말(이재남) 2021. 1. 23. 09:56

                            울릉도 인구  

      -울릉도 북면의 렌드마크인 바닷가에 우뚝 솟은 송곳봉-

-울릉도 북면의 현포항-               

울릉도 인구는 육지 인구의 변화과정을 따르는 점이 있는가 하면 섬 자체의 특징적인 점이 있다. 조선왕조 말기에는 인구의 자연증가율과 사망률을 비교할 수 있는 자료가 없어 잘 알 수 없지만 정부의 수토정책으로 인해 섬 자체의 정상적인 인구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이규원 검찰사가 섬에 들렀을 18824월 당시의 인구를 보면 결막한 주민수가 한국인 141, 일본인 78명으로 합계 219명이었다. 이들은 채약, 예죽, 벌목저선, 채곽, 채어 하는 이들이었다. 개척 령이 선포되고 난 이듬해인 18834월에 약 30명이 내륙에서 들어왔고, 뒤를 이어 20명이 더 들어왔다. 두 차례에 걸쳐 울릉도에 들어온 사람의 숫자는 1654명이었다이들은 대황토포, 곡포, 추봉, 현포동 등에 흩어져 터전을 잡고 개간과 영농에 종사하였다. 이러한 사료들은 19세기 말엽 울릉도의 인구가 어떠하였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그런데 언급한 자료가 정확하게 울릉도 인구수를 나타내준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수토관이 2년에 한 번씩 울릉도에 오던 때를 피해 이곳에서 살았던 이들은 이 자료에서 나타나지 않고 있다. 자료제보자들은 개척 령이 시행되기 전부터 살았던 이들의 후손들이 울릉도에 있었다고 한다. 태하리의 경우만 하더라도 구한말 이전에 16호가 살고 있었다.

-울릉도 북쪽 해안가를 바라 본 바깥 풍경으로 노인봉과 송곳산-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공식적인 국가자료에서 제시한 인구기록과 실제 거주한 이들의 수는 어느 정도 차이가 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인 1922년에는 총 호수가 2,051, 인구수 8,101명이었다. 1940년대 중반 이후 점차 어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인구 증가도 이루어지게 되었다1945년도의 거주 호수와 총인구를 보면 2,276호에 13,944명이던 것이 1949년에 2,514, 14,715명이 되었다. 1956년에는 총 호수 3,582, 21,696명이었다가 1960년에 이르면서 섬 호수와 인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3,021, 인구수 27,932명으로 점차 증가하였다.1970년에는 4,243호의 23,248, 1979년에 4,426, 19,386명으로 호수와 인구수가 약간 감소한다.이것은 어업 등으로 인해 계절별 단독세대의 이주노동자들은 증가하였으나 주민들 중에는 가족전체가 이촌향도 하는 이들이 증가하면서 야기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감소추세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은 1975년까지 완만한 인구증가를 보이다가 이 시기 이후부터 점차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에서 시행한 가족계획의 영향으로 자연증가율이 감소되었을 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척박한 경제생활이 도시로 이주를 부추기는데 한 몫을 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이 당시의 주민들은 주로 해안가인 도동과 저동, 그리고 남양, 천부 1리 등을 중심으로 거주하였다. 이는 그나마 울릉도에서 편리한 생활과 경제적수준이 비교적 높은 읍과 면 소재지에 대한 주민들의 선호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울릉도 동백꽃길과 동백꽃-

-울릉도 동백꽃길과 동백꽃-  

1985년에 이르면 총 4,716호에 인구 수 8,924명으로 점차 감소추세를 보이다가 1990년 초부터 말기에 이르기까지 다른 한국의 촌락사회와 마찬가지로 울릉도 농촌사회에도 주민들이 도시로 이주함에 따라 인구가 감소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1990년에 4,418세대 총인구 16,172명이던 것이 1998년에는 3,948세대, 10,730명으로 감소한다. 다음은 울릉도주민의 경제구조를 파악하기 위한 한 사례이다. 1998년 서면의 농어업가구별 속성을 보면 서면 전체 170가구 중 27가구는 경작지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143가구는 농지를 전혀 소유하지 않았다. 이들 가구 중 가구소득의 전부나 일부를 농어업부문에서 획득하는 농어가는 82호이고 그 나머지는 모두 비농어가였다농어가 82호 가운데 가구소득의 전부를 자신의 농업 소득이나 수산업과 관련된 오징어건조작업을 통한 수입에 의존하는 전업농가가 25호이고, 가구소득의 일부나 또는 대부분을 농어업소득에 의존하는 겸업농어가는 57호이다. 이들 겸업농어가의 겸업내용을 보면 대부분 가구주나 또는 가구주의 부인이 오징어성수기에 오징어의 가공, 건조와 관련된 단순노동에 종사하고 있었다이러한 사실은 울릉도주민들의 취약한 경제적 기반을 나타내준 것이다. 이와 더불어서 낙후된 의료시설과 기술, 자녀교육문제, 태풍 등의 심각한 자연재해 등은 육지로 이주하는 이들을 더욱 증가하게 하였다. 2005년도의 총 세대 수와 인구수를 보면 4,078세대, 9,588명이다. 

-울릉도 석포전망대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석양- 

-울릉도 석포전망대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석양- 

-울릉도 석포전망대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석양- 

-울릉도 석포전망대-

1998년에 비해 세대 수는 증가하나 인구수는 감소하였다. 이것은 태풍피해로 인해 파괴된 도로복구와 항만공사 등으로 인해 이주한 노동자들 때문에 통계상 그 세대 수가 증가됨에 따라 나타난 양상이다. 현재에도 주민들이 포항, 대구, 서울 등의 대도시로 이주하는 추세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