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일주 여행

(19)-알렉산드리아 고대 그리스도교도의 지하묘소, 카타콤

달리는 말(이재남) 2016. 1. 11. 06:18

알렉산드리아 고대 그리스도교도의 지하묘소, 카타콤

 

카이로를 떠나 알렉산드리아로

 

호텔로 돌아오는 길은 주말이라서 그런지 차량들이 엄청나게 붐비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오늘 일정도 많은 볼거리를 봐서 그런지 피곤하다. 특히 피라미드의 내부를 구경하기 위해 좁은 통로를 따라 허리를 굽힌 채 기어들어갔다가 기어 나오는 과정은 더운 날씨가 아닌 데에도 불구하고 땀이 나고 힘들었다.

몸집이 워낙 큰 서양인들은 그 좁은 통로를 따라 이동하는 모습이 너무나 벅차보였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있는 곳에는 관광업에 종사하는 이집트사람들,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인들, 낙타를 타면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사람들까지 온통 뒤범벅이 되어 이 넓은 장소도 몸살을 앓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피곤하고 힘들게 보낸 하루다.

              

알렉산드리아로 향하는 고속도로의 휴계소 

알렉산드리아로 향하는 고속도로의 휴계소(가이드와 아내)

 

 

2006년 11월 19일, 여행 7일째 되는 날 아침이다. 5시에는 모닝콜이 있으며 6시에는 아침식사가 시작되고 7시에는 전용버스를 타고 카이로를 떠나야 한다. 5시도 안돼 일어나준비를 하니 더욱 여유 있게 느끼어진다. 6시에 호텔 레스토랑으로 내려가 아침식사를 하면서 도하공항에 내려 기다리는 동안 먹을 수 있도록 삶은 계란 2개를 준비했다.

 예정대로 출발한 전용버스를 타고 알렉산드리아를 향해 달리는 동안 휴게소에서 20분 정도의 휴식시간을 가졌다. 거의 3시간 반을 달려 찾아간 곳은 고대 기독교인들의 은둔지이기도 했던 지하 공동묘지인 카타콤이다. 그리스어로 「움푹 팬 땅의 옆」이라는 의미의 카타콤은 고대 그리스도교도의 지하묘소다.

 

             

고속도로 휴계소 

             

  고대 그리스도교도의 지하묘소, 카타콤                                                                                                                                                      로마에 있는 움푹 팬 땅위에 세웠던 「성세바스찬 교회의 지하묘소」 이름으로 쓰이다가 이와 함께 고대 그리스도교도의 지하묘소로 말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가족묘소뿐이었으나, 3세기 이전에는 신자들의 공동묘소로도 마련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지하에 묘소를 만드는 관습은 유대교 이외의 종교에서도 있어, 카타콤은 나폴리·시칠리아·북아프리카·소아시아 등 고대 로마세계의 여러 곳에 퍼져 있었다. 특히 로마에 서는 가장 대규모적인 카타콤이 발견되었다. 시내에서의 매장은 법률로 금지되어 있었으므로 카타콤은 대부분 교외의 넓은 도로를 따라 만들어졌다. 로마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카타콤은 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 조성하기 쉽고 내구성이 강한 화산회지질이 알맞기 때문인 듯하다. 너비 약 1m, 높이 2∼3m인 지하도 벽에 직사각형 또는 상부가 반원형인 벽감(壁龕)을 만들고 거기에다 유체를 안치한 뒤 벽돌이나 대리석판으로 막고 석회로 밀폐하였다. 거기에는 죽은 사람의 이름, 나이, 사망날짜 이외에 때로는 상징적인 그림이나 축복의 말이 새겨져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카타콤(Kom El-Shuqafa)입구

  알렉산드리아의 지하무덤인 카타콤에서 발굴된 석관

 

지하도의 여기저기에는 벽감이 붙은 네모진 묘실을 설치하여 의식(儀式)이나 회식 때에 사용하였다. 벽을 따라 석조의 의자가 놓이고, 묘실방이나 지하도에는 채광과 통풍을 위한 세로로 구멍이 뚫려 있다. 커다란 카타콤은 지하도가 가로세로로 그물코처럼 만들어지고, 5겹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도 있다. 박해받던 그리스도교도가 카타콤을 예배장소로 삼아 사용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 듯하나 카타콤에서는 사망자, 특히 순교자를 기념하는 미사가 집행되었다. 4세기에는 순교자에 대한 숭배와 존경심이 높아짐에 따라 그 묘에다 기념비적 묘지명을 붙이거나 지하도를 넓히는 등 카타콤 개수작업이 이루어졌다. 5세기 중엽부터는 카타콤에 매장하지 않게 되었으며, 8세기에는 순교자의 유해를 도시에 있는 교회로 옮겼다. 그 뒤 카타콤은 거의 잊혀졌다가 16세기에 와서 발굴과 연구가 시작되었다. 카타콤의 벽화는 초기에는 고대 신화의 모습이나 전원풍경 등을 제재로 그렸는데 거기에는 양이나 물고기로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등 그리스도교적 상징을 보여주고 있다. 4세기가 되면서 성서의 장면을 많이 그려 넣었다. 이는 초기그리스도교 미술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지하무덤이었던 곳이라 오르내리는 통로가 협소하고 어두웠을 뿐만이 아니라 너무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아왔으므로 한참 동안 기다렸다가 내려가 설명을 듣기도 하고 또 옮겨가기도 하면서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카타콤에서 나온 일행은 전설의 파로스 등대가 있던 자리위에 들어선 거대한 요새 카이트 베이 앞까지 전용버스로 달려갔다.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 북부의 지중해에 접해있는 해양 도시로 기후가 온화하다.      

알렉산드리아의 세계 7대 불가사의인 팔로스 등대의 흔적위에 세워진 카이트베이 요새       

알렉산드리아 해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