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일주 여행

(18)-인류 최초의 종이인 파피루스

달리는 말(이재남) 2016. 1. 8. 06:41

인류 최초의 종이인 파피루스

 

 우리나라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카이로회담』이 열렸던 장소

 

그 향료 판매점에서 나와 시내로 향했다. 비록 너무 오래된 건물이기 때문에 낡아 보이기는 했으나 우리나라에게는 너무나 중요한『카이로회담』이 열렸던 장소를 전용버스 안에서 보여주면서 설명을 했다. 제2차세계대전중의 연합국 수뇌회담으로 대일항전과 전후 처리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검토한 최초의 회담으로 1943년 11월 22∼26일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루즈벨트 미국대통령, 처칠 영국총리, 장개석(蔣介石) 중국총통이 참석하여 대(對)일본전쟁 수행 협력과 전후의 영토에 대하여 의논하여 27일 『카이로선언』을 발표하였다.

1943년 11월 23일카이로회담이 열린 장소

1943년 카이로 회담에 참석한 장제스 국방최고위원장,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 대통령,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장제스의 부인 쑹메이링(왼쪽부터)

선언은 태평양의 일본령 제도의 박탈, 일본이 중국에서 빼앗은 전 영토 반환, 한국의 독립과 연합국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까지 협력하여 싸울 것 등을 표명하였다. 카이로선언은 1945년 7월 포츠담선언에서도 확인, 일본의 항복에 관한 기본방침이 되었다. 이 제1차 카이로회담은 미·영·소 3국의 수뇌회담인 테헤란회담에 앞서 열린 것이며, 테헤란에서 돌아오는 길에 다시 카이로에서 12월 3∼6일 미·영 수뇌와 이뇌뉘 터키대통령과 의 제2차 카이로회담이 열렸다.이 회담에서 미·영은 연합군 측에 가담, 참전할 것을 터키에 권유하였으나 터키는 중립을 지켰다. 『카이로(Cairo)선언』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3년 11월 27일 미국, 영국, 중국의 3개 연합국이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 모여 회담한 끝에 발표한 공동 선언이다.이 선언에는 일본이 제1차 세계 대전 후 약탈한 영토를 반환할 것을 요구하였고, 특히 「한국 사람들의 노예 상태에 있음에 유의하여 적당한 시기에 자유, 독립하게 할 것을 결정한다.」고 하여 한국의 독립이 최초로 국제적으로 보장을 받게 된 중요한 선언이다.
인류 최초의 종이인 파피루스
그 건물을 지나서 인류 최초의 종이, 파피루스를 이용하여 그린 수많은 그림을 걸어놓고 판매하는 「파피루스 연구소 겸 전시장」을 구경하려고 버스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갔다. 파피루스를 최초로 만든 곳은 바로 이집트이다. 나일강의 습지대에 많이 분포하고 있는 파피루스 풀은 높이가 4∼5m나 되는 것도 있다. 이 파피루스의 껍질은 배의 돛으로 이용하였고 줄기는 배를 만들거나 땔감으로 사용하였으며, 고갱이는 샌들이나 바구니 등을 만들었다. 바로 이 파피루스 풀로 종이를 만들었는데, 최상품은 고갱이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제조방법을 간략히 소개하면, 파피루스의 줄기 밑을 60cm정도 길이로 잘라 껍질을 벗긴다. 파피루스 식물을 넓고 기다란 조각으로 갈라 만든 후 물에 담근다. 나일강의 물은 흙탕물이라 이것이 마르면서 끈끈한 접착제 역할을 한다. 파피루스 조각이 서로 겹쳐지도록 나란히 판자위에 놓은 다음 끝을 잘라 끝부분에 직각이 되도록 겹친다. 이것을 압착하여 말리는 것이다. 나무망치를 이용하여 두르려 말린 것을 수액을 내어 다시 말리고 줄기들이 서로 접착되도록 하여 파피루스를 만든다. 고갱이로 만든 것은 종교관련 서적에 이용되었으며, 껍질로 만든 것은 표지나 포장지로 이용되었다. 이 파피루스 종이는 여러 장이어서 두루마리로 만들어서 필기도구와 함께 널리 이용되었다고 한다. 파피루스는 현대의 종이와 유사한 형태로 가볍고 동그랗게 말려 지므로 가지고 다니기에 편리하다. 이 파피루스가 바로 종이 즉 페이퍼의 어원이 되었다. 이 파피루스는 이집트 국가에서 독점하여 만들었으며, 개인이 허락 없이 만들 수 없었다. 페니키아와 지중해안을 따라 유럽으로 전해졌으며, 이집트의 중요한 수출품 이었다. 파피루스가 그리스에 수출될 때 페니키아의 비브로스 항을 거쳤는데, 이 때문에 그리스에서는 파피루스를 비브로스라고 불렀으며, 비브로스는 바로 그리스어로 책이라는 뜻이었다. 이 비브로스가 비블리오그라피 즉 서지학의 어원이 되었으며, 바이블 즉 성경의 어원이 되었다. 하지만 파피루스는 값이 비싸고 찢어지기가 쉬워서, 중국에서 종이가 전해지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급히 사려져 갔다. 파피루스는 벼목 사초과 여러해살이풀. 온실에서 재배되는 큰 수초(水草)로 큰 뿌리줄기를 따라 높이 2m에 달하는 줄기가 줄지어 난다. 잎은 모두 칼집모양으로 퇴화하여 줄기의 근원이 된다. 꽃차례는 지름 40㎝로 크고 가늘며 긴 가지가 많이 모여 달린다. 작은 이삭은 꽃차례 끝에 몇 개 달린다. 북아프리카·중부아프리카의 호소 등에 큰 무리를 이루어 난다.고대 이집트에서는 나일강 유역의 파피루스 줄기를 채취하여 껍질을 벗기고 흰 속을 가늘게 찢어, 그 관다발을 엮어 건조시키고 다시 문질러 매끄럽게 한 파피루스종이를 만들었다. 당시 지중해 지방에서는 유일한 종이였다. 파피루스의 섬유로 천을 만들기도 하고, 줄기를 많이 모아 배를 만들기도 하였다. 또한 파피루스는 모양이 아름다워 관상식물로 도 재배되고 있다. 전시장에 마련된 장소에서 모종숙 여사는 파피루스종이 제작과정을 보여주면서 설명을 했는데, 설명이 끝나자 벽에 걸려있는 그림들을 구경했다. 전시장 벽에 많이 걸려있는 아름다운 그림들 가운데 골라서 일행 몇 사람이 사는 모습이 보인다. 파피루스 전시장을 나온 일행은 저녁식사를 하려고 전시장으로부터 멀지 않은 장소에 위치한 사하라(Sahara) 레스토랑으로 갔다. 현지식 식사를 마치고 레스토랑의 4층에 올라가 피라미드의 야경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다. 

 이집트 고대인들의 미완성 오벨리스크                                                                                                                   

카이로의 지도                                                                                                                                                                                

                                                                                         

이집트의 람세스3세의 기념관                                                                         

인류 최초의 종이인 파피루스 전시장입구                                                                                                                            

카이로 조제르호텔 내의 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