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일주 여행

(15)-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인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달리는 말(이재남) 2016. 1. 5. 04:46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인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2006년 11월 18일, 여행을 시작한지 6일째 되는 날 아침이다. 이날은 늦잠을 잤다. 7시까지 잠을 잤으니 늦잠을 잔 것이 아닌가? 지난밤에는 춥지도 덥지도 않아서 더 잘 잤는가보다. 9시에 출발이니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느긋하게 준비를 했다. 7시 50분경 호텔레스토랑으로 내려갔다. 그라운드 층의 수영장을 지나 레스토랑으로 들어서니 수많은 관광객들이 그 넓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조제르 호텔은 워낙 커서 투숙객이 많은 탓으로 레스토랑은 붐비고 있다. 식사를 마치고  전용버스를 탔는데 늦게 나오는 일행이 있어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출발할 수 있었다. 고대이집트 최초의 수도인 멤피스, 이집트 최초의 피라미드가 있는 사카라지구로 이동하여 계단식 피라미드와 최초의 피라미드를 보았다.

사카라지구의 피라미드를 관광하기 위하여 모여들은 관광객의 수는 셀 수조차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인파로 인하여 붐비고 있고, 좁은 통로에서 만나는 또 다른 관광객들과의 자리다툼이 심할 정도다. 수많은 나라로부터 여행 온 사람들이 너무 많은 틈바구니에서 설명을 들으면서 구경하는 일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멤피스로부터 카이로 시내로 들어와 현지식 뷔페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서, 잠시 숨을 고른 다음 기자지역으로 옮겨갔다.

피라미드란 말은 「중심에서 타는 불」또는「타오르는 불의 중심」이라는 뜻이 된다. 피라미드는 4각형 토대에 측면은 3각형을 이루도록 돌이나 벽돌을 쌓아 올려 한 정점에서 만나도록 축조한 기념비적 구조물이다. 때로는 측면이 사다리꼴을 이루어 꼭대기가 평평한 것도 있다.

일반적으로 피라미드는 이집트의 것이 유명하지만 이집트에만 있는 것은 아니며, 이집트 외에도 멕시코 중남미에 있는 마야, 잉카문명 유적과 에티오피아, 그리스, 인도 그리고 아시아의 중국에도 몇 개가 실재하고 있다. 왕위에 오르자마자, 자신의 무덤부터 건축하기 시작했다는 파라오들, 그만큼 사후세계까지도 살아있을 때의 권력과 재물을 이어가고 싶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증명이라도 하듯 화려한 무덤을 만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원되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했다는 피라미드, 더군다나 이 물 한 방울 없을 것 같은 모래사막 한가운데 지어진 피라미드 근처까지 나일강이 범람했었다니 더더욱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많은 관광객들과 낙타몰이꾼들로 사막은 북적거리지만, 그 모래사막에 조용히 눈을 감고 앉아있노라면, 마치 300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든다.

 

피라미드들은 왜 만든 것일까?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서쪽으로 약 13㎞ 떨어진 기자(Giza) 지역 사막에는 거대한 피라미드들이 있다. 이것들은 왜 만든 것일까? 우선 왕들의 무덤이란 설이 있다. 이집트의 초기 무덤은 마스타바(mastaba) 양식이었다. 마스타바는 그 당시에 이집트인들이 쓰던 직사각형의 진흙 의자였다. 이 같은 형태의 마스타바 양식이 발전하면서 계단식 피라미드로 변했고, 이것이 더 발전해서 기자에 있는 사각뿔형의 거대한 피라미드가 나타났다고 한다.

카이로 인근 기자지역에 위치한 3개의 피라미드는 제 4왕조(BC 2613- 2494)의 Khufu왕, Khafre왕, Memdaure왕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존하는 70여개 피라미드 가운데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단순한 왕의 무덤이 아니라 사후 세계의 신앙과 관련된 신성한 건축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이중 Khufu왕의 피라미드는 일명 대 피라미드(Great Pyramid)라고도 하며 고대
이래로 불가사의한 건축물의 하나로 받아들여져 세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피라미드 내부 및 외부에 피라미드에 관련된 문자나 그림 등의 기록이 남아있지않다.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원래 높이는 약 146.73m이지만 벼락 혹은 지진으로 파손되어서 약 9m 정도가 떨어져 나가 현재는 약 137m로 알려져 있다. 제2의 피라미드가 있는 그 내부를 보기 위하여 허리를 직각으로 구부리고 머리를 낮춘다음, 피라미드의 -안으로 들어가 그 옛날에 있었던 무덤의 장소를 확인하고 나오는 데는 엄청나게 힘이 들었다.

기원전 3000년경 제 1왕조, 제 2왕조가 나일강의 상류와 하류 지역을 통합하여 이집트문명의 기틀을 잡은 후, 고왕국 시대(기원전 2650∼2180년, 제3∼6왕조)가 열린다. 피라미드가 출현한 시기는 고왕국 시대의 제4왕조 때로, 기자 지역에 피라미드를 가장 먼저 만든 왕은 쿠푸왕이었다.

그로부터 약 3300년이 지난 서기 818년, 아랍 세계의 지배자 칼리프 알마문은 궁핍한 재정을 메우기 위해 쿠푸왕의 피라미드를 도굴한다. 도굴꾼들은 무작정 입구를 부수다가 정식 통로를 만났고, 그 길을 따라 중심부에 가니 길이 10.5m, 폭 5.2m, 높이 5.8m의 현실이 나왔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도굴된 흔적이 전혀 없는데도 뚜껑 없는 석관만 있을 뿐 미라와 부장품은 물론 그 흔한 벽화도 없었다. 그래서 기자의 피라미드는 무덤이 아니라는 설도 많다. 특히 요시무라 사쿠지 같은 일본 학자는 피라미드의 배치에 공간적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기자의 피라미드들은 원래 비슷한 크기로 기획되었지만 작은 제3 피라미드는 재정난으로 축소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 후 지도상에서 제3 피라미드를 두 배로 확대시켜 보니 제1, 2, 3 피라미드의 대각선이 일직선으로 연결되었고, 그 선을 스핑크스 앞에 있는 신전과 잇자 직삼각형이 나왔다고 한다.

요시무라 사쿠지는 쿠푸왕이 이 직삼각형 안의 공간에 내세의 생활을 체험하는 가상 천국을 만들고, 왕위 즉위식이나 축제 등의 의식을 거행하려 했으며, 진짜 쿠푸왕의 미라는 도굴을 피하기 위해 대 피라미드 근처에 파묻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또 그레이엄 핸콕 같은 이는 이렇게 주장한다. 지구 적도의 둘레는 약 4만68㎞이고 북극에서부터 지구의 중심부까지 잰 지구의 반지름은 약 6355㎞인데, 이것을 각각 4만3200으로 나누면 927.5m와 147.11m가 나온다.

그런데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약간의 오차는 있지만 밑면의 둘레는 921.46m로 축소된 지구 적도의 둘레 927.5m와 비슷하고, 높이는 146.73m로 축소된 지구 반지름 147.11m와 비슷하다. 즉,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지구 북반구를 축소해 형상화한 것이고, 그 비율 축소에 사용된 숫자가 4만3200이다. 432란 숫자는 메소포타미아 문명 등 고대 문명에서 나오는 신비의 숫자다.


이집트 피라미드

이집트 파라오들의 피라미드

이집트 파라오들의 피라미드

이집트 피라미드

 이집트 스핑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