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여행

생명력이 넘치는 아프리카(34)-「Cape of Good Hope」, 곧 「희망봉(곶)」에 우뚝 서다.

달리는 말(이재남) 2014. 11. 25. 05:43

                                                                          

포르투갈의 항해자,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

 

포르투갈의 항해자,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 1469~1524)는. 마누엘 1세의 인정을 받아, 70년에 걸친 인도항로발견 대사업을 성취했다. 이슬람과 힌두연합함대의 반격을 격파, 코친·카나놀 등에 상관을 설치하여 인도무역독점의 기초를 다졌다. 그는 또한 국왕의 인도정책고문이기도 했었다.  어린시절에 대하여서는 에보라에서 수학과 항해술을 배웠다는 것 외에는 분명하게 밝혀진 내용이 없다. 마누엘 1세의 인정을 받아, 디아스가 희망곶을 발견한 후로 숙원이던 인도항로 개척의 원정대장이 되었다. 1497년 7월 4척의 선대(船隊)를 인솔하고 리스본을 출범하였다. 도중까지 동행한 디아스의 조언대로, 시에라레온 앞바다에서 대서양을 서쪽으로 크게 우회하는 혁명적 항법을 써서, 11월 희망곶을 돌아 대륙 동해안을 북상하여 모잠비크 몸바사를 통과, 1498년 4월 마린디에 도착하였다.

도중에 이슬람교도들의 적대적방해로 시달림을 받았으나, 우호적인 마린디에서는 이슬람의 수로(水路) 안내인 이븐 마지드의 도움으로 인도양을 횡단하였다. 5월 22일 캘리컷에 도착, 70년에 걸친 인도항로 발견의 대사업을 성취하였다.

그러나 독점무역에 위협을 느낀 이슬람상인들의 방해와, 무력에 대한 지방영주들의 경계심 때문에 정식통상교섭은 난항을 거듭, 3개월 만에 겨우 약간의 향료를 입수하였다. 10월 다시 인도양을 횡단하여 올 때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항해하나, 괴혈병, 열병 등으로 선원의 반 이상을 잃었다. 1499년 9월 가까스로 리스본에 귀환하여 대대적인 환영을 받고, 귀족이 되어 연금을 받았다.

그 뒤로 인도무역은 해마다 확대되었으나 현지인과의 마찰이 점차 격화되어, 1502년 다시 15척의 대 함대를 인솔하고 인도에 건너갔을 때에는 이슬람과 힌두연합함대의 반격을 받았다. 이를 격파하고 코친 ·카나놀 등 각지에 상관(商館)을 설치, 인도무역 독점의 기초를 다졌다. 그 뒤 백작에 봉해지고, 국왕의 인도정책고문이 되었다. 1524년 국왕을 대신하여 현지공관의 부패숙정을 위해 인도에 갔으나, 과로가 겹쳐 병을 얻고 코친에서 사망하였다.
희망곶이 아프리카 최남단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바스코 다 가마는「Cape of Good Hope」 즉 「희망곶」이라고 개칭한 것이었다. 하지만 최남단은 이 곳에서 200㎞ 동남쪽에 있는 아굴라스 곶이다. 케이프 포인트의 등대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용의 꼬리를 닮은 긴 바위절벽이 절경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케이프 포인트를 방문하니까 뭔가 희망이 샘솟고 창창한 앞날이 펼쳐지는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이름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희망의 기운이 도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런데 희귀자연생물의 서식지여서 자연보호지구로 지정되어있으니 관광할 때 주의하도록 해야 한단다.

우리부부는 케이프 포인트에서 완만하게 경사를 이룬 산기슭의 산책로를 따라 희망곶을 향하여 내려오면서 프로테와, 에리카 등의 희귀식물들과 원숭이, 타조 등의 야생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내려가는 길은 세찬 해풍 때문에 몸을 가누기가 무척 어렵고 때로는 그 바람 때문에 몸이 휘청거려 넘어질 정도였다. 워낙 바람이 거세게 불고 폭풍이일기도 하니까 이 바람들을 이겨내려고  1300여 종류의 희귀식물들이 낮은 자세로 자생하고 있다.

걸어 내려오는 길은 나무로 만들어 놓은 계단도 있었지만 땅 끝 마을 희망곶에서 나의 넋을 잃게 만든 감미로우면서도 거세게 불어제치던 바람이 앞을 가로막아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 없을 때도 있었다. 이곳은 케이프타운에서 파도가 가장 센 곳으로 유명하다. 서퍼들은 자신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파도 위에서 윈드서핑을 즐긴다. 늘 바람도 거세다. 시속 90㎞의 바람이 수시로 몸을 때린다. 바람이 불면 몸이 활처럼 휘어진다. 세찬 해풍을 헤치고 「폭풍의 곶」 해안절벽으로 내려오자 확 트인 전망에 온몸에 전율이 느껴진다. 깎아지른 절벽아래에는 대서양과 인도양의 검푸른 물결이 부딪쳐 천둥소리를 내며 하얀 포말로 부서져 내리고 있다. 
                        

희망봉의 케이프포인트를 향한 궤도열차선로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곶의 입구

아프리카의 최남단 희망곶(희망봉)

아프리카의 최남단 희망곶(희망봉)

아프리카의 최남단 희망곶(희망봉)

아프리카의 최남단 희망곶(희망봉)

아프리카 최남단 케이프포인드의 등대
                                                                                          


Cape of Good Hope」, 곧「희망봉(곶)」에 우뚝 서다.

 

남위 34도21분25초. 해안에는 북위와 남위, 그리고 영어와 토속어인 아프리칸스로 희망곶의 위치를 표시한 이정표가 서 있다. 우리에게 희망봉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Cape of Good Hope」, 곧 「희망곶」에 우뚝 섰다. 바위봉우리에 올라서니 케이프 포인트가 한눈에 들어오고 대륙이 끝나는 절벽부터는 끝없는 바다다. 참으로 감회가 깊다. 그래서 환호의 괴성을 질러댔다. 그러면서 기념할 만한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일념으로 기념사진촬영을 하는데 게을리 할 수가 없었다. 계속 세찬 해풍과 싸우면서 상당히 먼 거리를 걸어 내려와 우리일행을 기다리며 바닷가에 대기하고 있던 전용버스에 지친 몸을 싣고 그곳을 출발하였다.
케이프타운을 향하여 버스는 달리고, 달리는 차창 밖으로 수풀과 꽃들, 그리고 그 사이를 뛰어다니는 bamboo라 불리는 원숭이, 아프리카토끼, 타조 등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에는 비비 워터북이 보이더니 한참을 더 달리다보니 야생 타조들이 또 보였다.  중간에 잠깐 휴식을 취하려고 조각공원에 내려 쉬기는 하였으나 40분을 달려 케이프타운에 도착하여 「고려정(Sushi zone Restaurant)」으로 들어갔다. 케이프타운 안의 한국음식점은 두개가 있다.

Sea Point의 「soju(소주)」 라는 음식점하고 「고려정」 이라는 음식점 두개가 있다. 고려정은 아시아 사람들보다 현지인들이 더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그 이유는 초밥(니기리)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인기가 많은 초밥을 만드는 사람이 중국 사람이라고 하니 조금 이상하다. 하여튼 그이가 만든 초밥이 인기를 끌어 고려정 사장님이 스카우트 했단다. 한식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이었으므로 한식으로 맛있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피곤한 몸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짐정리를 했다. 어느덧 내일부터는 이곳을 출발하여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여행기록을 쓰고 나서  시간을 보니 거의 10시다. 내일의 일정을 위하여 꿈나라로 가야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