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일주여행

이탈리아 일주여행(25)- 한층 더 박차가 가해진 폼페이의 발굴 작업

달리는 말(이재남) 2014. 8. 12. 06:13

 

 이탈리아 폼페이의 유적들

 이탈리아 폼페이의 유적들

 이탈리아 폼페이의 유적들

 이탈리아 폼페이의 유적들

 이탈리아 폼페이의 유적들

  이탈리아 폼페이의 유적들-로마제국의 신전

  한층 더 박차가 가해진 폼페이의 발굴 작업

 

 

이런 지옥은 3일간 계속되고 그 후에는 모든 것이 잠잠했다. 두께 5~6m되는 죽음의 층이 에르콜라노에서 스타비아까지 깔려져 있었다. 베수비오 화산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폼페이는 거의 2000년 동안 다시 일어서지 못하게 했다. 사람들은 그 자리에 내려진 무서운 저주를 두려워했기에 폐허가 표면에 솟아나 있는 한 약탈자나 보물 찾는 이들이 훔치러 오고는 그 이후, 폼페이는 잊혀지고 모든 자취가 사라졌다.

부르봉왕조 아래에서 발굴 작업이 시작되기는 하였으나 나폴리의 대 국립박물관을 형성하게 될 작품들로써 가장 가치 있는 것들을 발굴지에서 빼내가기 위한 데 불과했다. 19세기 초엽에 한층 더 박차가 가해진 발굴 작업이 폐허더미에 지나지 않는 공회의장을 빛 보이게 했다.

1860년 쥬세페 피오렐리는 체계적인 발굴 작업을 시작하였는데 그는 굳어진 화산재 속에 녹은 유기물에 의해 생긴 자국에 횟가루를 떨어뜨려 지문을 떠내는 일에 일인자였다. 이런 방법으로 1900년 전에 재가 돼버린 사람, 동물, 식물과 물건들의 형체가 그 모습을 띠게 되었다. 그 이후 수십 년간의 복구 작업은 놀라운 수준에 달하게 되었고 1909년부터 비또리오 스피나쫄라에 의해 건물들이 기초에서 지붕까지 복구되고 수세기동안 화산재 밑에서 보존된 갖가지 물건들은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점점 더 완전해 가는 이런 발굴기술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도시의 부분에서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폼페이는 근래에 와서 마치 19세기의 긴 잠에서 깨어나 기적적으로 되살아 난 것처럼 보이고 정열적이고 부지런한 옛 주민들 대신에 바쁜 방문객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폼페이는 아직도 인류사회의 역사에 대한 놀라운 보물을 제공하고 있다. 실제로 기원전 4세기에서 서기 1세기에 걸쳐, 단독주택이었던 도무스의 풍부하고도 값진 주택모음선집을 볼 수 있다. 집의 기본구조는 산니타족에 의해 오랜 예전의 경험의 소산으로 고정되어져 있다.

고대 이탈리아의 집은 크기가 확고하게 지어져있고 서로 연결된 공간이 낳은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각 방의 시설이 왕관처럼 둘러져 있게 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침실, 위생시설, 조리장, 식당 등의 육체적 생활권은 가족의 사회문화생활 권에서 분리되어져 있다. 로마인은 이 구조를 수백 년간 변형하지 않고 유지했었고 집을 호화스럽게 장식하거나 새 시설을 놓기 위해 확장하는 데 그쳤다.

입구의 현관은 종종 4개의 석 기둥으로 멋을 내었고 옥외의 정원은 분수와 석상으로 장식되어져 있다. 휴식 실, 전망대, 여성과 시종들이 쓰는 구역, 개인 욕실로써 전 과정의 욕실 등을 덧붙일 수 있고 방이나 새 시설을 새로 놓기 위하여 층을 올리기도 하였다.

날씨가 더워 힘들기는 하였으나 계속되는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걷고 또 걸으면서 설명을 들었다. 기념이 될 만한 중요한 장소에서는 사진촬영을 열심히 해두었다. 이렇게 폼페이의 관광은 점심식사시간 직전까지 진행되었다. 점심식사는 스파게티, 소고기 샐러드, 과일을 먹는 순서로 끝내고 잠깐 동안의 휴식시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