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일주여행

이탈리아 일주여행(24)-베수비오화산 폭발로 완전히 매몰된 폼페이

달리는 말(이재남) 2014. 8. 11. 05:48

 폼페이의 유적들

 폼페이의 유적들

 폼페이의 유적들

 폼페이의 유적들

 폼페이의 유적들 

폼페이의 유적-야외음악당


베수비오화산 폭발로 완전히 매몰된 폼페이 

 

 

여행을 시작한지 닷새째 되는 날 아침을 맞았다. 새벽 4시 40분경에 일어나 외출준비를 하고 걷기 위하여 밖으로 나왔다. 산보를 한다고 나오긴 했는데 호텔주변을 걷는 게 고작이다. 6시 30분에 호텔레스토랑을 오픈한다고 했는데 이탈리아사람들은 정해진 시간보다 빠른 시간에는 움직이지 않는 모양이다.

지하 1층의 레스토랑에 들어가 아침식사를 마치고 전용버스에 올랐다. 버스도 바뀌고 운전기사도 바뀌었다. T.C.는 새로운 운전기사 마우리찌오를 소개한다.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로 답례를 했다. 안전하게 잘 운전해달라는 무언의 부탁이라고나 해둘까. 약 3시간을 달려간 곳은 베수비오화산으로 말미암아 잿더미가 됐었던 폼페이다.

베수비오화산재에 묻혔던 폼페이에 도착하여 입장권을 구입하여 입장할 수 있었다. 정말로 수많은 사람들이 꽉 들어차 늘 순서를 기다리는 일들이 많았다. 서기 79년에 폼페이와 함께 에르콜라노에서 스타비아까지 살아있는 모든 것을 파괴한 베수비오화산의 무서웠던 실태를 생생하게 현대인에게 보여주고자 유적을 발굴해왔다.

우리보다 수세기를 앞서간 인류사회는 실재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별로 다르지 않았으며 좀 더 삶에 활발하고 적극적인 참여와 부단히 우리의 생활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에 대한 막대한 민감성을 가진 그런 사회였다. 화산폭발로 매몰된 후 1748년 발굴되기 전까지 화산재속에 묻혀있던 도시로 발굴당시까지 인간을 비롯한 생물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어서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나폴리 만 연안에 남서쪽으로 23Km 떨어진 베수비오 산 근처에 있으며, 지금의 사르노 강어귀 북쪽으로 흘러든 선사시대의 용암에 의해 형성된 돌출부 위에 건설된 고대도시다. 지금은 내륙이 되었으나, 당시에는 베수비오화산의 남동쪽, 사르누스(사르노)강 하구에 있는 항구도시였다.

비옥한 캄파니아평야의 관문에 해당하여 농업, 상업 중심지로 번창하였으나, 제정로마 초기에는 곳곳에 로마귀족들의 별장들이 들어선 피서, 피한의 휴양지로서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오늘날의 폼페이 시는 고대도시의 동쪽에 있으며, 순례요지인 산타마리아 델로 사리오 바실리카가 있다.

도시를 잿더미로 만든 최초의 정말 큰 재앙은 서기 62년에 일어난 무서운 지진이었다. 생존한 시민들의 불굴의 강인성과 능력으로서만 재빨리 상업과 상업 활동을 재 개시하고 반쯤 파괴된 도시를 재건할 수 있었다. 두 번째의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갑자기 들어 닥쳤을 때 이미 사원들을 확장하고 완공 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수세기 전부터 사화산이라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포도과수원, 농가 그리고 호화저택이 많았던 이곳에 베수비오화산은 서기 79년 8월 24일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간에 갑자기 되살아나 어찌 할 수없는 파괴력을 갖고 폭발했다. 높이 치솟는 불길위에 눈 깜짝할 사이에 태양을 뒤덮는 어마어마한 검은 연기가 퍼졌다.

작열하는 작은 화산석의 알갱이와 재의 세례가 폼페이를 뒤덮었다. 벽과 지붕이 무너지고 물에 섞인 재의 파도가 모든 살아있는 생명의 자취를 흔적도 없이 감추었다. 계속되는 어둠속에서 계시록의 장면이 번개, 지진, 해진에 의해 더욱 증대되고 스타비아나 노체라로 도망하려는 몇 안 되는 생존자들은 도처에 퍼지고 있는 독가스에 살해당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