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일주여행

이탈리아 일주여행(5)- 레오나르도 다 빈치

달리는 말(이재남) 2014. 7. 9. 05:36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 최후의 만찬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 최후의 만찬 

이탈리아 피렌체 미켈란젤로 광장(언덕)으로부터 내려다보이는 피렌체의 모습

이탈리아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 

이탈리아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의 조각상

이탈리아 피렌체 단테 생가의 흉상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곳에서는 또한 연중 수많은 전시회가 열린다. 스칼라극장 광장에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동상이 서있었으며 그의 동상 바로 아래로는 그의 제자들의 동상이 서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1452년 4월 15일 새벽 3시에 토스카나 지방의 산골 마을 빈치에서 유명한 가문의 공증인인 삐에로 다 빈치와 가난한 농부의 딸인 카타리나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초등교육을 받은 후 1466년 14세 때 그는 가족과 함께 토스카나의 수도였던 피렌체로 이주한다. 15세부터 20대 초반까지 당시 유명했던 화가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 밑에서 미술 및 기술공작 수업을 받았다. 제자의 재능을 알아본 베로키오는 다 빈치에게 그림을 맡기고 자신은 조각에만 몰두할 정도로, 다 빈치를 제자가 아닌 화가로 인정했다.

레오나르도는 1481년까지 그의 스승의 영향에서 벗어나려고 많은 노력을 했으며, 이 시기에 그려진 인물화와 풍경화에서 이미 레오나르도의 독창적인 구도와 분위기 표현 기술을 엿볼 수 있다. 1481~1482년에 밀라노의 스포르차 귀족가문의 화가로 초빙되어 약 12년 동안 화가로서 뿐만이 아니라 조각가, 건축가, 기사로서 오늘날 잘 알려진 레오나르도의 다방면에 걸친 천재성을 발휘했다.

이 시기에 세계 미술사에서 가장 뛰어난 그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암굴의 성모』(1483년, 루브르 박물관)와 『최후의 만찬』(1495~1498년, 밀라노)이 제작되었다. 『암굴의 성모』에서는 레오나르도 특유의 화법인 이른바 환상적인 색감을 살리는 스푸마토(Sfumato)가 첫 선을 보이게 되며, 뒤에 이 화법을 바탕으로 유명한 『모나리자』(1500~1503년), 루브르 박물관)가 그려졌다.

또한 당시 로마가톨릭의 통제에 따라 제작되던 교회미술계의 풍토를 깨고, 예수의 인성을 강조하는 등 자신의 소신에 따른 작품 활동을 했다. 1516년 프랑소와 1세(François I)가 있는 프랑스의 끌로 뤼세(Clos Lucé)로, 그의 제자인 프란세스코 멜지(Francesco Melzi)와 함께 이주한다. 그는 3점의 그림 즉 「모나리자(라 조콘다」, 「성 안나와 성 모자」, 「세례자 요한」을 가져갔다.
1519년 4월 23일 유언을 남긴 채 그는 5월 2일 사망했다. 그의 나이 67세였고, 조르조 바사리는 레오나르도의 전기에서 레오나르도가 프랑소와 1세의 품 안에서 숨을 거뒀다고 적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평생 독신으로 살아 자식을 남기지 않았고, 그의 제자이자 동반자였던 프란세스코 멜지가 그의 유산을 상속하였다. 1570년 프랑세스코 멜지의 죽음으로 그가 평생 간직하고 있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엄청난 양의 크로키와 그림이 세상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