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모세가 죽어 장사지내어진 느보산의 꽃
요르단 모세가 죽어 장사지내어진 느보산-2000년에 교황이 방문한 기념비
요르단 모세가 죽어 장사지내어진 느보산-이스라엘의 여리고 땅과 사해가 내려다보이는 곳
요르단 모세가 죽어 장사지내어진 느보산-이스라엘의 여리고 땅과 사해가 내려다보이는 곳
요르단 모세가 죽어 장사지내어진 느보산-이스라엘의 여리고 땅과 사해가 내려다보이는 곳 요르단 모세가 죽어 장사지내어진 느보산의 꽃 앞
요르단 모세가 죽어 장사지내어진 느보산-2000년 교황이 방문한 기념비
요르단 모세가 임종했다는 느보산교회-이스라엘 광야 여정 중에 있었던 놋뱀사건을 기억나게하는 놋뱀
모세가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죽은 곳, 느보산
주차장을 출발한 전용버스는 모세가 임종하였다고 전해지는 느보산으로 달려갔다. 모세가 이스라엘민족을 출애굽 시킨 후 120세의 나이로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죽은 곳이 바로 느보산이다. 모압 산맥의 가장 높은 산등성이에 자리한 이산은 마다바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의 서쪽에 있다.
이곳이 선지자 모세의 마지막 장소이며 그는 이곳에서 죽어 장사되어졌다고 한다. 성경의 말씀처럼 그의 무덤은 알려져 있지 않다. 사해와 요르단계곡 그리고 예루살렘의 언덕들이 한눈에 잘 보이는 이곳 느보산 정상에서 모세는 결국 들어가지 못했던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AD 4세기에 작은 모세기념교회가 이 성스러운 곳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 졌다. 이 교회는 여러 차례에 걸쳐 공사를 하면서 바실리카양식으로 발전한 것이다. 또한 내부의 유적은 발굴하고 복원하면서 예배드릴 수 있는 시설을 갖추었다. 그런가하면 교회부근에는 모세가 지팡이로 바위를 치니 샘물이 솟아났다고 전해지는 모세의 샘이 있다.
그런데 3200년이나 지난 현재에도 물이 샘솟고 있다니 대단하다. 1930년에 이곳은 프란체스코 수도회에서 구입하여 1933년부터 느보산과 인근지역발굴을 시작하여 많은 곳이 발굴되어 있다. 교회 옆에 마련된 작은 박물관은 지금까지의 발굴역사를 볼 수 있는 것들이 전시되어져 있다.
그런가하면 교회의 내부바닥에는 비잔틴 모자익이 아직도 깔려있다. 모세기념관 앞, 교회의 서쪽 마당에는「가데스 바네아 사건」을 기념하는 뱀 형상의 놋 탑이 세워져 있는데 이것은 모세가 불 뱀으로부터 이스라엘민족을 지킨 것을 상징한다. 이곳에서 서북쪽을 바라보면 요단강 건너편으로 여리고가 아스라하게 보이고, 서남쪽으로는 햇빛에 물결이 반짝이는 사해를 볼 수 있다.
이 놋 뱀의 탑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는데 서양인 관광객들이 바로 밑에서 설명을 듣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교황청은 이곳 느보산을 비롯하여 요르단의 5대 기독교성지를 다음과 같이 지정, 발표하였다고 했다.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서 세례 받은 베다니(Bethany), 세례요한의 순교지 마케루스궁터, 선지자 엘리야의 고향 엘리야스, 성모마리아의 성소를 모신 안자라교회(Anzara Church)를 말한다. 기다리고 서있는 전용버스를 타려고 느보산으로부터 내려왔다. 그때가 오전 9시다. 필자일행을 태운 버스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붉은 도시 페트라를 향하여 달렸다.
야곱-요셉-모세의 출애굽까지의 역사
「야곱」은 「이삭」의 쌍둥이 아들 중 둘째이다. 「에서」라는 쌍둥이 형이 있었는데 「야곱」은 집에서 양을 돌보는 일을 좋아하여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에서」는 사냥을 잘해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다. 이삭이 늙어서 장자의 축복을 내려야 하는데 「에서」에게 사냥을 해서 죽을 끓여오면 장자의 축복을 주겠다고 했다.
이삭의 아내는 이 말을 듣고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받게 하기위해 계략을 꾸미는데 눈이 어두운 이삭을 속여서 「야곱」을 「에서」로 분장시켜 대신 받게 했다. 뒤늦게 알게 된 「에서」는 「야곱」을 죽이기 위해 찾아다녔으나 「야곱」은 이미 사막으로 도망간 상태였다. 여기서 「야곱」은 이스라엘의 선조가 되었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아이가 없어 하갈이라는 여종과 동침해서 낳은 아이로서 하느님이 "이 아이에게도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라고 약속하셨고, 또 아브라함의 본부인인 사라가 너무 질투하여 쫓아 보냈으므로, 따로나가서 이라크 등 중동국가의 선조가 되었다. 아브라함의 적자인 이삭하고는 배다른 형제가 되는 셈이다.
나중에 「야곱」은 열두 아들을 낳았는데 그 열두 아들 중 열 명은 첩의 자식이고 마지막 「요셉」과 「베냐민」이 본처소생이라 요셉에게 유산을 물려주려 했다. 그러자 형들은 나이어린 요셉을 이집트로 팔아버리고. 아버지에게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게 됐다. 이집트로 간 요셉은 노예로 살아가다가 이집트의 흉년을 예언함으로써 이 나라의 총리가 되었다.
이집트는 요셉의 충고로 흉년을 면했지만 이스라엘지역은 흉년으로 요셉의 형제들이 이집트로 음식을 구하러 왔다. 요셉은 형들을 만나 보복할 생각을 가졌으나 그들의 형제애가 두터운걸 보고 그들을 용서하고 요셉은 이집트에서 살았다. 이후 요셉의 자손들은 이집트에서 한 종족으로 살아가다가 모세라는 지도자에 의해 이집트(애굽)에서 출애굽을 하게 됐다.
파라오는 이스라엘 민족의 수가 많아져 왕권의 약화를 두려워한 나머지 람세스에서 잘 살고 있는 이스라엘민족을 탄압하고 이를 피해 바구니로 떠나보낸 모세가 이집트 공주의 품에서 왕족으로 자랐다. 그러나 모세는 이집트인을 살해하는 실수를 범하는 바람에 쫓기는 몸이 되어 이집트를 떠난다.
모세는 사막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스라엘민족을 구하라는 하나님의 계시대로 민족을 이끌고 출애굽을 단행했다. 40년의 광야에서의 방황 끝에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의 도움으로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땅으로 이동하고 그 땅을 빼앗아 나라를 건설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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