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여행

내륙으로 둘러싸인 라오스의 여행(20)-사회주의국가, 라오스 인민민주공화국

달리는 말(이재남) 2013. 10. 10. 06:23

                                                                        

 루앙프라방 금색벽화로 표현한 왓 마이사원

 루앙프라방 금색벽화로 표현한 왓 마이사원

 루앙프라방 금색벽화로 표현한 왓 마이사원

 승려들의 탁발을 돕는 관광객이나 주민들의 모습

 승려들의 탁발을 돕는 관광객이나 주민들의 모습

 라오스 루앙프라방 승려들의 탁발의 모습

 라오스 루앙프라방 승려들의 탁발의 모습

 라오스 루앙프라방 왕궁박물관

 라오스 루앙프라방 왕궁박물관

 일몰을 감상하려고 올라간 푸씨산에서 만난 불상

 푸씨산 정상에 올라가 바라본 루앙프라방의 모습

 푸씨산 정상에 올라가 바라본 루앙프라방의 모습

 푸씨산 정상에 올라가 바라본 루앙프라방의 모습

 푸씨산 정상에 올라가 바라본 루앙프라방의 모습

 

사회주의국가, 라오스 인민민주공화국

 

 


라오스 인민민주공화국은 북서쪽에는 미얀마와 중국, 동쪽에는 베트남, 남쪽은 캄보디아, 서쪽은 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내륙국으로 인구는 2009년 기준으로 약 68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이 나라의 역사는 14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존재하고 그 이후 세 개의 독립된 국가로 나누어진 란 상 왕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엔티안왕국의 차오아누 왕은 영국이 타이를 공격한다는 소문을 듣고 타이정벌에 나섰다. 하지만 1828년에 타이가 비엔티안왕국을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심지어 국왕은 타이에 끌려가 감옥에서 살다가 1829년 감옥에서 죽었다. 결국 분열된 라오스는 타이와 베트남의 지배를 받게 된다. 1860년대부터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침략이 시작되어 프랑스는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당시에 라오스영토의 대부분이 타이의 지배를 받았는데, 프랑스는 무력을 사용하여 타이 정부로부터 메콩강 동쪽의 영토지배권을 인정받았다. 이 영토가 현재의 라오스가 되었다. 1893년, 비엔티안 왕국, 루앙프라방 왕국, 참 파삭 왕국이 프랑스의 보호국이 되면서 합쳐졌다. 프랑스는 라오스의 3개 지방을 합쳐서 루앙프라방왕국을 만들어 보호령으로 선포했다. 그 후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자 프랑스는 미얀마로 가는 길을 개방하였다.

그러나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라오스는 급격히 혼란해졌다. 1945년, 일본군의 점령 이후 잠시 독립을 했으며, 라오스의 독립파는 라오이싸라, 즉 공산정당을 만들어 라오스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라오이싸라는 베트남공산정권인 베트남민주공화국과 긴밀하게 유대를 했다.

프랑스와 라오스 독립파의 전쟁은 갈수록 심해졌다. 결국 1949년 프랑스는 라오스를 독립시켜주었지만 국방, 외교, 재정권을 프랑스가 가졌다는 점에서 형식적인 독립이었다. 1954년, 라오스는 입헌군주국인 라오스왕국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러나 독립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라오스 내전이 일어나고 곧 우익과 좌익의 대립이 시작되었다.

내전은 계속 심해졌고 결국 1954년에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라오스의 왕실 유지, 파테트 라오가 참여하는 정부수립을 골자로 하여 평화조약이 맺어졌지만 중립은 실패하였고 다시 내전이 시작, 시간이 갈수록 계속 격화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 파테트 라오의 공격이 계속 심해져 라오스정부는 계속 밀리게 된다.

우익의 지도자는 라오스왕국의 총리가 된 수바나 푸마이었고 좌익의 지도자는 수파누봉 이었다. 1950년 라오스의 공산세력이 뭉쳐서 파테트 라오가 탄생했다. 다시 평화조약이 맺어졌으나 이웃 나라 베트남에서 베트남전쟁이 일어나 라오스도 전쟁 상황이 되었다. 베트남 북부월맹군은 전쟁 물자를 라오스를 통과하는 이른바호찌민통로를 통해 전선에 수송하였다.

미군은 라오스 내 소수민족을 용병으로 고용하여 내전을 부추기면서 호찌민통로를 차단하기 위해 비밀리에 라오스 전국토를 폭격하였다. 그 폭격은 1964년부터 1973년까지 50만 차례나 이루어졌고, 2백만t 이상의 폭탄이 투하되어 전 국토가 황폐해졌다. 미국은 베트남전쟁이 끝날 때까지 폭격과 라오스 내전 개입을 부인해서비밀전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현재까지도 폭격으로 인한 불발탄에 끊임없이 민간인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1975년 남베트남이 베트남전쟁에서 패망하고 라오스국왕과 수바나 푸마가 물러나면서 좌익성향의 정부가 수립된다. 1975년, 라오스왕국은 사라지고 공산주의 단체인 파테트 라오에 의해 공산국가가 설립되었다. 파테트 라오가 군주제를 폐지하고 라오 인민민주공화국을 선포하면서 30년 동안에 걸친 라오스 내전은 완전히 종식되었고 라오스는 공산주의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라오스의 공산주의 체제는 실패하여 경제는 악화되었다. 게다가 타이와 미국의 경제봉쇄로 라오스경제는 파탄되었다. 1990년대에 소련의 해체와 공산주의 몰락으로 인해서 라오스도 시장경제를 허용하였다. 21세기 들어 라오스정부는 계속 개혁개방정책을 추구하였으나 아직까지 공산주의는 유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