괌의 가족여행-차모르 빌리지의 전통 재래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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괌의 가족여행-차모르 빌리지의 전통 재래시장
괌의 가족여행-차모르 빌리지의 전통 재래시장
괌의 가족여행-차모르 빌리지의 전통 재래시장
괌의 가족여행-차모르 빌리지의 전통 재래시장
괌의 가족여행-스페인광장의 초콜렛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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괌의 가족여행-스페인광장의 초콜렛하우스
괌의 가족여행-스페인광장의 초콜렛하우스
원주민, 차모로족의 슬픈 역사
1672년, 예수회신부와 그의 필리핀인 조수가 족장의 어린 딸을 동의 없이 세례한 일로 인해 투몬(TUMON:톰홈)의 마타팡 족장에 의해 죽었다. 이로 인해 차모로족이 말살될 지경에 이르는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으며 차모로족의 인구는 20만 명에서 1741년에 이르자 5천 명으로 급감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17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아갓, 페나, 하가트나, 파고, 우마탁 등의 5개 마을에서만 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가하면 신부들과 스페인 군인에 의해 감시를 받아 매일 종교의식에 참석하고 스페인어와 스페인풍습을 강제로 교육받게 되었다. 스페인군과 필리핀인들로 인해 괌의 인구는 후에 증가하게 되면서 차모로족의 혈통은 최후를 맞게 되었다.
이 시기의 스페인의 영향은 오늘날에도 남아있는 건물과 다리, 요새, 성당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1898년~1941년 동안은 괌이 미국의 지배를 받던 시기이다. 괌은 스페인과 미국의 전쟁결과로 파리조약에 의해 미국의 소유가 되었다. 미 해군의 관할 하에 농경기술의 향상, 교육, 토지관리, 공공의료가 발달했다.
괌은 1941년 진주만공격으로 일본군이 이곳을 점령할 때까지 미 해군에 의해 연료보급과 통신의 주요기지로 사용되어왔다. 1941년~1944년은 일본군이 괌을 점령했던 시기로 괌 주민들에게는 고난과 역경의 시기였다. 강제수용소가 일본군에 의해 설치되었고 다수의 차모로족이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
일본군이 점령했던 역사를 볼 수 있는 요소들이 오늘날에도 남아있으며 총알자국과 터널 등이 지금도 남아있다. 해군의 무차별한 폭격으로 인해 수천의 일본군과 차모로족이 목숨을 잃었으며 하가트나가 파괴되었으며 1944년 미군이 3주간의 작전 끝에 아산과 아갓 해변에 상륙하면서 18,000명의 미군과 일본군이 괌에서 전사하였고 괌은 또다시 미국의 관할이 되었다.
괌은 서태평양의 전략적요지로서,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으로 미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1946년 5월 30일, 미 해군정이 재편성되었으며 미국의 대통령인 해리 트루먼은 1949년 괌을 비 편입된 미국의 영토로 규정하는 오가닉 결의에 서명하기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제한된 자치권은 물론 미국시민으로의 권리가 괌의 주민들에게 주어졌으며 오늘날에도 괌은 미국의 주요군사기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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