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 손녀와 함께한 괌의 여행

손자, 손녀와 함께 다녀온 괌의 PIC 여행(3)-괌의 약사

달리는 말(이재남) 2013. 9. 4. 07:50

                                              

 연인들이 많이 찾는 사랑의 절벽(아들의 가족)

 연인들이 많이 찾는 사랑의 절벽

 사랑의 절벽(필자부부와 딸, 손자)

 -PIC호텔의 744호실에서 내려다본 워터파크와 바다

 연인들이 많이 찾는 사랑의 절벽의 사랑의 종

 피시아이 수중전망대에 들어가는 입구

 피시아이 수중전망대에서 바라본 바다의 속

 피시아이 수중전망대에서 바라본 바다의 속

 괌의 가족여행-스페인광장

 괌의 가족여행-PIC 의 정원수

 피시아이 수중전망대에서 바라본 바다의 속

 피시아이 수중전망대에서 바라본 바다의 속

 

 

괌의 약사

 

 

 

우리가 찾아간 괌은 기원전 2천년부터 이곳에 거주해온 원주민, 차모로족이 살고 있었던 원주민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대도시이다. 차모로족의 문화는 16세기 이래 유럽인, 동양인, 미국인, 미크로네시아인 등이 이곳을 점령했거나 이곳으로 이민 온 수많은 인종에 의해 영향을 받아왔다.

차모로사회는 잘 발달된 낚시기술과 원예기술, 사냥술을 갖추고 있었는데, 그들은 전문항해사이기도 했고 공예장인이기도 했으며 평직기술과 도기제조에도 능했었다. 그들의 주택과 카누는 이 지역의 환경에 이상적으로 독특하게 제작되었으며 차모로족은 여성족장 중심사회였다.

언어, 음악, 춤, 전통을 포함한 차모로 족의 문화는 여성의 강한 권력과 높은 지위에 바탕을 둔 것이었으며 스페인이 괌의 지배에 실패한 이유가 이 사실을 간과한 것이 그 원인이었다. 돌기둥과 라테석 등은 고대차모로족의 주택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요소다.

이것은 괌과 마리아나제도의 상징이 되었으며 원래의 모습은 산호사암으로 만들어진 받침대 역할의 기둥 또는 할라기, 그리고 산호머리인 타사로 만들어진 관석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전통적으로 죽은 사람의 뼈, 장신구, 카누 등 망자의 개인소지품은 이 돌기둥 아래 묻혔으며 그대로 남아있게 되었다.

기원전 500년경 차모로족은 라테스톤이라는 돌기둥 위에 집을 짓고 살았다고 전해진다. 라테스톤은 받침 역할을 하는 기둥「할라기」와 그 위를 덮은「타사」로 이루어지는데 할라기는 석회암으로 수 km 떨어진 남부의 페나강 근처의 유적지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현재 차모로족의 생활양식을 전해주는 중요한 증거가 되고 있고, 라테스톤을 테마로 한 공예품도 많이 있다. 괌 곳곳의 가로등이나 장식물 등도 라테스톤의 모양을 모방한 것들이란다.

괌의 스페인시대는 1565~1898년으로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1521년 우마탁 베이에 도착하면서 서방과 처음 접촉한 사건이 되었다. 몇 번의 충돌이 있고난 후 원주민인 이들은 결국 선원들과 신선한 과일, 채소, 물 등의 식량을 고가의 소모품이던 철과 교환하게 되었다.

1565년 괌과 기타 마리아나제도의 섬들에 대해 스페인이 소유권을 주장하였고 1668년에 이르자 예수회의 선교사들이 유럽식의 문명과 종교를 전파할 목적으로 도착하게 되었다. 이들은 차모로족에게 옥수수경작, 소 방목, 무두질 등을 가르쳤으며 서방의 옷차림에 적응하도록 하였다.

기독교세력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자 천주교성당은 마을활동의 중심이 되었으며 괌은 멕시코에서 필리핀으로 이동하는 스페인 갤리온선의 중요한 중간 기착지가 되었다. 갤리온(Galleon)이란 16세기 중반에서 18세기 무렵까지 사용된 범선을 말한다.

캐럭(carrack)에서 발전한 형태로, 캐럭에 비해 폭과 전체 길이의 비가 1:4로 길고, 흘수가 얕기 때문에 보다 속도가 더 빠르면서도 동시에 안정성이 높아졌다. 이 배는 주 돛대가 3개가량 있고 삼각형모양의 돛을 단 중세시대의 범선을 말하는데, 15세기 이베리아반도에서 유행하던 범선으로, 15~16세기에 사용되었다.

주 돛대는 보통 3개 정도이지만 더 많은 경우도 있다. 배의 뒷부분이 상당히 높은데, 선수는 선미보다 더 높으며 뱃머리를 넘어 앞쪽으로 뻗어 있는데, 배안은 깊고 넓다. 1500년 초에는 배에 대포를 장착해서 포문을 통해 포탄을 발사하기도 하였다한다

갤리온선은 속도가 더 빠르고 적재량도 많으며, 또 포격전에도 적합하였다. 서구 여러 나라들은 갤리온을 건조하여 군함과 대형 상선으로 운용하였다. 스페인은 이것을 더욱 크게 만들어 신대륙식민지의 부를 본국에 호송하기 위해서 사용하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