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와 탐욕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호치민
-하노이 바딘광장의 호치민 묘-
베트남 전통 현악기는 우리나라 전통 현악기에 비해 소리가 가늘고 더 높은 음을 냈다. 이 악기들의 화려한 추임새와 장단은 수상 무대 인형들의 움직임을 따라다녔다. 그 훌륭한 수상인형극을 관람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곳에서 차를 타고 옮겨가 “하노이 일 번가”라는 우리교포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제육볶음을 중심으로 저녁식사를 맛있게 했다. 식사를 마치자 또 30분쯤 차로 더 달려 International convention centre Hotel의 412호실에 짐을 풀었다.
베트남 전통 현악기는 우리나라 전통 현악기에 비해 소리가 가늘고 더 높은 음을 냈다. 이 악기들의 화려한 추임새와 장단은 수상 무대 인형들의 움직임을 따라다녔다. 그 훌륭한 수상인형극을 관람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곳에서 차를 타고 옮겨가 “하노이 일 번가”라는 우리교포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제육볶음을 중심으로 저녁식사를 맛있게 했다. 식사를 마치자 또 30분쯤 차로 더 달려 International convention centre Hotel의 412호실에 짐을 풀었다.
Internation convention centre hotel
피곤하다. 그러나 이를 닦고 샤워를 하고나니 개운하다. 조금 기분이 업그레이드된 상태로 여행에 관한 기록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가족들이 함께 모여 오늘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냥 이야기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내일 일정을 위해 잠을 자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베트남 호치민의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프랑스 식민시대 건축물, 인민위원회청사(필자가족)
2005년 10월 20일 여행 네 번째 날, 잠에서 깨어나니 5시 45분이다. 일찍 일어나니 여유 있게 준비를 할 수 있어 좋았다. 7시에 모닝콜이 있었으므로 2층 레스토랑으로 내려갔다. 정수교씨 부부는 이미 식사를 마치고 나가려다 레스토랑 입구에서 만났다. 쇠고기를 얹은 쌀 국수와 오므라이스, 토스트 빵에 잼을 발라 맛있게 먹었다. 여행할 때마다 느끼는 먹는 즐거움을 만끽한 셈인가? 8시 반에 호텔로비에 일행들이 모여 밖으로 나갔다. 호텔 바로 앞에는 공안(경찰)들이 길을 차단하고 우리일행이 바딘광장으로 진입하는 것을 막는다.
현지인 가이드 럼이 공안에게 여행객이 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으나 오히려 화를 내면서 되돌아가라는 소리를 버럭 지른다. 할 수 없이 호텔로 돌아와 20분 정도 휴식을 취했다. 휴식을 취하는 동안 현지인 가이드 럼(Lim)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하노이로부터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곳에 살고 있으며 럼 위로 누나가 4명, 아래로는 여동생이 하나 있단다.
이곳 베트남에서는 2명의 자녀만을 호적에 올릴 수 있다고 하는데, 럼이 호적에 오르고 대학까지 졸업했을 터인데 그 외의 자식들은 과연 어떻게 처리했을까? 무척 궁금했다. 그러나 그 내용까지를 차마 물어볼 수 있는 용기가 나지 않아 그만 두기로 했다. 그의 부친은 엔지니어라고 했다.
베트남 현지 가이드 Lam과 한국인 가이드, 이정하씨
그의 나이는 26세로 아직은 미혼이란다. 여자친구가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아직 없다고 했다. 자신의 키가 작고 잘 생긴 얼굴이 아니어서 여자들이 본인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개면적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와 서로의 E-Mail주소를 교환하면서 E-Mail을 이용하여 연락하자고 했다.
바딘광장은 참 너른 광장이었다. 베트남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그곳에 호치민이 잠들어 있다. 그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영묘 앞에는 참배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호치민을 빼놓고 베트남을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박호, 베트남 사람들은 누구나 호치민을 그렇게 부른단다. '박'은 아저씨나 큰 아버지에 해당하는 베트남 말이다. 호치민 그는 사치와 탐욕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그가 남겨 놓은 것은 혼자 살았던 열 평 남짓한 목조 주택뿐이었다.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프랑스 식민시대 건축물, 인민위원회청사앞
호치민 생가
1945년 독립한 베트남의 주석이 되어 1969년 운명할 때까지 24년 동안을 권력의 정점에 있었지만 그가 남긴 추문은 도무지 찾을 길이 없다. 그는 아무것도 가지려 하지 않았다. 자신의 관저를 그럴듯하게 지으려는 관리들의 계획을 단호하게 좌절시킨 그는 평생 몇 벌의 옷만을 고집하며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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