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의 여행

21.600여 년 동안 폴란드의 수도였던 크라카우

달리는 말(이재남) 2012. 11. 18. 15:55

             
농촌과 도시,구별 없이 골고루 잘 사는 폴란드

 

이 곳 폴란드에서 가장 크다는 이게아대학 즉 광산대학은 수많은 광산일꾼들을 배출하는 곳이다. 이곳 사람들의 월급은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운전기사, 광부가 60만 원선이고 그 밑으로 샐러리맨이나 공무원들이고 그 다음으로 청소부나 잡역부는 20만원 정도라고 한다.

이 곳에서는 광부들이 많은 대우를 받고 있어 광산대학도 번창하나 보다. 지방 분권화가 잘 된 나라로 모든 국민들이 골고루 잘 사는 나라며 그래서 농촌과 도시 구별 없이 골고루 잘 산다고 한다. 결혼을 하면 처가살이를 하게 되고 장모와 사위사이가 좋지 않단다.

누구나 부지런히 일해야 먹고 살 수 있어 대부분 맞벌이를 하는데 결혼적령기는 여자 20∼21세, 남자 24세라고 하며 30세쯤 되면 남녀가 겉늙어 이 나라 사람들은 50대 정도면 6∼70세로 보인다고 한다. 국민소득은 폴란드 5,000불, 헝가리 7,000불, 체코가 10,000불인데 국민 모두가 고루 잘 살기로는 폴란드가 으뜸인 것 같다. 그래서 이 나라 사람들이 더 활기차게 사는 것 같다.

 

 

폴란드 크라코프의 바벨성

폴란드 크라코프 바벨성의 시계탑

폴란드 크라코프의 거리

폴란드 크라코프의 광장

폴란드 크라코프 바벨성의 전경

 

폴란드 크라코프의 중앙광장


전용버스가 우리일행을 싣고 달려온 시간이 1시간 이상 걸려 크라카우(크라코프)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곳 가이드 김안나 여사를 만났을 때 “비록 비가 내리고 있고 어두워지고는 있으나 오늘 해야 할 일은 마쳐야한다”고 그녀는 설명을 한다.

크라카우는 600여 년 동안 폴란드의 수도로 우리나라의 경주와 견줄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이 곳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인류문화 유산지로 대부분의 집들이 500년이 넘었다고 했다. 500년이 넘은 건물들이 하나도 손상을 받지 않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제 2차 세계대전 중에도 히틀러가 이 도시만은 폭격을 하지 않도록 해서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단다. 가이드를 만난 장소에서 가까운 거리에 바벨 성이 좌측의 위쪽에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이 성은 600여 년 간 이 도시가 폴란드의 수도일 때 왕궁이 있었던 자리로 왕의 대관식과 장례식, 귀빈 접대 등이 이루어지던 곳이며 120여 년 동안 오스트리아 통치시대에는 군 사령부로 2차대전시에는 나치사령부로 사용되던 곳이라고 한다.

성의 역사는 9세기 초부터 시작되며 1502∼1536년에 걸쳐 르네상스 양식으로 개조되었다. 이곳 도심을 흐르는 비수아 강은 길이가 1704km로 긴 강인데 폴란드 구석구석을 흘러 발틱해로 흘러 들어가는 폴란드의 젖줄이다.

우산을 받으며 구경도 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비가 내리고 어두워지니 추워진다. 아름드리나무들로 우거진 넓은 공원을 거쳐 마침 예약된 폴란드 식 레스토랑이 가까운 거리에 있었으므로 그곳을 찾아갔다. 악사와 춤추는 무희 등 5명으로 구성된 팀, 음악에 맞추어 춤추는 광경을 보면서 저녁식사를 즐겼다. 크라카우는 폴란드의 옛날 도시다. 수도 바르샤바는 전쟁으로 말미암아 옛 건물들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옛 수도이었던 역사적인 도시 크라카우를 관광객들은 찾는단다.

 

중세 유럽광장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는 중앙광장

 

저녁식사 후 구 시가지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너른 광장으로 중세 유럽광장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는 중앙광장으로 나갔다. 비록 날씨가 궂은 저녁시간이기는 했지만 광장에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카페와 상점들이 즐비하다. 시티투어를 하는 소형차들이 거리를 누비며 시티투어를 하지 않겠느냐고 호객을 하고, 마차들도 관광객을 유혹하기에 바쁘다. 이곳의 4∼5층으로 된 건물마다 당시 건물주인의 문장들이 새겨져 있다.

광장에는 14세기에 시청사로 쓰였고 지금은 시계탑(첨탑)만 남은 유적과 중앙에는 옛날 상업의 중심지였던 직물시장이 있다. 시장에는 요즈음 관광객을 상대로 폴란드의 특산품인 호박, 은, 목각, 수제품을 파는 가게들이 있다. 이곳 상점들은 이 도시에서는 유일하게 유로나 달러 등 외국화폐가 통용되는 상점들이라고 한다. 직물시장 오른쪽 중앙에는 19세기 말 이 나라가 오스트리아 식민지로 있을 때 민족저항 시인으로 폴란드 인들에게 용기를 실어주었던 아담오이(Adamowi)시인의 동상이 서 있다.

그리고 이곳은 예전에 크라카우의 사교장으로서의 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주위에는 옛 크라카우 귀족들의 저택이 즐비하다. 그 건너 쪽에는 마리아 성당이 있다. 두 개의 첨탑으로 되어 있는데 첨탑 2개의 모양이 모두 다르다. 당시 폴란드 왕은 마리아 성당의 첨탑을 두 형제에게 지으라고 지시를 했다. 거기에다 공명심을 불태우기 위해 누가 더 멋있는 첨탑을 빨리 짓는지 빨리 짓는 사람에게 큰상을 내리겠다고 했다.

두 형제는 자기만의 비법으로 첨탑을 짓기 시작했는데 다 지은 후에 보니, 형이 지은 첨탑이 더 높고 아름다웠다고 한다. 동생이 형을 찾아가 항의를 하자 형제는 다투게 되었고 형제는 서로의 칼날에 맞아 한날한시에 죽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역사적인 첨탑이 이곳에 서있다.

이 성당은 1292년 건축되었다가 몽골의 침입으로 파괴되고 1452년 복원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탑(82m)이므로 소방서에서 화재를 감시하는 관제탑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곳 광장에는 기네스북에 등록된 세계에서 가장 작은 성당도 있다. 보이체크성당이다. 독일인 아담 베르크가 설계한 성당으로 그는 폴란드에서 처음으로 순교하여 성인 칭호를 받는 사람이다. 이 성당은 11세기 때 지어진 성당으로 20명이 미사를 드릴 수 있는 세계 최소의 미니 성당이다.

폴란드는 유럽 중앙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옛날부터 이웃나라와 이어주는 교두보 역할을 했고 그 덕택에 무역을 잘 해서 번영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는가 하면 수없이 많은 외세의 침략에 나라를 여러 번 빼앗기는 비운을 맞기도 했다.

 

 

폴란드 크라카우 중앙광장의 성마리아성당 앞 민족시인 얀 마테이크동상

 

16세기에는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 3자 협정으로 폴란드라는 나라가 지구상에서 123년 간 사라지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폴란드 사람들은 타민족에 비해 다른 성격을 소유하게 되었다고 한다. 국민 95%가 로마 가톨릭 신자들이기 때문에 심성이 착하고 보수적으로 고지식하며 앞만 보고 외길로만 달려가는 성질이 있고, 나라의 어려움이 있을 때는 이기심을 버리고 똘똘 뭉쳐 나라를 되찾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이는 국민성을 가졌다. 그래서 123년 간 잃었던 나라도 되찾을 수 있었을까?

폴란드 정원에서 바라본 크라코프 바벨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