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의 여행

18.헝가리사람들의 문화

달리는 말(이재남) 2012. 11. 18. 15:45

헝가리사람들의 문화 

 

 부다페스트의 린츠다리의 야경 
                                                 

헝가리사람들의 문화

독일인과 미국인은 부자이기 때문에 대접을 받는다. 헝가리는 전통적으로 독일의 영향권 안에 있으며 독일의 문화와 기술적 유산은 지금도 사회 모든 분야에 배어있다. 기계 설비나 건축물도 독일식 원칙에 따라 디자인하고, 또 사고방식도 어느 정도는 독일식이다.
헝가리인은 서유럽 사회에 잘 보이려고 무진장 애를 쓴다. 그들에게「서구」라는 말은 「전문성」과 「안전성」 또는 「부자」 등과 같은 말이다. 그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으면, 어떻게 별로 크지도 않은 나라에서 8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바르토크, 리스트 같은 훌륭한 음악가들이 그렇게 많이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하다고만 말하면 된다.
작은 나라 사람들은 열등감을 갖기가 쉬운데 헝가리는 그렇지 않다. 마자르인은 자신이 위트가 넘치고 재능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다만 역사적으로 불운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헝가리인의 열정은 매우 감각적이다. 잘 차려 먹고, 포도주든 맥주든 소주든 가리지 않고 뿌리를 뽑는다. 카드놀이를 즐기고 바람기도 농후하다. 여름에는 일광욕을, 겨울에는 스키를 즐기고 싶어 한다. 떠들기를 좋아하는데 뜨거운 이슈면 금상첨화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도나우 강의 유람선 야경

헝가리 부다페스트 시내의 노천온천


미국인들은 경제 문제를 선호하지만 헝가리인은 정치적 논쟁을 좋아한다. 정치 못지않게 좋아하는 것이 가십이다. 다른 사람에 대해 시시콜콜 알려고 하고, 한술 더 떠서 소문을 퍼뜨리는 것도 좋아한다.  헝가리인은 남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모르고 있으면 비참해진다. 만물박사 기질은 참견 쟁이 기질과 친사촌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 참견 쟁이 와는 달리 헝가리 참견 꾼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오직 말로만 참견한다.
그리고 정작 자기가 서둘러 처리할 수 있거나 처리해야 하는 일은 접어둔 채 쓸데없는 참견에만 바쁘다. 그런 의미에서 헝가리사람들은 이론적으로만 참견하기 좋아하는 좀 희귀한 족속이다. 헝가리에서는 시골 사람이나 시골출신 도시사람들은 집시음악을 즐겨 듣는다. 경쾌한 음악이나 느리고 슬픈 멜로디를 가리지 않고 생활에 지쳐 우울할 때 이런 노래를 들으면 그들은 눈물을 짠다. 포도주나 브랜디를 마신 다음이라면 거의 틀림없이 그렇게 한다.
물론 밝은 곡도 있다. 작은 도시와 마을에는 젊은이들이 집시 밴드를 동원해 사랑하는 이를 위해 세레나데를 연주하게 한다. 아이들은 부모와 조부모의 생일에 정성껏 시를 지어 낭송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밝은 쪽보다는 애절함에 가깝다. 헝가리인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부와 성공을 움켜잡으려는 열망이다. 부와 성공을 위해서라면 건강을 해치고 팔다리를 잃는 것도 불사한다. 그들은 가진 것은 보여줘야 한다는 철학을 철저히 신봉한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다리의 야경


나라 전체는 가난과 싸우고 있지만 상류층은 교외에 크고 화려한 빌라들을 세운다. 심지어 시골 농부들도 자기 집 난간을 그 마을에서 제일 으리으리하게 꾸미려고 경쟁한다. 부농들은 건축업자를 불러다 오스트리아 별장처럼 생긴 집을 짓는다.  부를 과시하는 방법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가족묘를 크고 호화롭게 꾸미는 것이다. 또한 이 나라 사람들은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한다. 심지어는 죽어서 묻힐 자리도 어느 공동묘지 몇 번째 줄까지 따지고 문제 삼는다.
문화적 속물근성도 만만치 않다.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들먹이며 허세를 부리는 것은 예사다. 그 속물들은 유명한 휴양지에서 휴가를 보내고 오면 일 년 내내 자랑한다. 헝가리는 사망률이 출생률보다 높다.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말이다. 유럽에는 헝가리보다 작은 나라가 많다. 하지만 역사에서 숱한 상처를 입었고 약소국 콤플렉스를 가진 마자르족은 저 작고 가난한 나라와 비교하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겔레르트 언덕


빼앗긴 영토와 재산을 생각하면서 분을 터뜨리고 부자 나라들을 따라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고민하면서 바깥세상을 살핀다. 하지만 그런 정도 덩치로는 세계무대에서 힘을 쓸 수 없다는 가슴 아픈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지 헝가리 사람들은 작을 것을 싫어한다.
그런가하면 헝가리인 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파하는 종족이다. 남의 불행을 기뻐하고 남의 행복을 시기한다는 이야기다. 빼어난 업적을 이룬 사람은 찬사보다는 질투의 대상이 된다. 남의 성공을 의심스럽게 보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부자가 되면 사람들은 그가 무슨 도둑질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여자는 요리를 하고 음식을 차리지만 식탁에는 함께 앉지 않는다.

여행 엿새째 되는 날 아침이 밝아온다. 오늘도 6시가 채 안되어 잠자리에서 일어나 면도를 하는 등 오늘 일과를 준비했다. 7시쯤 필자부부는 호텔주변을 걸었다. 호텔 뒷골목은 쓰레기가 어지러울 정도로 널려있어 불결해 보였으며 건물마다 낙서가 많아서 몹시 더럽혀져 있었다.
대충 보면 이 도시는 어둡고 음울한 모습만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하나에 아름다움이 서려있고 정겨움이 느껴진다. 서유럽이 세련되고 럭셔리(luxury)한 모습이라면 동유럽은 클래식하면서도 고향의 맛을 더해주는 중세유럽풍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헝가리 다뉴브강변의 국회의사당


배꼽티를 입은 젊은이들에게서 어둡고 음울한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 나라 사람들은 공산치하에서 비밀경찰들의 등쌀에 말은 못하고 몰래 표현하는 방법 때문에 낙서하는 습관이 길들여졌다고 한다.  몰래하던 낙서습관이 지금도 이어져 거리는 온통 낙서뿐이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총탄의 흔적들이 건물 이곳저곳에 남아있는데도 국가 재정이 없어 보수를 못하고 그대로 방치해두어서 폭격을 맞은 건물이 볼 상 사납게 눈에 많이 뜨인다.
호텔 1층에 있는 레스토랑은 넓고 비교적 먹을 것이 많았다. 식빵 두 쪽 사이에 치즈를 넣어서 먹고, 오늘은 생과일이 많아서 복숭아와 바나나를 가져다 먹고 발효우유를 먹으니 배가 부른다. 좌석이 4자리인 한 테이블에 필자부부가 마주보고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앉아도 되겠냐는 시늉을 한다. 필자도 좋다는 시늉을 했다.
헝가리 여인으로 보이는 그 여자는 한 사람이 도저히 먹을 수 없는 많은 양의 음식을 접시에 담아왔다. 그리고는 준비된 가방 속에 음식을 담고, 또 가져와서 가방에 담는 일을 몇 차례 했다. 우리와 눈이 마주치면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아마도 그 여인은 레스토랑에 몰래 들어와 가족들을 위하여 음식을 가져가기 위한 행동이 아닌가 싶다. 필자부부는 그냥 지켜만 보다가 호텔 룸으로 돌아와 잠깐 동안 휴식을 취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겔레르트언덕에서 바라본 부다페스트


헝가리에서 남녀는 평등하다. 그런데 남자들은 여자들이 사회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여자는 가족의 쉼터를 가꾸고 남자의 시중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시에서 멀어질수록 이런 관념은 더욱 완고하다. 여자가 요리를 하고 음식을 차리지만 식탁에는 함께 앉으려고 하지 않는 가정도 적지 않다.

그렇지만 가족의 결속력은 강하다. 결혼을 한 뒤에도 일요일마다 부모 집으로 가서 점심을 함께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헝가리 가정에 초대를 받을 경우 몇 가지를 유념해야 한다. 무엇보다 술잔은 물론이요, 음식 접시도 깨끗하게 비워야 한다는 것이다. 음식을 거절하면 당장 무례한 사람으로 찍힌다.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겔레르트언덕에서 바라본 부다페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