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러시아여행

4.세계 정치 무대의 중심이었던 크렘린(2)

달리는 말(이재남) 2012. 11. 17. 08:14

세계 정치 무대의 중심이었던 크렘린(2)

 

러시아의 수도,「모스크바」

 

인구는 870만 명, 거의 1000만 명에 이른다. 러시아 전체 인구가 약 1억 4395만 4500명이니, 모스크바에만 러시아 인구의 6%가 살고 있는 셈이다. 나라 전체 인구의 약 21.5%가 살고 있는 서울보다는 덜하지만, 러시아 역시 도시 집중 현상이 심하다.

물가나 생활수준 역시 대도시와 농촌의 격차가 상당히 심한 듯 하다. 모스크바의 면적은 약 1000㎢에 이른다. 서울(606㎢)이나 부산(762㎢)보다도 넓고, 인천(980㎢)과 거의 맞먹는 넓이다. 모스크바가 러시아 제 1의 도시이다 보니, 임금이나 생활수준 역시 다른 도시들보다 높다. 따라서 러시아의 전체적인 경제 통계를 접하고 모스크바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다들 놀란다. 나 역시 뼈저리게 느꼈으니까.

한편 모스크바의 역사는 1156년 블라지미르-수즈달 공국의 공후로 있던 유리 돌고루끼(돌고루끼(「긴 손」이라는 의미)가 두 강이 면한 삼각형 지역에 목조의 크렘린(성채)을 세우게 되면서 시작된다. 기록에 의하면 유리 돌고루끼는 1147년에 끼예프의 공후에게 "형제여, 모스크바에 있는 나에게로 오라."고 말했는데, 이 시점을 시작으로 모스크바는 유리 돌고루끼에 의해 탄생한다.

 

 

모스크바 붉은 광장-크레믈린궁 쪽에 있는 레닌 묘 대리석 묘 안에 레닌 시신이 방부처리된 채 보관되어 있는데, 부패방지용 특수약품비가 매년 우리돈 2억 이상의 비용이 들어간다고 한다 지난 1924년 레닌이 54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스탈린이 민심결집을 위해 이 곳에 묘를 조성했는데, 지금도 매장하자는 의견이 분분하다고 한다

모스크바 붉은 광장-크레믈린궁

모스크바 붉은 광장-크레믈린궁 쪽에 있는 레닌 묘 대리석 묘 안에 레닌 시신이 방부처리된 채 보관되어 있는데, 부패방지용 특수약품비가 매년 우리돈 2억 이상의 비용이 들어간다고 한다 지난 1924년 레닌이 54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스탈린이 민심결집을 위해 이 곳에 묘를 조성했는데, 지금도 매장하자는 의견이 분분하다고 한다.


바로 이 크렘린을 중심으로 모스크바의 거리가 발달하고, 12~13세기에는 상업과 산업의 요지가 되었다. 13세기에는 신흥 공국의 수도가 되였지만 1237년부터 1293년에 이르기까지 타타르인들은 시시때때로 모스크바를 침략하여 약탈하고 불태웠다.

1240년부터 1480년까지 약 240년 동안 몽골은 러시아를 지배했다.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크렘린 주위에 돌로 벽을 세우고 대공의 궁전, 수도원, 행정기관건물, 귀족의 거처 등은 돌로 만든 벽의 안쪽으로 옮겼다. 14세기에 들어서 끼예프 공국은 모스크바 공국으로 합병되었고, 1326년에는 끼예프에 있던 러시아 정교의 대주교 자리 역시 모스크바로 옮겨졌다. 그 후 모스크바는 러시아의 수도로서 굳건히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페테르 1세에 의해 1710년에 수도는 페테르부르크로 옮겨지게 된다. 모스크바는 약 200년간 수도를 빼앗겼으나, 10월 사회주의 혁명의 성공으로 레닌이 권력을 거머쥐게 되고, 수도는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온다. 지금 이러한 역사적인 도시 위에 내가 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 눈앞에는 모스크바의 상징, 크렘린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크렘린 궁은 모스크바의 심장부, 러시아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곳으로 러시아어로 요새를 의미한다. 크렘린궁 안에는 15세기의 장대한 교회에서부터 현대적인 의회까지 다양한 건물이 있다.

 

세계 정치 무대의 중심이었던 크렘린(2)

 

그런데 최초로 모스크바를 화살과녁형식으로 도시를 설계한 것은 1146년경이었으나 오늘날과 같은 모스크바를 형성하게된 것은 1950년경이었다. 그러나 그때로부터는 크게 변화된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그 화살과녁 형 도시인 모스크바의 만점(10점)에 속하는 곳이 바로 크렘린 궁과 붉은 광장이라고 한다. 대 크렘린궁전을 비롯하여 크렘린의 망루, 1961년에 완성된 대회궁전, 페테르 대제 때 만들어진 바로크양식의 궁전병기고, 원로원 등이 있었다. 삼위일체 망루 또는 크렘린의 망루라고 불리는 망루가 우뚝 서 있다.

 

모스크바 크레믈린궁 내부-광장에 전시된 황제의 대포, 1586년 안드로이 체홉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실전용이 아닌 황제의 위엄 과시용이라 한다 길이 5.3m, 구경 890mm로 엄청난 크기이다.


우리 일행은 여기를 통과해 크렘린에 입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 망루는 1495~99년에 알레비시오 프라지네에 의해 건립되었다고 한다. 「삼위일체」라고 불리는 것은, 크렘린을 위에서 볼 경우에 삼각형으로 생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탑의 높이는 80m로, 20여 개의 탑 중에서 가장 높다. 16~17세기에 지하는 감옥으로 쓰였던 과거를 지니고 있다. 나폴레옹 전쟁 때 나폴레옹이 이 곳으로 입성을 한 아픈 추억을 가지고 있으며, 맨 위에 있는 별은 지름이 3.75m이며, 1500kg으로 금도금을 하여 강한 눈보라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되었다. 한편 크렘린 궁에는 875기의 대포가 놓여져 있었다. 그 대포는 1812년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략했을 때 가지고 와서 퇴각할 때 놓고 달아난 프랑스제 대포란다.

 

붉은광장의 굼백화점

 

 

황제의 대포와 황제의 종, 12사도사원, 우스펜스키사원, 블라고베시첸스키사원, 아르항게리스키사원

 

그리고 1570년에 만들어져 한번도 쏘아보지 못했다는 대포의 왕인 왕대포, 1735년에 206톤의 철로 만들었다는 세계에서 가장 큰 종인 황제의 종이 있다. 황제의 대포와 황제의 종은 관광객들이 반드시 보아야 하는 명물이다. 황제의 대포는 안드레이 초호프에 의해 주조되었는데, 세계에서 가장 큰 대포라고 한다. 구경 890m, 중량은 무려 40톤, 하지만 한 번도 발사된 적이 없다고 하고, 앞에는 포탄이 놓여져 있는데 장식용이라고 한다.

황제의 종 역시 세계 최대라고 한다. 이반 마트린과 미하일 부자의 작품이라고 한다. 직경 6.6m, 높이 6.14m, 무게는 무려 206톤. 미완성으로 종의 주조 중 큰 화재가 났는데 누군가가 종의 일부분에 물을 부어서 종의 일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모스크바 크레믈린궁 내부-차르 대종 (황제의 종),무게 201톤, 높이와 직경 약 6m로 세계에서 가장 큰 청동종이다 1737년 종을 주조하던 중 화재로 찬물을 붓는 바람에 12톤 크기의 조각이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종은 파손된 그대로 1836년 지금의 자리에 설치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지금까지 이 종소리를 들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는 셈이다. 황제의 대포와 역사가 유사하다. 그런데 떨어져 나간 종의 일부분은 아주 반들반들하다 못해 금빛이 되어버렸다.

관광객들이 모두 이 조각을 만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역시 슬그머니 손을 뻗어 여러 번 문질러보았다.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12사도사원, 우스펜스키사원, 황제의 개인 예배사원이었던 블라고베시첸스키 사원, 아르항게리스키 사원 등 셀 수 없는 많은 건물들과 보물들이 그곳에 있다.

 

모스크바의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


그 많은 건물과 보물들에 대한 설명도 듣고, 사진촬영도 하면서 구경을 했다. 크렘린 궁, 일찍이 크고 둥근 지붕 위에 꽂혀 있던 붉은 깃발은 소련의 상징인 동시에 모든 사회주의 국가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좋든 나쁘던 한때 세계정치는 이곳 크렘린과 미국의 백악관에 모여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곳은 레닌. 스탈린. 후르시쵸프. 그리고 부레즈네프와 고르바쵸프가 공산당 서기장으로 활동했던 곳이고, 현재 옐친에 이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나온 역사를 돌이켜 본다면 권력을 갈망하던 거친 호흡들이 그대로 전해 내려오는 곳이기도 하다. 공산정권이 1991년 8월 무너지고 비밀문서들이 공개되었을 때의 일인데, 러시아 국민들은 소비에트 군대가 정말로 서유럽 침공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너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또한 소련이라는 대국의 정점으로서의 면모가 크렘린의 일면이라면 러시아 문화 최고의 정수가 모여 있는 곳이라는 점도 크렘린의 또 다른 면모라고 할 수 있겠다. 그곳 크렘린궁의 관광을 마치고 울리챠코쉬기나 15번지에 위치한 로얄훼밀리 레스토랑에서 정통 유럽식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크렘린궁의 아르항게리스키 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