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일주 여행 51

(6)-투트모스 3세를 몰아내고 스스로 파라오 자리에 오른 하트셉수트.

투트모스 3세를 몰아내고 스스로 파라오 자리에 오른 하트셉수트. 그런데 그 남편이 일찍 죽자 이번에는 투트모스 2세와 첩 사이에서 난 자식인 투트모스 3세와 결혼을 한다. 그러나 하트셉수트는 어린 남편이자 아들과 같던 투트모스 3세를 몰아내고 궁중 쿠데타를 일으켜 스스로 파라오 자리에 올랐다가 후일 투트모스 3세에게 쫓겨나 죽게 되는 비운의 여자다. 우리일행이 하트셉수트 장제전의 입장권을 받아들고 올라가니 성채의 그늘에 등을 기대고 앉아있던 이집트관리가 천천히 일어나 걸어 나온다. 아랍인들의 빛바랜 전통복장, 하늘색 갈라비아의 목주변이 더럽혀진 것을 보면서, 이집트의 관리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는 듯하다. 하투셉수트 장제전은 하투셉수트 여왕이 건축한 유일한 신전으로 다이르알바리 석회암 절벽 바로 아래에 ..

(5)-투탕카멘의 무덤 덕분에 고대 이집트 신왕국시대의 비밀이 어느 정도 벗겨졌다.

투탕카멘의 무덤 덕분에 고대 이집트 신왕국시대의 비밀이 어느 정도 벗겨졌다. 20세기에 발견된 투탕카멘 왕의 무덤 덕분에 고대 이집트 신왕국시대의 비밀이 어느 정도 벗겨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위한 지 9년 만에 요절한 덕분에 그의 무덤 규모는 다른 왕들보다 작은 40m의 정도의 깊이였고 그래서 도굴꾼들의 주목을 피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다른 왕의 무덤을 도굴할 때 파내느라고 쌓아올린 흙 때문에 그의 무덤 입구가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집트인들뿐만이 아니라 세계 고고학, 인류학, 이집트 학자들은 투탕카멘의 손상되지 않은 무덤 발굴을 두고 「운명」이라고 말한다. 투트모스 3세의 무덤을 구경하고 나온 일행들은 이번에는 람세스 4세의 무덤을 찾아갔다. 이집트의 기후는 햇볕이 드는 곳에는 덥고 그늘에..

(4)-룩소르의 나일강 서쪽에 위치한 왕가의 계곡

룩소르의 나일강 서쪽에 위치한 왕가의 계곡 이집트의 음식문화 이집트는 무려 국토의 97%가 사막이기 때문에 건조한 기후로 식물이 자라기 힘들고, 대부분의 농업이 나일강에 의존해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정해진 곡식만을 수확할 수 있다. 이 나라 사람들이 이용하는 대부분의 곡식이 밀과 보리로 주식은 주로 빵이다. 첨가물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밀가루 반죽을 둥글넓적하게 만들어 화덕에서 구워낸 것을 곧바로 식탁에 올린다. 소금이나 설탕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관계로 담백하며, 금방 구워낸 「아에시」라 불리는 이 빵은 쫄깃하고 고소하다. 이 빵의 크기는 호떡보다 조금 더 크고, 내부는 비어 있어 이중으로 된 누런색의 거친 빵이다. 빵을 소스에 찍어먹거나, 빵 사이에 여러 가지 야채나 고기를 넣어 먹기도 한다. 소스는..

(3)-고대문명을 꽃피운 이집트의 룩소르

고대문명을 꽃피운 이집트의 룩소르 상해공항부터는 긴 시간동안 비행해야 하므로 아내가 누워서 쉴 수 있도록 다른 좌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카타르항공사는 우리나라 여승무원을 여러 명 탑승시켰으므로 우리 같은 한국인 승객에게는 커뮤니케이션에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렇잖아도 카타르항공은 서비스가 매우 좋게 느끼어 온다. 인천공항에서 도하공항까지 비행기가 나르는 시간은 12시간인데 무려 세 번이나 기내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기내식 외에도 비행할 때 필요한 칫솔, 치약, 눈가리개, 양말 등을 제공할 뿐만이 아니라 좌석마다 모니터가 설치돼 있어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골라 들을 수 있도록 설치돼있어 편리하다. 그러나 그 편리한 시설을 활용하면 꼴딱 밤을 지세우고 내일의 일정을 어렵게 만들겠기에 애써 잠을 자두려..

(1)고대문명의 발상지, 이집트를 향하여

고대문명의 발상지, 이집트를 향하여 축복의 땅 이집트를 여행하고 여행의 뜻 먼 곳으로 가고 싶을 때가 있다. 혼자 혹은 이웃과 함께. 여행은 어디로 가는 것이라고 해도 좋지만 사실은 어디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해도 된다. 여행은 나로부터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무수한 삶을 찾아 헤매는 절실함으로 내 안으로 들어가면서 사색하는 행위일 터이다. 여행의 목적지가 다르다고 해도 되돌아오는 곳은 같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여행은 자기 자신을 기억하는 행위이다. 『안치운의 「그리움으로 걷는 옛길」중에서』 머나먼 이집트의 여행을 떠나면서 역맛살이 낀 사람은 과거의 여행 이야기를 하면서도 새로운 여행지를 생각한다. 궁금하면 가보는 수밖에 없다. 똑 같은 것을 봐도 모두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본다. ..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인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세계적으로 유명한 3대 피라미드 세계적으로 유명한 3대 피라미드 세계적으로 유명한 3대 피라미드 세계적으로 유명한 3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세계적으로 유명한 3대 피라미드 고대 유물들이 말해주듯이 나일강 상류에는 약 60,000년 전부터 인류가 살고 있었고, 고고학적 발견들은 기원전 3300년에 이미 전제정치와 종교문화가 출현했음을 보여준다. 그 이후로 나일 삼각주의 하 이집트와 상류지방인 상 이집트를, 상 이집트의 메네스, 즉, 첫 번째 파라오가 통일시켰다. 초기 이집트인들은 절대적 통치자인 파라오의 지배 하에 살았는데, 파라오는 신적인 존재였으며, 오직 파라오의 책임 하에 사람들은 종교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다. 이집트 문화의 첫 전성기는 고대 왕국시기(기원전 2755~2255)라 할 수 있는데, 이..

고대 이집트 제19왕조의 람세스 2세가 건립한 신전, 아부심벨

람세스 2세가 건립한 신전, 아부심벨 람세스 2세가 건립한 신전, 아부심벨 람세스 2세가 건립한 신전, 아부심벨 람세스 2세가 건립한 신전, 아부심벨 람세스 2세가 건립한 신전, 아부심벨 아스완 댐은 1902년 완공되었을 때 세계에서 가장 큰 댐이었다. 이시스 신전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기의 것으로 현재는 아질키아 성에 위치하고 있지만 원래는 필라에 섬에 자리 잡고 있었다. 1898∼1912년에 영국인들에 의해 아스완댐이 건설된 이후 필라에 섬은 8월부터 12월까지는 완전히 수몰되게 되었다. 좀 더 완벽한 홍수통제를 위해 1971년에 완공된 아스완하이댐은 이 섬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따라서 1960년대 후반에 이 신전은 다른 섬으로 이전을 하였는데, 지금도 여전히 필레 사원이라고 부르고 있다. 나세르 ..

고대문명을 꽃피운 이집트의 룩소르의 카르나크신전

룩소르의 카르나크신전 룩소르의 카르나크신전 룩소르의 카르나크신전 룩소르의 카르나크신전 룩소르의 카르나크신전 이날의 일정 가운데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룩소르신전이다. 고대 테베에서는 많은 제전이 있었는데, 룩소르에 있는 룩소르 신전도 이러한 제전을 치르는 가장 중요한 사원 중의 하나다. 원래 이곳은 카르나크 신전의 부속 신전으로 건립되었으나 대부분은 아멘호텝 3세와 람세스 2세에 의해 세워졌고, 이 사원은 그러한 제전의식을 준비하는 적당한 공간이었다. 이러한 제전은 통치자이자 신성한 존재인 파라오와 백성들과의 친목도모에 목적이 있었다. 제18왕조에 이르러 이러한 제전은 11일간 지속되었고, 제20 왕조의 람세스 3세에 이르러서는 27일간이나 치러진다. 그 시기에 제전은 11,000 조각의 빵과 85개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