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여행

스, 포, 모를 다녀와서(6)

달리는 말(이재남) 2006. 6. 23. 18:38

                     
파티마에서 하늘의 여왕의 발현이 있은 이래로, 수없이 많은 책, 팸플릿, 녹음, 필름, 그리고 비디오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져서, 신앙과 신심의 전 세계적인 성장에 한 몫을 다하였다. (see Our Lady's Book Service).

파티마 발현에 대한 믿음과 성모님의 전 메시지는 현재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정통적인 교의, 의식, 그리고 전통적 행위나 가르침에 널리 일치한다. 많은 신학자들은 성모님의 메시지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어렵고 힘든 시기를 위해서 계획되었으며, 그리고 세상을 전쟁, 기아, 난국으로부터 구하고, 가톨릭교회를 배교와 혼동으로부터 구하며, 수많은 영혼들을 영원한 파멸로부터 구하는 것이 바로 하늘의 중재에 의한 것임을 암시한다고 믿고 있다.

 

포르투갈의 파티마 대성당

포르투갈의 파티마 대성당

 

파티마 메시지는 죄와 불순종에 대해서는 무서운 징벌로서 엄격히 경고하는 한편, 가톨릭 신자들과 선한 의지를 지닌 다른 모든 이들을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생명을 주고 믿음을 키워주는 희망과 평화의 메시지이다. 위의 설명은 우리일행이 버스를 타고 파티마까지 오는 동안 가이드로부터 들은 내용들이다. 파티마의 대성당은 어마어마하게 넓고 큰 성당이다.

성당주변에는 수많은 성물가계가 있었으며 아직도 공사 중인 성물가계가 많다. 대성당주변을 살펴보고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그곳에서도 미사 중이었고, 때마침 영성체를 진행하고 있다. 잠깐 동안 맨 뒤에 서서 미사진행과정을 지켜보면서 캠코더로 녹화를 하고 나오려는데, 대성당 건물은 아직도 공사 중임을 알 수 있었다.

 

포르투갈 파티마대성당의 성물가게

포르투갈 파티마대성당의 성물가게

 

밖으로 나와서도 한참이나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구경을 하고, 12시 10분에 전용버스에 올라타 좌석에 앉으니 목이 마려온다. 다른 유럽국가 들처럼 수돗물 대신 미네랄워터를 사 마시는 것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유럽여행에서 터득한바 있다. 그래서 여행출발 전에 1리터짜리 몇 개의 물병과 작은 물병 등 충분한 미네랄워터를 준비해온 덕택에 그 물을 마실 수 있다.

우리일행을 싣고 버스는 약 2시간을 달려 리스본으로 귀환했다. 리스본은 포르투갈의 수도로 포르투갈어로는 리스보아(Lisboa)라고 한다. BC 12세기에 페니키아 인들이 건설했고, 그 후 그리스인, 카르타고인, 로마인, 서고트 족, 이슬람교도 등이 번갈아 이 도시를 장악하고 지배해왔다.

 

포르투갈의 파티마대성당,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가톨릭 성전인 성삼위 성당

 

포르투갈의 파티마대성당,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가톨릭 성전인 성삼위 성당


그 뒤 알폰스 3세가 국토회복을 완료하고, 1243년 리스본을 수도로 정한 뒤 대(大)항해시대의 포르투갈 전성기가 이 리스본을 중심으로 꽃을 피우게 된다. 또한 포르투갈 최대의 도시이며, 유럽대륙 대서양 연안 굴지의 좋은 항구이기도 하다. 일찍이 페니키아·그리스·카르타고 시대부터 항구도시로서 알려져 왔으며, BC 205년에는 로마의 지배 하에 들어갔다.

714년 이래 다시 이슬람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리사보나로 불리다가, 1147년 알폰소 1세에 의해 해방되었다. 1255년 코임브라로부터 천도한 뒤 수도로서 현재까지 이르렀으며, 15∼16세기 해외진출시대에는 유럽 유수의 상공업 도시가 되었다. 1755년의 지진과 그에 따른 화재·해일로 시가지의 2/3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그 이전의 역사적인 건조물은 그리 많지 않다.

                 

리스본의 우리가 머문 호텔에서 바라본 해안가   

리스본의 우리가 머문 호텔에서 바라본 해안가   

 리스본의 우리가 머문 호텔에서 바라본 해안가                  

                                                                 

그러나 동부의 알파마 지구에는 성(聖)조지성(城)이, 서부의 벨렘 지구에는 본래 성채였던 벨렘의 탑, 바스코 다 가마를 기념한 고딕양식의 수도원 및 아주다 궁전(현재의 외무성)·박물관 등 역사적인 건축물이 남아 있고, 1290년에 창립된 대학이 있다.

시가지는 3개 부분으로 나뉜다. 중앙부는 바이샤라고 부르는 저습지로 거의 전 지역이 지진 후에 재건되어 상업·행정기관이 이곳에 집중한다. 동부는 본래 페니키아인·로마인의 거리였던 옛 시가지, 서부는 신시가지이고 또 최근의 시가지 확장은 북부로 펼쳐 나가고 있다. 독·부두 등 항만시설은 타호강 우안을 따라 30km에 걸치고, 그 북동부에 곡물·냉장창고 및 시멘트·정유·철강·코르크제품 등 공장이 자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