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터키 여행

그리스와 터키를 다녀와서(25)-이스탄불 성 소피아성당

달리는 말(이재남) 2005. 9. 3. 07:24

-이스탄불 탁심광장에서의 한가로움- 

 

분위기가 좋지 않게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감지하고 민병렬씨와 필자가 내려가 사과를 하는 것이 도리라고 충고를 하게 됐고, 곧 이어 올라온 그녀는 본인의 잘못으로 인하여 식사가 늦어져서 죄송하다는 사과를 하게 됐다. 어떻든 저녁식사를 하게 됐고 호텔에 들어가니 10시가 다 돼가고 있었다. 그런데 더욱 황당한 일이 또 발생했다. 이 날은 일행 40명 가운데 우리부부를 포함하여 9명만이 다른 호텔을 사용하게 됐다. 더더욱 황당한 일은 9명만이 옮겨간 그 호텔에서 벌어졌다.
홍순규씨 부부가 호텔로비에서 받은 열쇠로 방문을 아무리 열어도 열리지 않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문을 두드려봤더니 외국인이 잠옷 바람으로 문을 열어주더라는 것이다. 얼마나 당황했던지 기절할 뻔했단다. 호텔 측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일어나서는 안 될 웃지 못 할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 호텔이 바로 Centrum Hotel이었는데, 우리부부는 이 사실을 듣지 못하고 408호실에 들어 편안하고 안락한 하룻밤을 보냈다.

 

터키의 음식, 시시케밥                                              

터키의 음식, 아다나 케밥


2005년 6월 7일에는 5시 반에 모닝콜이 있었다. 잠이 깨어지지 않아 조금 더 누웠다가 준비를 했다. 옆 호텔의 레스토랑으로 식사를 하려고 들어갔는데 일행들이 이미 식사를 하고 있었다. 먹을만한 마땅한 음식이 별로 없었으나 간식거리가 필요할 것 같아 터키에서는 흔하고 값이 싼 바게트 빵 그리고 꿀과 찐 계란을 휴대용 가방에 넣어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7시 반에는 전용버스에 짐을 싣고 출발하였다.

 

터키의 음식, 키레밋 케밥

 


성 소피아사원은 우리가 다소 무섭고 과격하게만 여기고 있는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본래 그리스정교의 본산지로 만들어진 성 소피아성당은 15세기 오스만튀르크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후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하다가 현재에는 박물관으로 남아있다.
이슬람 사원을 박물관으로 개조하면서 벽면의 회칠을 벗겨내자 5백년 이상 소리 없이 숨어있던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로 된 수많은 성화가 세상에 드러났다. 성 소피아성당은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360년에 완성된 그리스정교회의 총 본산이었다.
몇 차례 재건을 거친 성 소피아는 오스만제국의 치하에서는 500년 동안 이슬람사원으로 사용되었고, 제국이 멸망한 후 1933년에는 박물관으로 지정되어 오늘날에 이르게 된다.

 

이스탄불 성 소피아성당

이스탄불 성 소피아성당


이것은 당시 오스만제국이 비잔틴의 첫 황금기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벽화를 파괴하지 않고 단지 그들의 이슬람 사원으로 쓰기 위해 자신들의 문양만 덧입혀 놓았기 때문이다. 바로 이슬람의 관용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이렇듯 성 소피아사원은 하나님과 알라가 공존하고 있는 종교를 뛰어넘는 위대한 장소인 것이다.
특히 천 오 백년이란 세월의 흐름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너무도 당당하게 서 있는 성 소피아성당은 특별히 받치는 기둥 하나 없이 직경 33미터의 돔이 유연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음과 당시 뛰어난 기술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그러니까 이스탄불은 한 민족과 문명이 다른 민족과 문명을 만나 어떻게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마치 하나의 교훈처럼 들려주고 있다고 할까? 그 극단적인 실례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세계 8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성 소피아성당이라니 또한 놀랍기만 하다.

 

이스탄불 성 소피아성당

이스탄불 성 소피아성당


비잔틴시대의 성 소피아성당은 아마 그리스정교와 이슬람이 공존하는 역사의 현장으로서 이만한 규모와 예술성을 자랑하는 곳도 없을 것이다. 이스탄불에 와서 성 소피아성당 한곳만 보고 돌아간 데도 별로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것은 진정 감동의 건축이다.
그렇다면 오늘날까지 성 소피아가 남아있을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오스만제국이 이끄는 이슬람은 정복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약간의 약탈을 감행했지만 콘스탄티노플 즉 이스탄불만은 제외시켰다. 실제로 비잔틴시대의 성당과 궁전내부의 화려한 성화를 파괴한 장본인은 오히려 십자군 원정군들이었다. 그러니까 성화들은 이슬람교도에 의해서가 아닌 기독교도의 우상파괴운동에 힘입어(?) 무참히 파괴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