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에 반기 든 하버드...그들이 겁먹지 않은 진짜 이유


우리에게 익숙한 우화가 있다. 양치기 소년이 거짓으로 "늑대가 왔다"고 외치자 처음엔 모두가 달려왔다. 그러나 같은 외침이 반복되자 사람들은 점점 반응하지 않았다. 결국 진짜 늑대가 나타났을 땐, 아무도 오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바로 이 양치기 소년 같은 처지가 되어 가고 있다. 그는 상대에게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던지고, 거부하면 보복하며, 그 전 과정을 공개적으로 연출한다. 이른바 '치킨 게임'이다. 이 게임은 겁을 먹고 먼저 물러서는 쪽이 진다. 그래서 더 미친 척, 위협의 강도를 높여서 상대방을 심리적으로 굴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트럼프는 1기 때 이런 방식으로 어느 정도 효과를 봤다. 하지만 2기 들어선 위협이 자의적으로 남발되면서 그 효과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반복된 압박은 예측 가능한 '수순'이 됐고, 일종의 '위협 인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했다. 이제 누구도 겁먹지 않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상대가 겁을 먹지 않으면 트럼프식 '치킨 게임'은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하버드대학은 트럼프 정부의 압력을 전면 거부했고, 연방준비제도(Fed, 연준)도 금리 인하 압박에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있다. 중국이 245% 관세 압박에도 굴복하지 않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일이다. 트럼프는 여전히 늑대를 외치고 있지만, 이제 아무도 그 소리에 달려오지 않는다.
하버드, 트럼프의 치킨 게임을 거부하다
트럼프 2기 정부는 취임 직후부터 하버드 등 미국 주요 대학들을 정조준했다. 명분은 '반유대주의 척결'이었다.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캠퍼스 내에서 벌어진 친팔레스타인 시위를 문제 삼으며, 유대인 학생 보호 실패를 이유로 대학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지난 11일, 트럼프 정부는 하버드에 9가지 조건을 통보했다. 다양성·형평성·포용(DEI) 프로그램의 전면 폐지, 입시·채용에서 인종과 성별 고려 금지, 시위 학생 징계, 마스크 착용 금지, 외국인 학생의 정치 성향 검증, 학과별 외부 감사 등 대학 운영의 핵심을 정부가 직접 통제하겠다는 요구였다. 하버드로서는, 아니 어느 대학도 쉽게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일부러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을 제시한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는 지난 1일 백악관에서 "하버드에 90억 달러를 아예 주지 않으면 멋지지 않겠냐"며 즉흥적으로 자금 동결을 제안했다. 하버드에 9개 요구조건을 통보하기도 전이다. 애초부터 하버드의 굴복을 위한 제안이었던 것이다.
하버드가 조건을 거부하자, 트럼프는 즉각 22억 6천만 달러(약 3조 원) 규모의 연구비와 계약을 동결했다. 하버드를 "반유대주의를 방치한 정치 조직"이라 규정하며, 기부금 세금 감면 혜택까지 박탈하겠다고 나섰다. 지지층에게는 국민 세금을 받으면서 정부의 감독을 받지 않으려는 기득권 좌파 세력으로 매도한다.만약 하버드가 단 하나의 조건이라도 수용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 순간 트럼프는 이를 빌미로 더 큰 요구를 했을 것이다. 요구의 내용이나 맥락은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상대가 물러섰다는 사실이다. 양보하는 그 순간부터 협상은 끝이 아니라 더 큰 요구의 출발점이 된다. 지난 3월, 컬럼비아대는 4억불 연방 자금 동결 압박에 일부 요구(예컨대 마스크 착용 금지, 중동·아프리카학과 감독 강화)를 받아들였다. 트럼프 측은 이를 "우리가 이겼다"고 선언하며 정치적 성과로 포장했다. 하지만 연방 자금은 여전히 동결 상태다. 자금 복원을 협상 종료가 아닌 지속적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흐름은 어디서 많이 본 패턴이다. 트럼프는 지난 2일, 전 세계를 상대로 한 보편 관세 10%에 더해 '상호관세'라는 이름으로 중국, 유럽, 한국 등 동맹국과 경쟁국 57개 나라에 고율 관세를 발표했다. 그 관세율 공식이란 것도 미국의 국가별 무역 적자를 해당 국가로부터의 총수입액으로 나누어서 산출한 것이었다. 납득 불가능한 계산법이다. 무조건 높은 관세율을 매겨 상대를 압박하기 위한 꼼수였다.
이렇게 처음부터 수용 불가능한 조건을 던지고, 거부하면 "미국을 속이는 자들"이라 몰아붙이고 있다. 이후 일부 양보가 이뤄지면 "우리가 이겼다"고 선언하며 정치적 쇼를 연출한다. 현실 개선은 실제 관심사가 아니다, 그렇게 포장되고 있을 뿐. 그 보다는 무역 갈등을 극대화해 오히려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트럼프식 치킨 게임에선 양보가 곧 패배다. 이 점을 간파한 하버드는 단 하나의 조건도 받아들이지 않으며 단호하게 맞섰다. 총장은 "정치적 이유로 입시나 채용을 결정할 수 없다"라며 헌법적 권리 침해를 이유로 미국대학교수협의회(AAUP)와 함께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교수, 학생, 동문이 강한 지지로 결집했다. 프린스턴, 브라운 등 다른 대학들도 연대에 동참했다.
이 사건은 단지 한 대학의 반발이 아니다. 하버드가 갖는 상징성도 크지만, 트럼프식 정치 전략이 미국 내부의 제도적 저항에 부딪히기 시작했다는 분명한 신호다. 미국의 민주주의 회복력에 보내는 긍정적인 신호이기도 하다.
연준도 흔들리지 않았다

지난 17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항상 늦고 틀린다"며 "그의 해임은 아무리 빨라도 충분하지 않다"고 공개 비난했다. 하루 전, 파월이 시카고 경제클럽 연설에서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인플레이션과 경기 둔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금리 인하를 거부한 데 대한 반발이었다.
트럼프는 사실 지속적으로 파월을 비판해 왔다. 2018년 파월을 직접 임명하고도, 2019년 미중 무역전쟁 당시 금리 인하를 거부한 그를 "미국의 적"이라 비난한 전례가 있다. 이번에도 같은 방식이다. 다만, 그 강도가 더욱 강해졌다.
이번엔 아예 1935년 '험프리 집행자 판례'를 뒤집어 대통령이 연준 의장 포함 독립기관장을 임의로 해임할 수 있도록 권한을 확대하려는 대법원 소송도 진행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대통령이 금리 결정 체계 자체를 장악하려는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파월과 연준은 흔들리지 않고 있다. 파월은 "연준은 정치가 아니라 데이터에 따라 움직인다"고 단언했고, 이사회도 독립성 수호 입장을 재확인했다. 파월은 2026년 5월까지 임기를 채울 뜻을 밝혔다. 이는 1970년대 고인플레이션 이후 연준이 지켜온 원칙을 그대로 이어가는 행보다.
시장 반응도 차분했다. 파월의 연설 직후 주가는 일시 하락했지만, 이는 관세 정책에 대한 우려와 금리 인하 거부가 겹친 영향이었다. 국채 수익률과 금리 선물은 안정세를 유지했다. 시장이 여전히 연준을 신뢰하고, 트럼프의 파월 해임 위협을 정치적 소음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만약 트럼프가 파월을 해임하거나 연준의 독립성이 흔들리면, 시장 붕괴는 불 보듯 뻔하다. 실질 시장 금리는 급격히 치솟을 것이고, 주식 및 채권 투매, 달러 추락은 더 가속화될 것이다. 금리 그 자체보다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먼저 무너져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파월을 쉽게 해임할 수 없고, 온갖 압박에도 불구하고 연준이 버티는 이유다.
흔들리지 않는 원칙이 해답이다

트럼프의 '치킨 게임' 전략은 2기에 들어 더 거칠어졌다. 대학, 연준, 언론, 연방정부 등 국내 전 영역을 아우르고, 전 세계가 관세 보복의 대상이 되었다. 트럼프의 위협 행위도 더 자주, 더 강하게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위협이 남발되면서 이제 누구도 겁먹지 않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취임 100일도 되지 않아 미국 사회 전반에는 트럼프 피로감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 피로감이 조직적 반발로 결집되는 양상이다. 시장의 추락에 이어 지지율도 10% 이상 추락 중이다. 하버드와 연준의 대응은 그 단면을 보여준다.
이런 흐름은 한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치킨 게임은 상대가 두려워할 때만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트럼프의 극단적 요구는 바로 그 공포를 유도하기 위한 장치다. 때로는 무대응이 최선의 전략일 수 있다. 지금이 그런 시기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은 대행체제라는 좋은 변명거리도 있다. 원칙을 지키며 중심을 잡으면 결국 승기를 잡는다. 기다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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