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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때 독립지지..美여성 첫 노벨문학상 펄 벅의‘한국 사랑’

달리는 말(이재남) 2024. 10. 15. 07:06

일제 때 독립지지..여성 첫 노벨문학상 펄 벅의한국 사랑  -허백윤기자 2024. 10. 14. 05:02-

 

소설 대지쓴 작가 펄 벅. 1937자치해야신문 기고

돌아가 강연·포럼 열어 소개.‘살아있는 갈대서 항일 투쟁 등 기록

“35번째 민족대표, 한국학 주창자

 

소설 대지로 유명한 작가 펄 벅은 여러 기고와 저서, 강연 등을 통해 한국의 독립 의지를 널리 알렸다. 소설가 한강이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국 문학의 저력을 세계에 알렸다. 1938년 미국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펄 벅(1892~ 1973)은 한국의 독립 필요성을 세계에 알렸다. 우리에게는 소설 대지’(1932)의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일제강점기 한국의 독립운동에 깊은 관심을 갖고 지지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이에 펄 벅의 역할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펄 벅의 한국 방문은 196011월이 처음이었지만 그는 이미 1920년대부터 식민 지배에 놓여 있던 한국의 상황을 이해했고, 글과 연설로 한국 독립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선교사 부모를 따라 중국에서 성장한 펄 벅은 전장(鎭江) 충시여중에서 공부했고, 이 학교 교사로 일했다. 이때 가르친 한국 학생들에게 많은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학생 중에는 중국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 연미당(1908~1981·애국장)도 있었다.

- 美여성 첫 노벨문학상 펄 벅 -

 

펄 벅은 자서전 나의 몇몇 세계들에서 1920년대 난징대에서 영문학 강의를 하며 만난 한국 학생들에 대해 그들은 부모로부터 항일정신을 이어받았고 그것이 오늘의 한국을 있게 한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전장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료관에는 펄 벅이 1937815일자 중국 신문에 한국은 응당 자치해야 한다는 제목으로 기고한 자료도 전시돼 있다.

미국으로 돌아간 펄 벅은 1940년대 미국 사회에 한국의 상황을 자세히 알렸다. 1941년 동서협회를 조직해 19422한국을 알자는 강연과 한국인의 밤행사, 5이 위기 속의 한국포럼 등에서 한국을 소개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41일본의 군사적 야망이 주변국들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 내용의 일본 내막기’(Japan Inside Out)를 발표하자 펄 벅은 자신이 편집인으로 있던 잡지 아시아’(Asia)에서 이 책의 내용이 진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너무 진실인 것이 두렵다고 썼다.  

그는 19442우리의 잊혀진 우방 한국의 2500이라는 주제로 강연하며 제가 알고 있는 한국인들은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다”, “한국은 그렇게 작은 나라가 아니다라고 알렸다. 이어 한국인들은 일본이 패망할 때 즉시 자유를 얻길 원하고 있다한국인은 자신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펄 벅은 1963년 역사소설 살아있는 갈대를 펴냈다. 19세기 말부터 해방 이후까지 한 양반 가족의 4대 이야기를 다룬 것으로, 갑신정변과 명성황후 시해사건, 경술국치, 3·1운동과 의열단, 만주 항일투쟁 등에 대해 자세히 기록했다. 주인공 김일한은 펄 벅과 가까이 지낸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1894~1971·독립장)을 모티브로 했다. 당시 영미 언론에선 대지이후 최고의 걸작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그는 소설 서문에 한국은 고상한 민족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라고 했다.

김도형 전 독립기념관 수석연구원은 13펄 벅 가족이 1932년 임시정부가 전장으로 피난을 갈 때 도와줬다는 이야기도 있다한국의 독립운동에 지지를 아끼지 않았지만 정작 관련 자료가 많지 않아 알려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국펄벅연구회를 이끄는 최종고 서울대 명예교수는 펄 벅은 3·1운동의 실상과 일제의 참상을 알린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1889~1970·독립장)로부터 한국의 상황을 자세히 들었고 이광수, 김산(실명 장지락)과도 교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스코필드를 ‘34번째 민족대표라고 하는데 펄 벅이야말로 ‘35번째 민족대표이자, 미국인 최초의 한국학 주창자라고 할 만큼 한국을 사랑하고 독립을 지지했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허백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