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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대영박물관의 얼굴마담,「로제타스톤」

달리는 말(이재남) 2023. 5. 26. 06:53

대영박물관의 얼굴마담,「로제타스톤」

1799년 7월 19일 나폴레옹의 군대가 전략적 요충지였던 로제타지역에 요새를 짓기 위해 땅을 파던 중 발견한 것으로 가로 72cm 세로 114cm의 현무암이다. 18세에 프랑스 그르노블대학의 조교수로 있었던 천재적인 역사학자,「장 프랑수아 샹폴리옹(Jean Francois Champollion)」이 이 문자해독에 성공하면서 이집트의 과거와 이 문자들의 의미가 알려지게 되었다. 

 

-천재 역사학자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Jean Francois Champollion)-

문자해독의 아이콘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1790년12월23일~1832년3월4일)은 프랑스의 이집트 학자로, 상형문자의 해독자로 유명해졌다. 프랑스 피자크에서 출생한 그는 어릴 때부터 고대어에 천재적인 소질을 보여 오던 중 16세 때 이미 라틴어와 그리스어뿐만 아니라 6개의 고대동양언어에 통달했다.  고대 언어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샹폴리옹은 특히 페르시아어, 산스크리트어, 라틴어, 그리스어에 능통했다. 그러던 중 우연스럽게 체프터치라는 콥트사제를 만났고 이로 인하여 콥트어를 완벽하게 배운 샹폴리옹은 모든 고대어를 완벽히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대영박물관의 얼굴마담,「로제타스톤」-

-대영박물관의 얼굴마담,「로제타스톤」-

콥트어는 이집트의 기독교교회에서 사용되던 언어이다. 샹폴리옹은 고대이집트어의 흔적을 간직한 콥트어에 대한 완전한 이해와 열린 사고를 가지고, 언어에 대한 본질적이고 전체론적인 방식으로 문자를 해독해 나갔다. 그런데 이 콥트어가 그 이상의 언어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걸 아무도 몰랐다.  바로 이 콥트어가 고대이집트어 즉 파라오시대의 언어로 파라오의 상형문자를 해독하는데 중요한 열쇠가 되었으며 샹폴리옹에게는 더 말할 나위없는 기회였다. 그는 17세에 이집트파라오들의 연대기를 재구성할 만큼 이 분야에 대단한 집착을 보여 왔다. 그런데 그리스어문헌을 상형문자 및 민중문자로 옮긴 글이 새겨진 로제타스톤이 발견되어 샹폴리옹은 마침내 이 상형문자의 수수께끼를 풀기 시작하였다.  1821~1822년에 그는 로제타스톤에 쓰인 상형문자와 신관(神官)문자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상형문자기호와 거기에 대응하는 그리스문자에 대한 완전한 목록을 작성했다. 그는 상형문자기호 가운데 일부는 자모이고 일부는 음절이며 일부는 앞에 나온 개념이나 사물전체를 나타내는 지시대명사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프랑스 샹플리옹의 고향 피지악에 있는 로제타석의 대형 카피 본-

관심을 갖고 여러 언어에 통달한 언어를 밑바탕으로, 로제타스톤(Rosetta stone)등의 나폴레옹의 왕명(王名)을 발판으로, 히에로글리프(hieroglyph:상형문자)를 해독(1828~30년)하는데 성공하였다. “그 기호들은 마치 여러 가지 동물이나 인간의 팔 다리, 또는 목수의 연장과도 같은 어떤 도구처럼 보였다.”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한 사람이 볼 수 있는 세계가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쉽지 않다. 우리는 영어, 불어, 중국어와 같은 동시대의 언어조차 완전히 습득하기에는 쉽지 않다. 
가장 많이 접한다는 언어도 이럴진대, 무려 몇 천 년 전에 사용된, 그것도 그 언어에 대한 기본정보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한 문자를 해독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러나 그는 고대이집트의 비밀을 풀기 위하여 직접 이집트를 찾아가 현지답사를 했다. 1831년 콜레주 드 프랑스(College de France) 초대 이집트학 교수로 취임했으나 곧 요절했다. 
그는 언어뿐만 아니라 비명집성(碑銘集成), 역사, 지리, 종교 등 다방면의 연구가로서 중요한 저서로는『히에로글리프의 알파벳에 관하여』,『다셰씨에게 보내는 편지(1822)』,『고대 이집트의 히에로글리프 시스템 대요(1824)』, 그의 이집트어 문법책, 이집트어사전, 고고학연구원정에서 얻어진 비문집(碑文輯)은 그가 죽은 후 그의 형이 사후작품으로 출판한『이집트 및 누비아의 기념물(1835~1845』등이 있다. 

 

런던 대영박물관의 Mummy of Katebet 미이라-

이 로제타스톤에는 같은 내용이 3가지의 문자로 쓰여 있는데 그리스문자와 이집트 상형문자 그리고 서민문자로 구성되어 있다. 당시 학자들은 이것이 표의문자라고 생각했으나 나폴레옹은 표의문자라는 일반학자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여 드디어 이 의미의 해독에 성공하게 된다. 이 기록은“기원전 196년에 제작된 프톨레마이오스5세의 공덕비이며 이집트원주민들의 세금과 부채를 면제해주고 죄수를 풀어줄 것이며, 항복한 반란세력을 사면해줄 것이며 사원에 대한 기부금을 늘리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단다.
특히 샹폴리옹은 타원 안에 들어가 있는 기호에 주목했으며 이것이 바로 왕의 이름이라는 것을 발견해 내기에 이른다. 같은 방식으로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를 해독해 내면서 1822년에 이르러서야 27개 파라오들의 이름과 이집트문자의 음가를 모두 밝혀냈다.                      
64화랑의 5000년 동안이나 모래 속에서 자연 건조된「진저맨(Ginger Mummy : 빨간 머리의 사람)」이라고 불리는 미라를 볼 수 있는데, 이는 사막에서 사망한 사람으로 모래 속에서 사막의 더위에 몸속에 있는 습기가 순식간에 빠져나가면서 지금과 같은 완벽한 형상을 유지한 채 남아 있던 것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어 영국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대영박물관의 한국관-

이 자연적인 미라는 완벽한 상태의 유지를 위해 박물관에서 몹시 심혈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 전에 비해 상태가 많이 나빠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 불쌍한 이집트인은 아마도 몸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아야 카메라의 플레쉬가 난무하는 박물관에서 벗어나 깊은 잠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필자가 2000년 7월 이곳 대영박물관을 방문했을 때는 북쪽계단에 우리나라의 작품,  몇 점의 그림과 도자기가 전시돼있다고 들었는데, 그마저도 보수 중이라 볼 수가 없었으므로 아쉽다며 박물관을 떠나왔는데, 17년이 지난 지금 한국관을 볼 수 있다니 기대가 된다. 이집트 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국관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꼭대기 한쪽의 한영실(韓英室)이라고 한자로 쓰여 있는 관이다. 

-대영박물관의 한국관-

-대영박물관의 한국관-


사실 볼 것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세계적인 박물관 안에 우리나라의 방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한쪽에는 우리나라 대청마루가 재현되어 있으며 이곳은 한국의 전문목수들이 직접 와서 만들었다는 안내문과 사진이 있다. 어떤 분은 자신의 소장품을 기증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나라를 위해서 좋은 일을 했구나 싶다. 나오는 입구에 있던 Donation 통은 이곳에 들렸던 우리나라 사람들의 흔적을 볼 수가 있어 반가웠고 기분이 좋다. 머나먼 타국에서 한국의 숨결을 느끼고 흐뭇한 마음으로 박물관을 나왔다.

 

-대영박물관의 한국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