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대륙 서북쪽의 섬나라, 영국 일주여행

91.신비로운 유적지, 스톤헨지

달리는 말(이재남) 2023. 4. 4. 07:14

신비로운 유적지, 스톤헨지

스톤헨지라는 명칭은 바로 이 삼석 탑에서 유래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고대 영어에서『위에 올려놓은 돌』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셰일 서클 바깥쪽에는 Y홀, Z홀이라 불리는 작은 구덩이들이 원을 그리듯 파여 있다. 또 그 바깥쪽에는 발견자의 이름에서 유래한『오브리 홀 영국 최대의 환상열석(環狀列石)』이라 불리는 56개의 구덩이들이 같은 간격으로 파여져 있다. 
오브리 홀 위쪽에는 두 개의 작은 입석이 정반대 방향으로 놓여있다. 두 입석 가까이에는 원형무덤이 있는데, 입석과 무덤을 더해『포 스테이션(네 개의 측점석:測点石)』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셰일 서클 바깥쪽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힐 스톤(발뒤꿈치 돌)이라 불리는 돌이 홀로 외롭게 서있다. 
그리고 이 돌과 셰일 서클 사이에는 슬로터스톤(도살석 屠殺石)이라 불리는 돌이 있다. 슬로터스톤은 현재 옆으로 누워있지만 옛날에는 똑바로 서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스톤헨지의 건설에는 불명확한 점이 많지만, 고대 브리튼 사람들이 1,200년 이상의 긴 세월 동안 몇 대에 걸쳐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스톤헨지(Stonehenge)의 전경-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스톤헨지(Stonehenge)의 전경-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제3기(B.C.2000~B.C.1100년경)에 어떤 방법으로 50톤에 가까운 돌을 30km나 떨어진 곳에서 운반해왔겠느냐 하는 것이다. 또 돌을 어떤 방식으로 잘랐는가도 의문이다. 특별한 도구도 없는 고대에 이런 일이 가능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간단한 돌도끼나 통나무만 사용할 경우 1,000명의 사람이 꼬박 7년 동안 매달려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 스톤헨지에 관한 공식적인 기록은 1130년에 헨리 힌팅턴 목사가 쓴 『영국인의 역사』에 처음 등장하였다. 
여기서 저자는 "누가 무엇을 위해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유적"이라고 언급해놓음으로써 스톤헨지는 이미 12세기에도 수수께끼의 유적이었음이 밝혀졌다. 웨일즈 몬마스 지방의 주교 제프리 몬마스는 1136년 자신의 저서『브리튼 왕들의 역사』에서 스톤헨지는 아더 왕의 전설에 등장하는 마술사 멀린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17세기, 당시 국왕 제임스1세는 건축가 이니고 존스에게 스톤헨지를 조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왕의 명에 따라 존스는 스톤헨지의 전체 크기를 측정하고, 배치도면을 그리는 등 건축학적인 측면에서 유적의 정체를 추적했다. 그리고 스톤헨지는 로마인들의 신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스톤헨지(Stonehenge) -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스톤헨지(Stonehenge) 입구-

그는 그 근거를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로마인이 침입하기 전까지 잉글랜드에는 문명을 가진 민족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스톤헨지를 만들 만한 건축기술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따라서 스톤헨지는 로마인들이 건설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 월터 칠튼이라는 학자는 바이킹이 1016~1042년에 잉글랜드를 정복한 후 자신들의 고향에 있는 거석 분묘를 모방해서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17세기의 작가 존 오프리는 수많은 문헌을 조사한 결과, 스톤헨지는 켈트인들의 승려인 드루이드들이 만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 드루이드 제작 설은 현재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1963년, 영국의 저명한 과학 잡지『네이처』지에 새로운 학설이 등장했다. 
천문학자 제럴드 호킨스가 기고한 논문에 따르면 스톤헨지는 고대의 천문대였다는 것이다. 그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우선 거석과 구덩이의 배치를 통해 하짓날 일출시간과 동짓날 일몰시간을 계산할 수 있으며, 28일 주기로 차오르는 달의 운행과 돌의 배치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컴퓨터계산을 통해 확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석을 사용한 이유를 비롯해 몇 가지 중요한 의문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가설역시 확증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 여러 가지 주장들이 나왔지만, 아직까지도 스톤헨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밝혀진 것이 없는 실정이다. 스톤헨지는 오랜 세월동안 많은 의문을 간직한 채 지금도 솔즈베리평원에 말없이 서 있을 뿐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스톤헨지(Stonehenge)입구의 비지트 센터의 기념품가게-

솔즈베리평원에 말없이 서있는 스톤헨지를 동그랗게 큰 원으로 한 바퀴 돌면서 주변을 살펴보니 양이나 염소들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과 꽤나 넓은 들판이 형성돼 있다. 수많은 관광객들을 스쳐 지나면서 스톤헨지를 관찰한 필자는 셔틀버스를 타고 스톤헨지의 비지트(visit)센터로 나왔다. 이 센터는 스톤헨지를 구경하려고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기념상품을 구경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으며 화장실도 구비되어있다. 

가게로 들어가 기념품을 구경하면서 함께한 일행들과 눈인사를 나누면서 전용버스에서 만날 시간을 기다렸다. 주차중인 전용버스를 타려고 주차장에 가보니 반포의 구베드로 형제님이 보이질 않는다. 분명히 비지트센터의 화장실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었는데, 아마도 일행들 가운데 아내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형제님을 모시려갔던 자매님이 돌아올 때를 기다렸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스톤헨지(Stonehen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