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대륙 서북쪽의 섬나라, 영국 일주여행

86.존 우드가 건설한 여왕의 광장

달리는 말(이재남) 2023. 3. 20. 07:49

존 우드가 건설한 여왕의 광장

아버지 존 우드가 건설한 여왕의 광장(Queen's Square), 반달모양의 로열 크레센트(Royal Crescent), 그리고 원형의 서커스(Circus)는 바스의 명물이 되어 또 다른 구경거리가 되었다. 아버지 존 우드는 고대 로마건축스타일을 재현하고자 했던 16세기 이탈리아 예술가 안드레아 팔라디오(Andrea Palladio)의 영향을 받아, 신고전주의적 웅장함과 우아함, 그리고 균형미를 겸비한 건축물을 자연풍경과 조화를 이루도록 배치함으로써 자연과 건축물이 어우러지는 새로운 형태의 도시를 만들었다. 

 

-바스의 또 다른 랜드마크 로열 크레센트-

서커스는 원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그 사이에 밖으로 통하는 통로를 두고, 중앙에 커다란 정원을 자리 잡게 한 특이한 건축물이다. 원의 각 부분은 33개의 주택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이 서커스와 로열 크레센트는 바스로 물려드는 부유층이 머무는 장소가 되었다. 그러나 비난도 없지 않아, 스몰렛은 브램블씨의 글을 통해 서커스의 각 집이 원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까닭에 방의 모양이 쓸모없고, 위치도 시내에서 멀어 불편하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스의 새로운 건축물에 매료되었고, 이런 건축양식은 다른 도시에서 모방되기도 했다. 이처럼 요양과 오락을 즐기러 찾아온 사람들, 특히 세련된 삶을 원했던 부유층이 북적대는 18세기의 바스는 당연히 소비의 중심이었으며, 바스의 쇼핑가는 특히 화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구시가지와 신시가지 사이에 자리 잡은 밀섬가(Milsom Street)는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곳으로, 소설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곳이다. 
『노생거 사원』에서 한 여성은“방금 밀섬가에서 정말 예쁜 모자를 보았어.”하며 감탄한다.『설득』에서도 주인공 앤(Anne)은 프린트가게 앞에서 윈도쇼핑을 하고 있는 지인을 만나는 장면이 있다. 오늘날과 같이 커다란 창에 손님의 구미가 당기게 상품을 진열해두는 식의 상점들은 18세기에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바스의 또 다른 랜드마크인 로열 크레센트는 죽기 전에 꼭 봐야할 건축물에도 꼽히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고 오래된 연립 주택 이다 초승달 모양 반원형으로 되어 있다 크레센트는 초승달 혹은 그믐달 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점들은 쇼핑을 하나의 도시적 오락거리로 만들고 윈도쇼핑이라는 행위를 탄생시켰다. 바스는 밀섬가나 펌프 룸 주위에 이와 같은 상점들이 밀집된 거리가 형성되었다. 이런 거리는 특히 향수, 그림, 도자기, 옷, 모자, 모피, 시계와 장신구 등의 사치품을 취급하는 상점들로 유명했다. 고급식품점도 유행했는데『설득』에서 앤이 비를 피해 들어간 페이스트리 가게 몰란즈(Molland's), 1774년에 문을 연 아이스크림 가게 등이 소비자를 유혹했다. 

 

-로마인들이 직접 지은 곳, 로만 바스는 그 당시 사람들이 목욕을 했던 박물관 같은 곳-


책이 하나의 사치품이었던 이 시대에 회원제로 책을 빌려주는 유료도서관이 유행했다. 바스에는 이런 도서관이 몇 군데 있었고, 그중 마셜스(Marshall’s)는 왕족과 다수의 귀족들을 회원으로 자랑하고 있었다. 특히 각종 장식품 등 사치스러운 잡화를 파는『장난감 가게(Toy shop)』와「도자기상점」은 런던의 것보다 더 훌륭하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주로 중국에서 수입되어오던 도자기를 영국에서 처음 개발하여 생산하기 시작한 조사이어 웨지우드(Josiah Wedgewood)가 1772년에 도자기가게를 밀섬가에 열었고, 이렇듯 18세기 후반에 바스의 중심가는 영국 각지에서 들여온 고급사치품과 수입품을 판매하는 가게들로 인해 런던 다음가는 쇼핑도시로서의 명성을 누렸다. 

                   

-바스 4거리의 대성당

-바스 4거리의 대성당-

이렇게 18세기에 화려한 도시로 변신한 바스에는 근대도시가 지니는 문제점들도 나타났다. 바스는 한때 18세기의 심각한 사회문제였던 도박의 온상이 되어 전문도박꾼들이 몰려들었는데, 사실 내시도 전문도박꾼이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데서 비롯되는 소음과 무질서, 지나친 사치와 남녀가 비교적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오는 성적 문란함 등도 이 도시의 비난거리가 되었다고 브램블씨는 불평했다.
어느 한 작가는 바스가 대도시 런던의 사악함을 모방하는 데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까지 했다. 그래서인지 18세기 말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보다 조용하고 차분한 다른 휴양도시를 찾기 시작했고, 바스는 차차 휘황찬란했던 영광과 번영의 시대의 막을 서서히 내리게 된다.

 

-로만 바스 옆 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