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 손녀와 함께한 캄보디아 여행

4.아들가족과 딸의 가족이 함께한 캄보디아 여행

달리는 말(이재남) 2023. 7. 10. 06:36

4.노로돔 시아누크(1922.10.31 ~ 2012.10.15)

 

프놈펜은 캄보디아의 수도이기 때문에 왕은 이곳 프놈펜왕궁에 실고 있다. 식민지 시절의 행정복합관과 왕궁이 함께 있는데, 왕이 거주하고 있을 때는 교통통제를 하고 앙코르와트가 그려진 캄보디아 국기가 게양된다. 캄보디아는 20041014, 시아누크 왕이 퇴임하고, 그의 셋째 아들의 노로돔 시하모니가 국왕에 즉위 하였다노로돔 시아누크(Norodom Sihanouk)는 캄보디아의 정치가 겸 인민사회주의연합 총재로서 수상 겸 외무장관으로 취임, 국내적으로는 정치쇄신, 대외적으로는 중립주의 외교를 표방했다. 국외에서 국가 회복운동의 지도자로서 투쟁을 계속해오다가 과도정부인 캄보디아 민족평의회 의장에 선출되었으며 헌법을 개정하여 왕위에 복귀하였다.  그는 프놈펜에서 출생, 사이공 및 파리에서 교육을 받았다. 19414월 조부인 국왕 모니본의 사망으로 왕위에 올랐다. 당시 프랑스 보호국이던 캄보디아의 독립을 염원하여 1945년 독립을 선언하고, 1949년 프랑스연합 내에서 캄보디아 독립을 획득하였다.

 

  -캄보디아의 국부로 추앙받던 노로돔 시하누크 국왕의 유골안치식이 열린 프놈펜 왕궁-

-프놈펜의 왕궁 로열팰리스-

-프놈펜의 왕궁 로열팰리스-

-프놈펜의 왕궁 로열팰리스-

 

19553월 왕위를 아버지 수라마리트에게 양위하고, 9월 총선거에서 압승하여 수상 겸 외무장관으로 취임, 국내적으로는 정치쇄신, 대외적으로는 중립주의 외교를 표방하였다. 19604월 국왕이 사망하였을 때 왕위계승을 하지 않고 국가원수로 취임하였다. 따라서 캄보디아는 입헌군주국이지만 왕이 없는 상태였다1955년 이래 인민사회주의연합을 이끌며 거듭 내각수반으로서 정치의 중심을 감당하였고, 왕제(王制)사회주의의 추진을 내세웠다. 1954년 제네바 회의에서는 군사동맹 불체결을 선언하고, 1957년 영세중립법을 공포하였다. 1961년 라오스국제회의를 제창, 그 중립화에 공헌하였다.

 

-프놈펜의 왕궁 로열팰리스-특이하게 온통 붉은 색으로 지어놓은 국립박물관-
-프놈펜의 왕궁 로열팰리스-색깔이 매우 화려한 캄보디아의 왕궁이다-

19703월 외유 중에 우파(右派)인 론놀 등에 의한 쿠데타로 국가원수직을 박탈당하고, 5월 베이징(北京)에서 캄보디아 민족연합정부를 세우고 망명정권의 수반이 되었다. 내전을 일으켰던 공산 크메르루주군()이 캄보디아를 장악함에 따라, 19759월 귀국하여 그들의 지지를 받고 국가원수직에 복귀하였으나 19764월 크메르루주의 독재 강화로 사임하고, 중국에 망명객으로 머물렀다.  19792월 헹 삼린 정권을 앞세우고 캄푸챠를 장악한 베트남군을 몰아내기 위하여 1982년 반()베트남파가 집결하여 수립한 민주캄보디아연합의 불안정한 망명연립정부의 대통령이 되었다. 국외에서 국가회복운동의 지도자로서 투쟁을 계속해오다가, 1991년 귀국하여 과도정부인 캄보디아 민족평의회 의장에 선출되었으며 19939월 입헌군주제로 환원하는 헌법을 개정하여 왕위에 복귀하였다. 20041014일 아들인 노로돔 시아모니(Norodom Sihamoni)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