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패션의 나라, 프랑스 일주여행

70.고흐의「해바라기」는 고갱의 심장을 멎게 했다

달리는 말(이재남) 2022. 3. 16. 14:56

미술사에서 전해오는 수많은 일화 가운데 고흐와 고갱에 관한 이야기만큼 귀를 쫑긋 세우게 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두 사람이 실은 동성애 관계였다는 얘기에서부터 고흐의 귀를 자른 것은 고흐 자신이 아니라 고갱이라는 주장까지 두 사람에 얽힌 소문은 거대한 산을 이룬다.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인해바라기는 고갱의 심장을 멎게 했단다

빈센트 반 고흐 〈레 베스노 마을〉1890, 캔버스에 유채

 

아를에서 고갱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고흐는 어느 날 재미있는 제안을 한다. 자화상을 그려 서로에게 선물하자는 것이다. 고갱은 고흐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신의 그림을 바라보는 고흐의 눈빛에 이것 밖에 못 그리나?”라는 조소가 섞여 있다고 고갱은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고흐의 독촉이 거세지자 결국 고갱은 고흐에게 보내기 위한 자화상을 한 점 그리는데, 그것이 바로레미제라블이라는 이름이 붙은 자화상이다.

고갱은 당시 빅토르 위고의 소설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주인공 장발장이라는 인물에 대해 큰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고갱은 장발장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자신을 그린레미제라블을 고흐에게 선물했다. 고갱은 이 그림 오른쪽에 그 당시 가깝게 어울려 지내던 화가 베르나르(Emile Bernard, 1868~1941)의 초상을 함께 그려 넣었다. 자화상에 자신의 다른 작품을 배경으로 그리는 것은 평소 고갱이 자주 시도하던 방식이었다.

이 그림을 받아본 고흐는 뛸 듯이 즐거워했다. 그리고 곧이어 자신의 자화상도 한 점 그려 고갱에게 보냈다. 이에 고무된 고갱은 내친 김에 고흐의 초상까지 그렸다. 바로해바라기를 그리는 고흐이다. 고갱이 고흐를 만나러 처음 아를에 갔을 때, 그는 고흐의 작업실 캔버스에 놓여 있는해바라기를 보고 숨이 멎는 듯 했다고 한다.

 

 폴 고갱의 작레미제라블, 캔버스에 유채, 1888,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폴 고갱-〈죽음이 지켜보고 있다〉, 캔버스에 유채,1892 미국 뉴욕 올브라이트-녹스 미술관

 

아를의 뜨거운 태양은 마치 고흐의해바라기에서 에너지를 받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 그림은 고갱의 눈 속으로 너무나 강렬하게 들어왔다. 고흐의 정신발작에 놀라 다시 파리로 돌아왔을 때도 고갱의 머릿속에는 온통 캔버스 앞에서 시름하며 해바라기를 그리는 고흐의 모습만 떠올랐다. 두 사람의 관계는 결국 오래가지 못했다. 그러나 아를에서 함께 했던 짧은 시간은 고갱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충격이자 아픔이었다.